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자의 엄마 (제17화)

윗 집 빌런! 아랫집 상전! 앞 집 꼴통 (Spin-Off)

by 철없는박영감
제17화


"저는 은호가 아니고 세영이에요. 오세영!"


불완전하지만 독립적인 자음과 모음이 세상의 법칙에 따라 조합되어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는 명함을 내미는 대신, 체온을 머금어 따뜻한 발음기관이 유기적으로 조음해서 내미는 촉촉한 울림은... 뭐라고 할까? 쭈뼛거리고, 어색했지만 감미롭고 살아있었다.

"어...? 세... 영...? 오... 세영?"


눈과 귀의 차이일까? 아니면 감고 뜨고 할 수 있는 차이? 아마 자기 마음대로 받아들임을 선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맞겠지...


"네! 사위 오세영, 최은주 남편, 오세영. 오서방이요!"


양연의 눈이 다시 빛을 찾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덮였다. 그리고 이내 시선을 피했다.


세영은 스치듯이 아들이라고 언급한 방금 전 즉흥적인 대답 못지않게,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율하듯 흐르는 이 간질간질함의 정체를 적어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동안 눈을 치우며 갈고닦은 실력도 있지 않은가... 그냥 덮여버리게 놔둘 수 없었다. 아니 덮어서 해결하면 안 됐다. 제대로 해결해서, 제대로 다시 해야 했다.


"오... 서방? 어! 아이고~ 여기가 어디야? 어머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오서방... 어? 자네...?"


"제 얼굴 잘 보시고, 잘 만져보고, 꼭 기억해 주세요. 앞으로 아들 할 세영이에요. 오늘부터 엄마 아들 오세영! 이제부터 엄마라고 불러도 괜찮죠? 자세히 보세요. 오세영!"


세영이 양연의 두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그러자 미영의 놀랐던 눈빛이 다시 온화해졌다. 스스로 누군가의 아들임을 선언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색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다.


귀납적인 (inductive)


세영은 더 이상 낮시간에 자신을 무의식의 세계로 밀어 넣지 않았다. 그리고 마트에서 상품성이 떨어진 채소와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가공식품을 더 이상 집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대신 할인코너를 만들어 더 합리적으로 필요한 누군가에게 빠르게 소비되도록 유도했다. 더 이상 무언가를 집으로 가져와 속이 텅 빈 박제로 만들지 않았다. 비어있는 곳을 채워 넣는 일로 힐링하지 않았고, 있으면 안 될 것을 솎아내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집에는 닫힌 방문이 없었다. 벽으로 구획되고, 가구와 가전제품이 육중하게 자리를 잡은 여전히 정적인 분위기지만, 그 안의 구성원들끼리 부대끼며 집안 공기는 뭉쳤다 펼쳤다를 반복했고 그러면서 순환했다. 양연의 병세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악화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복용해야 하는 약은 더 이상 없었다. 세영이 잠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여전히 예상밖의 일들이 터졌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분이었다. 행복이었다.


세영과 양연 그리고 쫑이의 3중주는 확실히 불협화음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 반려견 소음으로 민원이 들어오기도 하고, 앞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마구 누르며 강제로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양연의 기행도 계속됐다. 이 사건으로 경찰도 출동했지만 그는 이런 울림이 싫지 않았다. 물론 그럴 때마다 이웃과 관계자들에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트에서 보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최대한 보답했다.


완벽하고 조화로운 화음이 강요되는 세상에서 인과관계 하나도 없이 뜬금없이 끼어드는 그들의 불협화음은 통제되어 온 천재 음악가의 일탈이 발현되는 것처럼 무해했다. 힘들어도 행복하고, 짜증 나도 웃음이 났다. 그들은 적응이라는 쉬운 방법으로 자신을 깎고 갈지 않았다. 세상에 섞여서 혼탁해지지 않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색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이 가족이 사는 방법이다.


<完>

이전 17화[소설] 남자의 엄마 (제1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