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자의 엄마 (제3화)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by 철없는박영감
제3화


세영은 양연이 이렇게 의욕적인 모습으로 돌아올 때마다 안도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경이 곤두섰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그녀의 상태는 눈빛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극과 극을 오가는 눈빛은 멀쩡해 보이다가도 갑자기 망상에 사로잡혀 섬뜩해졌다. 게다가 반동 때문인지 반복될수록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다. 주기는 짧아졌고, 기간은 길어졌다. 정상적인 모습이 복용 중인 약의 '부작용'이 아닐까라고 의심될 정도였다.


양연은 그녀대로 남들이 자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주변의 다그치는 듯한 시선은 그녀를 위축시켰다. 하지만 들리는 것을 안 들린다고 할 수도, 분명히 느껴지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새겨진 주홍글씨가 늘어날수록,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결책은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기다려야 했다. 반드시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척 대답했다.


"아... 생일은 무슨... 고생하고 오는데 밥이라도 차려줘야지... 냉장고 뒤져서 나온 재료로 만든 것뿐이야... 밖에 많이 춥지?"


"새벽에 가서 후다닥 끝내고 오는 건데요 뭐... 오늘은 애호박 가져온 거 볶아서 비빔밥 해 먹을까 했는데... 더 근사한 게 기다리고 있었네... 엄마도 얼른 같이 드셔!"


"그래 밥 뜨는 동안 얼른 손 씻고 와서 앉아~"


세영이 쫑이를 내려놓고 의자에 외투를 툭 걸치고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가자, 양연은 막 지어진 밥을 한 주걱 크게 떠서 공기에 담고, 적게 한번 더 떠서 담아 담음새를 정리하고 뚜껑을 덮어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것을 얼른 안방 장롱 속 켜켜이 쌓인 이불 사이에 묻었다. 새로 밥을 지을 때마다 한 공기씩 이불 사이에 묻는 것은 그녀에게 새겨진 첫 번째 주홍글씨에 대한 형벌 같았다. 그녀는 묵은 밥은 꺼내 자기 앞에 놓았다.


묻어 둔 (Buried)


양연이 태어나기 전, 그녀의 집안은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에서 장사를 해, 남부럽지 않을 부를 모았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고향에서, 환전을 대신해 오겠다는 말을 믿고 맡긴 돈을 지인이 중간에서 가로채 야반도주하면서 가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맏이였던 큰 언니와 장남인 큰 오빠는 겨우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지만, 나머지 형제들은 그럴 수 없었다. 기와집은 초가집이 되었고, 식솔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양연의 아버지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술에 취하면 포악해졌다. 집안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는 것은 기본이었고, 사기당한 돈을 내놓으라며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이를 막던 어머니는 늘 몸의 어느 한 군데는 성한 데가 없었다. 그녀의 형제들도 갑자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큰 언니는 공장 기숙사에 들어갔고, 판검사가 꿈이던 큰 오빠는 트럭운전기사의 조수로 기술을 배우러 떠났다.


큰 언니, 큰 오빠가 떠난 집에서 아버지는 날마다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성격은 날로 더 포악해져 갔다. 이대로는 살아남기도 힘들겠다는 계산이 선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어떻게든 보호해야 했다. 그래서 전부 도시로, 공단으로, 그리고 남의 집 식모살이로 저마다의 살 길로 떠나보냈다. 양연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던 그녀는 머리는 좋았지만, 고집 세고 굽히지 않는 성격 때문에 번번이 되돌아와야 했다.


양연의 어머니는 이런 그녀가 혼기마저 놓칠까 봐, 양반가문이지만 신랑이 13살이나 많다는 중신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혼례날 처음 본 그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훨씬 어려 보였고, 인물도 훤했다. 그녀도 속으로 싫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가문은 양반이었지만, 그는 전쟁통에 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 집에서 머슴처럼 할머니 손에서 자란 천덕꾸러기였다. 장사 밑천이라도 하라며 주는 돈을 받고 그 집을 나와 살림을 차렸다.


그래도 처음에는 어린 색시를 맞아 잘 사는 듯 보였다. 첫째 은호와 둘째 은주가 금방 생겼다. 하지만 그는 살아온 나이만큼이나 주변의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가 갓난아기가 둘이나 있어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집에 하루, 이틀 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한 달 이상 외박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분고분하지 않은 그녀의 눈빛이 질린다며 딴살림을 차려 나갔다.


양연은 자식을 버팀목으로 살아냈다. 은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빚에 쫓기다 버림받은 그가 나타났다. 착한 아들은 원망은커녕, 아버지 빚도 갚고, 동생 대학도 보내겠다며 배를 탔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그놈 때문에 가장 역할을 하겠다며 나선 착한 아들... 얼마 후, 그녀는 첫 주홍글씨를 새겼다. '아들 팔아먹은 년'. 그런데 그녀가 시신도 수습 못한 아들을 힘겹게 가슴에 묻는 와중에 그가 보상금을 챙겨 자취를 감춰버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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