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나중에는 듣기만 해야 된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원래 목소리가 떨리는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좋아하고 줄 곧 반장을 하며 반대표로 학생회의에 참석해 형누나들에게도 기죽지 않고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하는 아이였습니다. 나중에는 전교회장선거에도 출마해서 선거운동을 하는 리더십도 있는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학교캠핑행사에서 마지막날 캠프파이어를 할 때였습니다. 아이는 대표로 소감을 말하게 됐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왜 목소리가 떨렸냐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아이는 이상했습니다. 자기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고 이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떨었다고? 그럴 리가…' 아이는 점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목소리가 떨릴까? 또 떨리면 어떡하지? 친구들이 나한테 실망하는 거 아니야? 이제 나랑 친구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아이는 걱정이 됐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목소리는 더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아이는 점점 사람들 앞에 나서기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말 수도 점점 적어졌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해졌고 혼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나가서 놀자고 해도 그냥 집에 있는 게 더 좋았습니다. 아이는 집에서 혼자, 점점 더 혼자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친구들도 당연히 안 나올 거라 생각해서 아이를 찾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필요 없다고…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아이는 집에 있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읽으며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책은 아이에게 친구였고 선생님이었고 가족이었습니다. 아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것은 책뿐이라는 생각이 들자 책이 만들고 싶어 졌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쓴 글이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이의 글에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응원합니다' '생각이 정말 참신하구나'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야' 아이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떨릴 걱정 없는 새 목소리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말들이 매우 많아서 더욱더 열심히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다시 세상으로 한 발 내디뎠습니다.
내 얘기를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조금 극화해서 동화형식으로 적어보았다. 나는 발표를 할 때면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은 못했지만 나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은 되었다. 유치원에서는 졸업생 대표로 답사도 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전교회장선거도 출마했다. 그런데 중학교를 올라가고 사춘기를 지나면서 갑자기 철이 든 건지 급격히 소심해졌다. 소심의 극치는 대학교 발표 수업이었던 것 같다. 복학 후, 혼자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자가 약해서 한문 수업을 수강했다. 1교시 수업이었는데, 혼자서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필기하는 모습이 눈에 뜨였는지 교수님이 갑자기 한문해석 발표를 시켰다. 준비 없이 갑자기 하게 되어 진짜 벌벌 떨면서 했던 기억이 있다. 오줌 지릴 정도로 긴장되고 떨린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후에 발표공포증은 더 커졌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수영으로 폐활량도 늘려보고, 하체를 튼튼하게 한다고 자전거도 타보고, 공포영화로 담력을 키우기도 하며 여러 방법을 시도했는데 가장 큰 효과를 본 것은 성우학원을 다니며 연기를 공부한 방법이다. 학원에 가겠다면 스피치 학원 말고 성우학원을 더 추천한다. 스피치학원은 수영과 자전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성우학원이 목소리 떨림의 나만의 근본원인을 발견하기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해야 돼 서다. 매주 준비한 대사를 선생님들 앞에서 연기하고 피드백받는 수업방식인데 여러 상황에 처했을 때의 내 반응을 연구할 수 있고 연기를 하면서 감정변화를 전달하려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목소리 떨림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더 유리할 때도 있다. 어쩌다 성격이랑 딱 맞는 대사를 받으면 잘한다고 칭찬도 받고, 정반대 성격의 대사를 받으면 학원에 가는 것부터 싫어진다. 아직도 열혈 청(소)년은 모르겠다. 뭐가 열혈인지 단순히 큰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는 것만 이해된 상태이다. 성우 공채를 준비해서 여러 방송사에 지원하면서 내 목소리랑 많이 친해졌다. 그러다 보니 완벽하지는 않아도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아침체조 방송도 진행했었다. 그리고 부서 대표로 누군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될 때는 코칭도 해주었다. 신입사원 연수기간 멘토로 활동도 하고 한동안 팟캐스트도 했는데 지금은 잠시 보류 중이다. 글 쓰는 게 더 재밌다.
살다 보면 사람들 앞에 서야 할 때가 있다. 발표 수업도 있겠고 면접도 있겠고 프레젠테이션도 있을 거다.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사람들이 얕잡아 볼 것 같기도 하고, 비웃을 것 같기도 하고, 면접은 떨어트릴 것 같고, 프레젠테이션은 못했다고 혼날 것 같고… 그런데 어느덧 발표를 하는 것보다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발표를 잘하는 친구를 보면 '아 저 친구 발표 잘하네…'라는 생각에 흐뭇해지고 나처럼 떠는 친구들을 보면 '힘내라. 끝까지 해낼 수 있다. 아자아자…'라는 안타까운 마음에 응원하게 된다.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소리다.
사실 발표할 때 아나운서처럼 잘하면 좋겠지만 안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평소 수다 떨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포인트인데 안되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청자들은 듣다 보면 익숙해져서 떨리는 목소리보다 발표 내용에 더 주목하게 된다. 정신 꼭 붙들고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못 들어주겠네'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많이 긴장돼서 그러니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이실직고하고 나면 '못나 보이면 어쩌지'하고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돼서 긴장이 풀리며 자연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안 봐도 되는 부류이고, 상사가 그런다면 걱정하지 마라 먼저 옷 벗고 나가게 될 거다. 목소리가 떨려도 발표는 해야 된다. 빼고 빼고 또 빼도 결국 차례는 돌아오게 되어 있다. 이왕 할 거 먼저 손들고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발표의 달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중에는 계속 듣기만 해야 해서 하고 싶어도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