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제6화)
<지난 이야기 마지막>
그리고 앞 집 남자는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앞 집에 가서 문 열어 달라고 하셨어요?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
앞 집 현관문 너머 집 안쪽에서는 커다란 TV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어머니가 그러신 것 같은데... 저도 자다가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안 계셔서 깜짝 놀라 나와보니 문 앞에 계시더라고요. 얼른 모시고 들어왔는데... 이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좀 편찮으세요..."
"아 그렇게 된 거군요? 누가 그런 건지 이제 밝혀졌네요... 하하하" 경비원 중 한 명이 중재하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 네... 뭐... 그런 거라면 저도 이해했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저는 제가 범죄의 표적이 된 줄 알고... 좀 많이 놀랐거든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은영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찜찜함은 남았다.
근무자도 돌아가고, 앞 집도 들어가고, 은영은 조금 안심이 돼서 잠겄던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엄마가 아버지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빨리 좀 걸어요... 이 양반아! 지금 은영이 네 집에 괴한이 침입했다는데... 걱정도 안 돼요?"
은영은 얼른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 또 의심
은영의 전화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안심이 안된다며 기어이 아버지를 끌고 은영의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장우산 하나를... 아버지는 등산지팡이 하나를 각각 손에 쥐고 있었다. 집 안팎을 두 내외가 이리저리 샅샅이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은영의 눈에 띄었다. 앞 집 전기계량기에 검침원이 써놓은 건지... 누가 써놓은 건지... '꼴통 2.1'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도 앞 집 할머니의 기행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나 보다.
계단, 앞뒤 베란다, 다용도실까지 꼼꼼히 살피신 부모님은 은영에게 자초지종을 다시 설명해 보라며 마주 앉았다. 은영은 경비원이 다녀간 이야기, 앞 집 남자가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한 얘기 등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게 앞뒤 사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앞으로 번호키 외에, 문고리, 철문 잠금장치까지 모두 잠그고 집 안에 있을 때는 번호키도 강제 잠금 상태로 돌려서 밖에서 조작을 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이야기하며 놀라서 뛰어온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은영도 놀란 마음에 이사떡 작전이고 뭐고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잠을 청했다. 하지만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세상에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었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뭐 이런 영화에나 있을 법한 일이 다 있나... 앞 집의 그 남자는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던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들까... 자신도 나중에 그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할머니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사 때, 에어컨 설치하고 이삿짐 옮기고 그 난리 부루스를 추는데도 안 보이던... 그 남자도 마찬가지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혹시 할머니가 은영에게 할 말이라는 게 도움요청이었다면... 그것도 아들 몰래라면... 요즘 자식들에게 학대당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하는 것 같던데... 그러고 보니 앞 집 남자가 집 안으로 소리칠 때 언사가 꽤 거칠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개 짖는 소리랑 TV소리만 났었지... 경비원들과 실랑이할 때도 딱 타이밍 좋게 앞집에 알아봤냐는 얘기가 나올 때, 문틈 사이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었잖아... 할머니가 진짜 있기는 한 건가... 이사하고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동안 집을 나설 때, 신기하게도 앞 집과 마주치는 일이 전혀 없었지... 계량기의 저 '꼴통 2.1'이 할머니 얘기가 아니라 그 남자 얘기라면... 생각뿐만 아니라 의심 또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은영은 '에이 설마...' 하며 망상에 사로잡힌 자신을 흔들어 깨우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이불을 둘둘 말아 껴안았다. 은영은 온통 비정상들만 모아 놓은 것 같은 이 동네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점이라고는 부모님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하나뿐. 다른 좋은 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 동네의 환경은 편리하고 화려하고 풍족했지만, 삭막하고... 시끄럽고... 불안하고... 화가 났다.
전국 프랜차이즈망을 갖춘 세탁 전문점만 해도 그렇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은영이 세탁물을 맡기러 가면 언제쯤 세일 행사가 있으니 그때 가져오면 이득이라면서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가져오라며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하고, 혹은 다음날 세일행사가 있는 날이면 주인이 하루 보관했다가 내일 접수해 줄 테니 두고 가라면서 편의를 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동네는 오전에 맡겼던 세탁물에 대한 세일 안내 문자가 오후에 와서 전화하면 이미 접수가 끝난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은영에게는 주위의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OECD 국가기준 노인빈곤율이 높다며 기초노령연금이 생겼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며 다자녀 혜택이 생겼다. 또 청년층을 지원한다며 40세 미만을 겨냥한 공약과 제도만 즐비한 속에서 은영이 받은 복지라고는 전입 신고할 때, 1인 가구에게 준다는 전자시계가 전부였다.
은영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을 들 때도 현재 수입이 전혀 없어서 저소득층 혜택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부모님, 형제자매의 재산까지 포함시켜야 하는 바람에 혜택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식당도 아니고 반드시 2인 이상 다수의 가족 형태가 강요되는 듯했다. 혼자서는 잘 먹고 잘 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TV를 틀면 연예인들이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자랑을 해대는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은데, 실상은 은영 같은 젊지 않은 1인 가구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차라리 '돌싱',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이 더 대우받았다. 은영은 단지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그러다 보니 나머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혼자 잘 살려고 회피하는 이기주의자로 비쳤나 보다.
은영 나이대의 여성은 두부류로 나뉘는 것 같았다. 워킹맘과 전업맘. 맘(Mom)이 아닌 솔로라고 하면 '돌싱'이라며 중고, '하자'라며 불량 취급을 당했다. 대인관계에서도 대놓고 그렇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꼭 왜 혼자 사는지 물어왔다. 그리고 40대 중반의 여성이면 으레 자식이 있을 거라는 선입견으로 다가왔다가 미혼이라고 하면 똥 밟았다는 것처럼 돌아서는 마케팅이 부지기수였다. 이 세상은 소비력이 낮으면 사람취급을 해주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빚을 내서라도 소비를 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은영이 혼자 살면서 가장 미친 짓이라고 자책했던 것 중에 하나가 냉장고였다. 양문형 800ℓ 냉장고... 이 공간을 각각 3℃와 -18℃로 냉장, 냉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는가... 사실 은영이 먹는 것이라고는 아침에 사과 한 개, 점심에 밥과 나물 몇 가지, 저녁에 샐러드가 전부였다. 냉장고가 없어도 마트에 가면 바로 살 수 있는 것들이어서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텐데도 과거의 은영은 큰 냉장고를 고집했었다. 큰 물건도 척척 들어가서 블록 쌓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2~30평대 아파트에도 냉장고 수납장은 양문형 냉장고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납장이 2개인 설계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 허울뿐이라는 것을 과거의 은영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여러 가지 제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TV속에서 본 신기한 물건들에 혹하며 집으로 배달시킨 택배상자를 쌓으면 지구를 한 바퀴는 돌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대청소를 할 때면 꺼내져 새것과 다름없는데도 집 밖으로 퇴출되었다. 신용카드 대신 현금이나 체크카드를 써보겠다고 결심해도 결제창 단계에서 각종 할인 혜택을 미끼로 발급을 유도하는 꾐에 넘어가는 일은 이제 사건 축에도 끼지 못했다.
은영은 그날 밤 가위에 눌렸다.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허약해진 몸 때문이었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회사에서 상사에게 항상 혼나기만 했던 후배가 안방 문 밖에서 이리오라며 손짓을 했다. 후배는 일머리는 조금 떨어졌지만 워낙에 착한 성정에 맡은 일은 불평 없이 끝까지 해내려는 근성이 있는 친구였다. 솔직히 말하면 영악하지 못하고 바보 같은 구석이 많은 친구였다. 그래서 자주 남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곤 했다.
후배는 욕을 먹어가면서도 꿋꿋이 회사를 다녔다. 남들이라면 벌써 퇴사를 하든, 이직을 하든 했을 괴롭힘에도 꾸역꾸역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후배는 안 그래도 적었던 말 수가 점점 더 적어졌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는 괴로운 일이 생기면 가끔씩 은영에게 상담을 하곤 했는데... 그마저도 끊긴 지가 꽤 지났다. 후배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부문장이 인사팀에 술수를 부려 후배를 멕시코 법인으로 발령 내버렸다. 그리고 인사발령 공고가 뜬 다음날, 후배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은영은 장례식장에 가지 않았다. 비통하고 애통한 심정에 똑같이 무너질까 봐 겁나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빈소에서 보게 될 그 부문장의 낯짝이 너무 꼴도 보기 싫었다. 아마도 부문장은 형식적으로 빈소를 찾은 이사회에 접근하여 아부를 떨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그 비통하고 침울해야 할 장소에서 시시덕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귀신이 있다면 제발 저런 놈들 좀 잡아가 달라고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후배의 손짓하는 가위눌림은 은영에게 꽤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이사떡 작전 대상에 앞 집도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는 사람을 놓치고 넘기고 미루고 싶지 않았다.
작전개시
은영은 생각보다 찾기 쉬운 떡집에 조금 놀랐다. '언제부터 이렇게 떡집이 많아졌나?' 은영이 학생일 때만 해도 떡집은 전통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집 근처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트로트가 다시 유행하는 것처럼,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떡이라는 것이 구닥다리 문화가 아니라 전통으로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아서 조금 기분도 좋아졌다. 사라짐을 발 벗고 나서 지키지 못하고 뒤에서 아쉬워만 했다는 죄책감이 좀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은영은 시루떡을 맞췄다. 만들어져 있는 것을 사는 것보다 더 값어치 있어 보이고 싶기도 했다. 사실 본품떡보다 포장비가 더 비싸기는 했지만 적진을 염탐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반(半) 말만 했는데도 양이 상당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더 많게 느껴졌다. 다행히 아버지가 떡을 좋아하시니 은영이 먹을 것 조금 남기고, 윗 집, 아랫집, 앞 집, 상황실에 돌리고 나머지는 전부 부모님께 드려야겠다 생각했다.
예쁜 상자에 포장된 시루떡을 들고 은영은 셋 중에 제일 만만한 아랫집을 우선 찾아가기로 했다. 솔직히 만만하다 보다는 그나마 제일 정상일 것 같았다. 가장 덜 화려하고, 무난하게 단정해 보이는 옷을 차려입고 쟁반에 떡을 담아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아랫집 문 앞에서 잠깐 헛기침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 다음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