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는 한쪽이 다 넘어가야 시간을 잴 수 있는 법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합격 메일에 대한 감사 댓글을 올린다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몇 년 전에 써놓은 글들을 살펴보니 나에게도 작가의 꿈이 있었다. 그런데 방법을 몰라서 막연히 ‘신춘문예에 지원을 해서 등단을 해야겠지? 그러면 일단 완성본을 써야겠네... 독립출판이 트렌드라는데? 내 출판사를 아예 차려도 되겠구나?'까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신문에서 문학상 공모전 소식을 보면 ‘일 년 후에 나도 여기 지원해야겠다. 그러려면 그동안 책도 많이 읽고, 구상도 많이 하고, 몸도 추슬러놔야겠네...'라고 정말 막연히 작가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꿈만 키웠다. 블로그는 처음에 하루 1명 남짓 조회수가 나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자 언제부턴가 하루에 5~10명이 되더니 2023년 첫날 갑자기 38명이 다녀갔다. '어! 뭐지?'라는 생각에 그동안 쓴 글들이 걱정되었다. 퇴고를 계속하긴 했지만, 원래 퇴고라는 것이 볼 때마다 새로운 오류가 눈에 띄어서 잘못된 것은 없나 걱정되었다. ‘허접하면 어쩌지... 맞춤법은 맞나... 개똥철학 떠들어 놓은 건 아닌가...' 계속 걱정됐다. 그래서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해 봤다. 찾아와 주시는 분들께 더 좋은 글을 보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브런치'를 발견했다. ‘나 같은 사람이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블로그를 쓰듯이 가볍게 지원을 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보내주신 신청 내용만으로는 브런치에서 좋은 활동을 보여주시리라 판단이 어려워...' 가벼운 마음이라고는 했지만 탈락 메일은 꽤 뼈가 아팠다. '그렇지. 내 주제에...'라는 생각으로 책이나 더 열심히 읽고, 블로그나 더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뉴스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며 은행권에서 희망퇴직자가 대거 나온다고 한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저들이 다 경쟁자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내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막연하게 신춘문예나 생각할 때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브런치! 브런치 다시 해보자!' 갑자기 두뇌회전이 빨라졌다. 처음 지원했을 때, 작가소개에 주저리주저리 몇 년 다닌 회사를 퇴사했고,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으며...라고 썼던 푸념 같은 글을 싹 지우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화음보다 불협화음의 불량함을 좋아하고, 장조보다는 단조의 마이너 감성을 선호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나름 임팩트 있게 시작을 했다. 그리고 활동계획에 책의 목차처럼 제목, 주제 그리고 개요를 구조적으로 썼다. 주제도 혼잣말하는 일기 같은 내용이 아니고 '살아보니 이렇던데?'라는 형식으로 공감할 수 있는, 대화하는 것 같은 내용으로 정했다. 마지막으로 글을 새로 썼는데 활동 계획의 주제에 부합되도록 등산일화를 쓰며 내 인생, 지금의 심정, 상황을 등산에 비유해서 에세이를 한편 썼다. 그리고 합격했다. 합격 메일을 보자마자 '우와! 대박'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두뇌회전은 더 빨라졌다. 갑자기 또 미래를 살기 시작했다. ‘앞으로 무슨 주제로 글을 써보고, 이 주제는 이렇게 전개해 보자... 구상한 소설도 올려야겠다. 글은 매일 올려야 되나?' 뭐 이런식으로? 진정할 필요가 있었다. ‘또 미래를 살다가 그 속도를 못 쫓아가면 다시 낙오할지도 모르는데....' 현재를 살아야 한다. 몰입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게 되고 모으고 모아서 응축된 감성을 써 내려갈 수 있다. ‘발행수, 라이킷, 댓글은 숫자다.'라는 생각도 한다. ‘그래 나는 숫자에서 도망치기로 했지’라고 다시 다짐한다. 법륜 스님의 "꿈 깨세요!"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내 삶에 집중한다. 나는 매트릭스의 메시아, 네오가 아니다. 총알이 날아오면 그대로 다 맞아야 한다. 스미스 요원처럼 분신을 만들 수도 없으니 하나씩 해야 한다. 한쪽의 모래가 다 넘어가야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모래시계처럼 조바심 내지 않고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만의 모래시계를 돌려 현재를 살려고 한다. 인생에서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