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제5화)
<지난 이야기 마지막>
은영은 인터넷에서 떡집을 검색하며 예산과 윗 집 빌런과 아랫집 상전에게 할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삐빅 삐빅 소리가 들렸다. 아직은 문을 열어 놓고 살아야 하는 날씨라서 처음에는 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노골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은영은 자세히 소리를 들어봤다. 집 현관에서 나는 소리였다.
은영은 너무 깜짝 놀랐다. 그리고 무서웠다. 조심히 현관문에 다가가 보니 누군가 번호키를 누르고 있었다. 비밀번호 오류 부저가 울리자 손잡이를 돌려 덜컹덜컹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은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터폰의 화면을 켜봐도... 문에 있는 구멍으로 밖을 봐도...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술주정뱅이 인가?' 은영은 번호키 외에 걸쇠와 문고리까지 천천히 걸어 잠그고 조심스레 밖을 향해 말했다.
"누구세요?"
앞 집 꼴통 추가요.
은영은 제발 술주정뱅이이기를 바랐다. 다른 동 같은 호수에 사는 술주정뱅이가 잘못 찾아와서 지금 우리 집 앞에서 주정 부리고 있는 것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럼 공동현관은 어떻게 열고 들어온 거지? 아~ 진짜 이거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은영은 문고리를 꽉 잡고 미지의 침입자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삐빅 삐빅... 삐삐삐삐) 누구세요? (덜컹덜컹) 누구시냐고요?" 은영은 울먹였다.
"앞 집인데... 문 좀 열어봐요..." 할머니로 추정되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 집이면 왜 초인종을 안 누르시고, 남의 집 번호키를 누르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은영은 사실 할머니 목소리라는 것이 더 무서웠다. 술주정뱅이가 아닌 것이 확실해졌고, 만약 할머니 목소리에 문을 열었다가 그 뒤에 괴한들이라도 서 있다면...? 으악!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했다.
"앞 집인데... 할 말이 있으니까 문 좀 열어봐요..." 할머니로 추정되는 목소리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아니 왜... 할 말이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지... 왜 남의 집 번호키를 강제로 열려고 하세요? 무슨 말인데요... 그냥 밖에서 하세요."
"아 글쎄 할 말이 있다고, 이년아! 빨리 문 열라고..."
갑작스러운 신경질적인 욕설에 은영은 더욱 무서워졌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할 말 있으면 경비실 통해서 인터폰으로 하세요... 남의 집 문 함부로 열려고 하지 말고..."
"문 열라고... 빨리 문 열라고..."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계속 이러시면 제가 경비실로 전화합니다."
밖이 조용해지나 싶다가 또다시 덜컹덜컹! 문고리가 더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 지금 전화해요. 할머니... 전화합니다....! (밖에 들리게 큰소리로) 아 여보세요! 경비실죠? 여기 105동 304호인데요..."
이 내 밖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 여보세요? 105동 304호라고요?" 전화 너머로 상황실 근무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105동 304호인데요... 지금 저희 집에 누군가 번호키를 강제로 열려고 해서 누구세요 그랬더니 앞 집이라면서 할 말이 있다고 다짜고짜 문을 열라고 하는데요 너무 무서워서 전화드렸어요."
"지금도 계속 그러고 있어요?"
"아니오 지금은 조용해진 것 같은데... 무서워서 문을 열어볼 수가 없어요. 아저씨 빨리 좀 와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저희가 지금 가보겠습니다."
은영은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냥 경비원을 기다리기도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지금 집에 아부지랑 같이 계세요?"
"응, 저 인간 또 막걸리 한 병 다 마시고 뒤집어 자고 있다... 그런데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그럼 엄마 아부지 좀 깨워서 두 분이서 우리 집 좀 와주세요..."
"응? 왜! 왜 그래! 은영아?"
"아니... 내가 지금 좀 많이 불안해서... 만약에 두 분이 같이 오실 수 있으면 좀 와주세요. 절대로 혼자면 오지 마시고요..."
"무슨 일인데?"
"어... 그게 나도 지금 좀 떨리고 무서워서 정신이 없는데... 웬 할머니가 우리 집 번호키를 강제로 열려고 했는데... 지금은 밖이 조용하긴 한데... 무서워서 우리 집 문을 열 수가 없네... 엄마... 아부지 깨워서 같이 오실 수 있으면 우리 집에 와서 초인종 좀 눌러줘요... 부탁해요... 엄마"
"어~ 알았어 아빠 깨워서 금방 갈게... 잠깐만 기다려..."
"네... 알았어요 엄마..."
은영은 겁에 질려 우선 집안에 창문도 모조리 걸어 잠갔다. 잠시 후 초인종과 함께 인터폰 화면에 나이 지긋한 경비원 2명이 보였다. 연세도 많아 보이고 체격도 왜소하고... 요즘 경비일이야 전부 나이 든 분들만 한다고 하지만 덩치 큰 괴한이라면 2명이라는 수적 우세 말고는 내세울 게 없어 보였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은영은 조금은 안심이 되어 문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은영은 방금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다 듣자 얼굴을 봤냐고 했다. 아니라고 밖이 깜깜해서 하나도 안보였다고 하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상황실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은영은 '이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누군가 집에 침입을 하려고 했고... 누구인지 확인도 안 됐는데... '또 그러면 연락을 달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 한 근무자의 대답에 은영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소싯적 따져 묻기 버릇이 나왔다.
최근에 마케팅으로 MZ라는 20~40대를 아우르는 모호한 세대 구분이 대유행하면서 사회초년생과 취준생들 사이에서 계약서대로... 문서대로... 법대로...라는 사회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아무리 세심하고 정교한 계약서와 법률이라도 반드시 그림자는 생기기 마련이고, 한국은 '정'이라는 문화로 이런 그림자들을 극복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부작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의식이 커지며, 원칙과 기준을 더 강하게 적용하자는 목소리들이 커졌다.
하지만 원칙과 기준은 사람수만큼 생겨났고, 1989년 발표된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처럼 '저마다 자기가 옳다 말을 하고 꿈이란 이런 거라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군가... 아무 꿈 없지 않나!'라는 가사가 지금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MZ라고 유별난 것도 아니고 MZ만 특별히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무임승차나 어부지리로 얻은 이익에는 못 들은 첫, 못 본 척하며 '개이득, 개꿀'이라는 속어로 책임감과 의무감을 날리고, 손해는 작은 거 하나도 절대 용납 못해 '갑질, 꼰대, 틀딱'이라는 속어로 비꼬며 마녀사냥을 하거나 혹은 가해자가 되는 것을 보면 원칙과 기준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은 공허한 메아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좋은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일에 대한 소명의식보다는 그저 문서에 따라, 매뉴얼에 따라, 지시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움직이는 노예가 되겠다는 의식이 시나브로 장악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겠다는 이런 의식을 사람들이 불의에 대한 항거 또는 기득권에 대한 일침 등 의롭고 옳은 행위로 인식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은영은 경비원 어르신들에게 누가 그런지 밝혀야 입주자가 안심할 것 아니냐고 하면서 CCTV 확인을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CCTV는 경찰 입회 하에서만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은영은 답답해졌다. 그럼 지금 신고할 테니까 같이 확인하자고 했지만 난감한 표정만 짓는 경비원에게 은영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아니, 아저씨... 그럼 앞 집이라고 문 열어 달라고 하던데... 앞 집은 가보셨어요?"
"아니오 앞 집은 아직 안 갔습니다."
"그럼 앞 집을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순서잖아요?"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는 사이에 슬쩍 앞 집의 현관문이 열렸다. 웬 자다 깬듯한 부스스한 얼굴에 떡진 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쓱 내밀었다. 은영은 그 모습을 보고 다짜고짜 물었다.
"방금 저희 집에 앞집이라면서 초인종도 안 누르고 번호키를 막 누르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치고 했는데... 혹시 뭐 아시는 것 있으세요?"
"아... 아... 아..." 남자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거 저희 어머니 같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 또 의심
그리고 앞 집 남자는 집안을 향해 소리쳤다.
"엄마! 앞 집에 가서 문 열어 달라고 하셨어요? 아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정말..."
앞 집 현관문 너머 집 안쪽에서는 커다란 TV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어머니가 그러신 것 같은데... 저도 자다가 일어나 보니 어머니가 안 계셔서 깜짝 놀라 나와보니 문 앞에 계시더라고요. 얼른 모시고 들어왔는데... 이런 일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좀 편찮으세요..."
"아 그렇게 된 거군요? 누가 그런 건지 이제 밝혀졌네요... 하하하" 경비원 중 한 명이 중재하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 네... 뭐... 그런 거라면 저도 이해했습니다. 천만다행이네요... 저는 제가 범죄의 표적이 된 줄 알고... 좀 많이 놀랐거든요... 이제 이해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은영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찜찜함은 남았다.
근무자도 돌아가고, 앞 집도 들어가고, 은영은 조금 안심이 돼서 잠겄던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엄마가 아버지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빨리 좀 걸어요... 이 양반아! 지금 은영이 네 집에 괴한이 침입했다는데... 걱정도 안 돼요?"
은영은 얼른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