내 안의 불을 끄자

주위를 둘러봐

by 철없는박영감
고층 아파트에서 보는 창밖은 시야가 넓고, 가슴이 뻥 뚫린다. 하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 안에 이야기는 흐르지 않는다.


새로 이사 온 아파트는 3층이다. 그래서 창가에 책상을 놓고 글을 쓴다. 지면이 가까워지면서 비가 오는 날이면 투두둑 투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햇빛 쨍쨍한 날이면 우리 동 바로 옆에 나란히 놓인 벤치로 동네 사랑방 같이 모인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정겹다. 아침나절에는 까르르까르르 초등학생들 학교 가는 소리에 같이 신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소리가 빈자리를 채운다.


처음에는 시끄럽기만 했다. 여름이라서 문을 열어놓고 살아야 하는데 시간마다 다른 종류의 소음이 고스란히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괴로웠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할머니들의 수다는 귀가 따가웠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할아버지들의 일장연설은 짜증이 났다. 아침마다 '게 섰거라!'를 외치듯이 비명을 지르며 후다닥 등굣길을 달려가는 초등학생들은 이른바 '초글링'이라고 하는 외계 괴생명체의 침공을 보는 것 같았고, 나머지 시간에 비둘기는 왜 그렇게 구구구구 거리며, 새벽에 고양이들 짝짓기 소리는 소름 끼쳤다.


하루하루 불만만 쌓이다.


그렇게 1일 1 글쓰기 다짐을 실천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오후 내내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저녁즈음 창밖으로 고단한 하루를 버텨내고 터벅터벅 퇴근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맞아. 하루하루 마지못해 겨우 살아내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창작의 고통은 달콤한 고통이지.'

이런 생각을 하며 창밖으로 오랜만에 사람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글감이 떠올랐다. 이미 밖은 캄캄해져 있었다. 어두워진 방에 불을 켜고 마치 피아노 연주를 하듯이 리드미컬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혀가고 있을 즈음 글의 흐름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중간 점검 차 저장을 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신나서 쓰기는 했는데 중간에 살짝 삼천포로 빠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생각이 막혔다. 두 손을 머리 뒤로 깍지 끼고 몸을 뒤로 젖히며 자연스레 다시 창밖을 봤다. 그런데 방을 밝힌 불빛 때문에 밖이 전혀 안보였다. 방충망만 보였다.


갑자기 그동안 써온 글들이 못난이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마음속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고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내 안의 어둠을 걷어내겠다고 불을 밝혔더니 밖은 안 보이고 '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못난이 울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은 막힌 게 아니라 막다른 골목을 향하고 있었다. 방에 불을 껐다. 다시 창밖으로 불이 꺼진 집, 켜진 집, 전조등이 켜진 주차하고 있는 차, 꺼진 주차된 차, 핸드폰을 보며 걷는 행인, 빨리 귀가하고 싶은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행인이 보였다. 밖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살아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내 안의 불을 그만 꺼야겠다.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발길을 돌려 큰길로 나와야겠다. 갇힌 시야와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줘야겠다. 그래 그래야겠다. 조금 더 주위를 둘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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