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제12화
양연은 재빨리 몸을 숨겼다. 그녀는 한 집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계단 청소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배웅을 받으며 행복한 미소를 띤 채 누군가 문을 나서고 있었다. 은주였다. 그녀의 외모는 많이 바뀌어있었다. 이제는 제법 부잣집 사모님 태가 나는 것이, 혼자 상상하던 모습과 많이 달랐다.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못 알아볼 뻔했다
출소 이후, 양연의 목표는 단 하나 '내 것'을 되찾는 일이었다. 완벽하게 되찾으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그 과정에서 목표물을 확인한 순간은 생각보다 짜릿했다. 사냥꾼들이 자연 속에 매복해 있다가 기다리던 사냥감을 포착했을 때가 이런 기분일까? 형사들이 몇 날 며칠을 좁은 차 안에 잠복해 있다가 쫓던 용의자의 그림자를 발견했을 때가 그럴까? '드디어 찾았다.'
<105동 304호>
양연은 그동안 자신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몸도 사리지 않으며 열심히 일 한 노력에 하늘도 감명하여 먼저 은주를 발견할 수 있게 도운 것 같았다. 하늘이 자신을 진짜 버렸다면 운명의 장난처럼 그녀를 먼저 눈에 띄게 해서 목표가 멀리 달아나게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띨 정도로 사랑받고 사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을 보니, 아직 신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양연은 자신감이 좀 붙었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섣불리 일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 사냥꾼의 자세를 잃지 않기로 했다. 숨죽여 조금 더 지켜보던 그녀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신은 그녀를 이미 오래전에 버렸고, 그녀는 이미 딸을 놓쳤고, 은주는 이미 손쓸 수 없는 데로 달아난 상태였다. 304호에서 나와 그대로 익숙하게 앞 집 303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그녀를 보고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놓친 (Missed)
"오 팀장, 꼭 이래야겠냐?"
"네 대표님. 죄송합니다."
"야! 내가 그동안 널 얼마나 이뻐했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냐?"
"......"
"내가 오 팀장, 너 말 없는 걸 제일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이렇게 답답한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진짜 답답하다. 답답해! 저성과자 내보내자는 게 그렇게 서운했어? 아니면 다른 데서 스카우트제의라도 받았어?"
"... 그건 아닙니다."
"그럼 대체 너 말고 다른 사람 내보내자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응? 다른 사람 내보내자고! 다른 사람! 지금 네가 이렇게 의리 지킨다고 팀에서 고마워나 할 것 같아? 나가고 나면 언제 봤냐는 듯이 아는 척도 안 할걸?"
"......"
세영은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열중쉬어 자세로 대표라고 불리는 사람 앞에 서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가슴을 여러 번 힘껏 내려치다가, 마지막으로 그의 가슴에 힘을 실지 않은 주먹을 날리고 나서 원하는 답을 내어 주었다.
"야! 오팀장... 아! 이제 아니지. 저기 오세영 씨. 나가면 지옥이 시작될 건데... 괜찮겠어요? 나중에 다시 찾아와도 절대 안 물러줄 거예요! 알았어요?"
"대표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저, 저, 저...! 인정머리 없는 새끼! 끝까지 지만 잘났지! 에잇! 나쁜 새끼..."
경기가 나빠지면서 회사에 정리해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얼마 후, 대표로부터 세영에게 팀원들과 면담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팀원들은 하나같이 가족을 들먹이며 호소했다. 그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세상에 가족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자기 가족이 그들의 가족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가족이 제일 성과가 낮은지 선택하라는데... 그는 하지 않았다. 가족이 사라진 그가 가장 저성과자였다.
자리로 돌아온 세영이 짐정리를 시작했다. 팀원들은 대표실에서 나는 큰 소리로 상황을 대충 파악했지만 조용히 입을 닫고 모니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도 누군가 다가와서 말을 건다면 굉장히 귀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조용히 짐을 정리했다. 뭐 정리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전부 그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있던 자리에 잘 갖다 놓고 마치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듯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처음부터 거기에 없었던 듯 사라졌다.
사라진 세영은 지하철역에 있었다. 그런데 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강아지 한 마리가 따라붙었다. 목줄은 없었지만,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곧 제 주인 찾아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 갈길로 발을 옮겼다. 100m... 200m...? 강아지는 계속 따라붙었다. 나중에는 바짓가랑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계속 쫓아왔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주인으로 보일 만한 사람을 찾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
세영은 강아지를 들어 안았다. 그리고 애타게 사라진 가족을 찾고 있는 사람을 찾았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심정이었다.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얼마나 찾아 헤맸을까? 그는 마지막으로 시청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길 잃은 강아지를 주웠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담당부서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연결된 담당자는 가까운 동물병원에 맡기면 된다고 했다.
세영은 처음 강아지를 발견했던 장소에서 제일 가까운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자신들은 그런 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답뿐이었다. 다시 강아지를 안고 나온 그는 근처에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모두 돌며 강아지 잃어버린 집이 있는지 안내방송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이 지났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다시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이번에도 담당부서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민원실로 전화가 돌아갔다.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하자 다른 부서로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세영은 연결음을 들으며 기다렸다. 한참 후, 누군가 전화를 받고는 담당자를 연결해 주겠다고 했다. 연결된 곳에서 다시 다른 담당자로... 또 다른 담당자로... 돌고 돌아 결국 처음 전화를 받았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혹시 아까 통화했던 분 아니냐고 물었다. 맞다고 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목소리를 냈다.
그의 반응을 심상치 않게 여긴 담당 공무원이 유기견을 수거하는 단체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세영은 문자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수십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곳에서는 가까운 동물병원에 맡기면 수거해 가겠다고 했다. 세영은 이미 기운이 다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다 포기하고 동물병원에서 안 받는다고 했다. 그러자 자신들도 하루에 한 번 수거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허탈했다.
세영은 다시 민원실로 전화를 했다.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가 돌아갔다. 이번에는 빠르게 연결됐다. 그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공무원이 직접 오겠다고 했다. 강아지를 안은 채로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회색 자가용 한 대가 그 앞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 자신이 통화했던 공무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강아지를 공무원에게 넘겼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못 찾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세영이 묻자. 공무원은 그에게 유기시설에서 한 달간 보호하다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된다고 했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충격을 받은 적이 몇 번 없었다. 자신에게 한 달의 시한부 선고가 내려진 듯했달까. 세영은 한 달 후, 강아지를 찾으러 갔다. 그리고 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에게 다시 가족이 생겼다. 그는 다시 살아도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닫힌 안방문을 긁는 소리가 날 때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