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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려고 안 하니까 살이 빠지던데...

차라리 무계획으로 살아보자

by 철없는박영감

2023년 새해가 벌써 19일째 지나고 있다. 새해 소망도 많았고, 계획도 많이 세웠다. 어떻게 다들 잘 지키고 계신지... 궁금하다. 아직 음력설이 남았으니 우리에겐 한번 더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신년소망, 신년계획하면 떠오르는 단어... 다들 공감하실 거다. “작심삼일.” ‘나는 왜 의지가 박약일까? 아니 의지라는 것이 있기는 했나?’ 그런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드는 그 단어. 작심삼일을 깨는 방법은 2가지 밖에 없다. ‘3일’을 넘겨 꾸준히 실천하는 것과 ‘작심’을 안 하는 것이다. 뭐가 더 있을 수 있나? 그럼 뭐가 더 쉬울까? 내 생각에는 작심을 안 하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싶다. 3일마다 작심을 새로 한다고 하면, 뭐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어쨌든 작심삼일을 깨는 방법은 아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편법 중 하나일 뿐이지. 작심을 하고 그것을 못 지키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3일간 작심을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해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작심을 위한 노력이 3일을 못 넘겨도 스트레스다. 작심삼일을 드디어 깼는데 4일 차에 포기해도 스트레스다. 5일 차, 6일 차 포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동안 노력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려면 3일로는 택도 없다. 적어도 30일은 노력하거나, 눈에 뜨이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 어쨌든 이것도 스트레스다. 신년계획은 다 스트레스다. 망하라고 세우는 계획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그동안 세운 신년계획 1%만 성공했어도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닐 거라고 100% 확신한다.


왜 망하는 계획이 될까? 이것도 원인은 2가지라고 본다. 첫 번째, 목표가 너무 높아서 실현 불가능이거나. 두 번째, 현실과 너무 차이 나서 실현 불가능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3월 정도 되면 당해목표, 5개년 목표, 중장기 목표 세우느라 며칠씩 야근해 가면서 PPT를 작성해야 한다. 경영목표는 사장님이 이사회에 보고하기 딱 좋은 숫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목표를 부서별로 할당해야 하는데, 여기서 각 부서 수장들의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많이 할당되면 달성이 어렵고, 조금 할당되면 의욕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달성도 쉽고 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적당한 할당량을 받아야 한다. 내가 안 하면 누군가 대신해야 하고, 반대로 누군가 안 하면 내가 해야 하는 제로섬게임이기 때문에, 매년 잘 할당받아서 가늘고 길게 회사 다녀야 하는 부서장들은 사내 정치를 하고, 줄을 서고, 내부영업을 하고, 아부를 하고 다니는 거다. 팀장들이 능력도 없고, 하는 일 없이 회사에 놀러 다니는 월급충 같지만, 사실 다른 팀 부장들과 농담 따먹기 하며 인맥을 쌓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내 정치를 하는 것이 주요 업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할당량 많아도 능력발휘해서 목표 달성하고 승진하는 멋진 팀장이 되는 게 제일 깔끔하지만, 회사는 애초부터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내려 주기 때문에 어떻게든 현수준을 낮춰야 한다. 그러려면 현수준을 낮추는 합리적인 근거를 도출해야 하는데, 그때 우리 같은 말단들이 몇 년 치 데이터를 모으고, 실적을 분석하고, 시장을 분석하고, 트렌드를 분석해서 며칠씩 야근하며 현수준을 보고하게 되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야근하며 죽을힘을 다해 자료를 만들어도 중간보고에서 부서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엎어지며 다시 해야 하는 야근지옥이 펼쳐지는 것이다. 거의 모든 회사가 비슷하지 않을까? 파레토의 법칙인가? 상위 20%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할당량 구애받지 않고 목표를 달성해서 회사를 먹여 살리고, 나머지 80%는 위에 언급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년 계획이 망하지 않으려면 바로 현수준 파악이 정확해야 한다. 소크라테스도 수천 년 전에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현자의 정의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 현실자각이 아닐까?


그럼 현자가 되어 신년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꿀팁이 뭐가 있을까? 나는 이것도 파레토 법칙에 따라 상위 20%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작심을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위 20%가 나머지 80%를 커버해 준다는 것이 파레토 법칙이니까 내가 잘하는 것 위주로 신년계획을 세우면 나머지 80%는 자동으로 달성될 거라고 믿고 계획도 선택과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고지혈증으로 고생해 왔는데 아마도 3월에 피검사를 하면 정상수치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년 고지혈증 때문에 다이어트를 신년계획으로 세웠다. 이것 때문에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항상 물어본다. 20년 전에 몇 킬로그램이었는지... 75kg이었다고 말씀드리면, 그만큼 빼라고 한다. “네!? 20kg을 빼라고요!?”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뛴다. 그럼 의사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며 “운동 열심히 하시고, 식단조절 하시고,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속으로 ‘아~장난하나’라고 생각하며 너무 힘들 것 같다고 살 빠지는 약을 처방해 달라고 한다. 그럼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며 펄쩍 뛴다.

“우리나라 사람은 참 이상해요. 다이어트가 뜻이 뭐지요? 덜 먹고 운동해서 살 빼라고 얘기하는데... 꼭 뭘 먹어서 해결하려고 해요.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하면 소식해야 하는데... 꼭 소화제 먹어서 소화시키려다가 위장병 생겨서 병원 와요.”

허걱 내 얘기다. 실컷 혼나고 헬스장 등록을 하고, 샐러드 도시락을 구독하고, 금주를 선언해 보지만... 이게 되겠는가? 회사에서 낮에 경쟁하고,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고, 무엇인가를 계속 따오고 획득하고, 직접 하지 않더라도 작전을 짜고 회의를 하는 전쟁 같은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식사시간이 되고, 퇴근시간이 되면 저 깊은 산속 암자에서 수행하는 은둔자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한다. 지킬 박사도 못한다 이거는... 간극이 커도 너무 크다. 2022년에도 어김없이 다이어트를 신년계획으로 세웠었다. 3월까지 체중변화가 없었다. 도리어 더 늘었었다. 그 뒤로 건강이 나빠지고 퇴사를 하며 살이 빠진 것도 있지만, 그것 말고도 퇴사 후 글 쓰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글 쓰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 수행하듯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 간극이 좁혀져서,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지 않아도 생활에 필요한 양만 먹으면 더 이상 식욕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글 쓰기 목표에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식단 조절이 됐다. 또 굳이 돈 들여 운동을 안 해도 생각이 멈춰졌을 때 산책을 하고, 버스 안에서 생각하고 퇴고하는 시간이 좋아서 자가용을 몰고 다니지 않으니 자연히 운동량이 많아졌다. 특히 술을 안 마시고 과식을 안 하니 몸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인바디 측정기의 신체나이가 항상 실제나이보다 4~5살 많았는데, 드디어 신체나이와 실제나이가 같아졌다. 살 빼려고 애쓰지 않으니 살이 빠졌다. 이제 절반까지 왔다. 아직 10kg 남았다. 이것도 조만간 달성하지 않을까?


20대에 세웠던 버킷리스트와 30대에 세웠던 버킷리스트를 보면 내가 무엇을 못하고 무엇을 원했는지 딱 보인다. 20대에 세웠던 취직하기, 외국어 회화 마스터하기, 해외여행 가기 중에서 취직하기 빼고는 지금도 못하고 있고, 집돌이인 나에게는 안 맞는 것들이다. 관종기와 허영기도 조금 보인다. 30대에는 컨버터블 차사기, 성우 되기, 책 쓰기 등등 여전히 관종기와 허영기를 승계하고 있고 대신에 꿈이라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리해 보면 20대, 3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성공인 것 같다. 40대가 되어서는 버킷리스트나 위시리스트 따위는 안 만들었다. ‘아이고! 의미 없다~!’ 세대가 된 것도 있고, 계획이나 목표로 이름 지어서 꼭 달성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기 싫어서 이기도 하다. 인생은 유한한데 무한히 살 것 같은 계획들의 더미를 치워보려고 한다. 2023년 음력설을 맞아 신년계획을 바꿔보면 어떨까? 내가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것으로... 계획 개수를 줄이고 줄여서 아예 무계획으로 사는 것은 어떨까? 안 되는 거 붙들고 있지 말고 잘하는 거 더 잘하고, 나중에는 계획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계획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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