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뭐 했어요? (23)
내가 뭐 시(세) 살 먹은 '아(애)~'가?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기상 관측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될 거라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지난 주가 여름휴가 성수기였는데, 피서는 잘 다녀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물가도 비싸고 너무 더워서 해수욕장에 사람이 없어졌다는 뉴스도 들려오던데... 그래도 사람이 기분이라는 것이 있는데, 휴가철에 그냥 집에만 있을 수 있나요? 그렇죠?
그런데 저희 아버지는 안 그렇습니다. 괜히 밖에 나가서 돈 쓰고, 고생하느니 집에서 에어컨 틀어 놓고 가만히 누워서 아이스크림 먹는 게 최고라고 합니다. 뭐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게 말처럼 지켜지면요... 실상은... 음... 어르신들의 특징인데 절약정신이 투철하죠? 그래서 에어컨 오래 틀고 있으면 머리 아프다고, 찬물 끼얹어가며 선풍기 틀고 버팁니다. 하지만 찬물 세례도 잠시뿐이고, 아이스크림도 한두 개죠~.
이런 투철한 절약정신은 항상 엄마의 단골 잔소리 거리입니다. 그래도 아버지의 고집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여든이 넘어서도 일을 다니는데요. 연세가 있어서, 이런 혹서기에는 온열질환으로 쓰러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요즘 '폭염경보문자'가 '효도문자'로 불린다죠? 저도 경보가 울릴 때마다 괜히 밖에서 일하지 말고, 에어컨 나오는데서 쉬라고 전화를 하는데요. 그러면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하면서 전화 한 사람 무안해지게 이렇게 핀잔을 줍니다.
"내가 뭐 시(세) 살 먹은 '아(애)~ 가?"
자부심
아휴~ 그 나이까지 돈을 벌고 있다는 '자부심'('자부심'이라고 쓰고 '고집'이라고 읽습니다.) 때문에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면 '네~ 네~'하면서 전화를 끊는데요. 정년퇴직하고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데 여름휴가를 한 번도 안 갔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다. 그래도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밖에서 자극을 받는 게 어쩌면 더 건강한 인생이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고 놔둡니다.
어쨌든 그런 자부심으로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매일 일터로 나가던 분이 어쩐 일로 휴가를 냈답니다. 본인이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고 엄마를 통해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자세히 물어봤더니 보청기가 고장 나서 수리를 하러 가야 돼서 휴가를 냈답니다. 그래서 그 김에 목요일, 금요일 휴가 쓰고 토요일에 또 출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요일에 뭐 할지 저에게 계획을 좀 세워보라고 합니다. 수요일 오후에 그것도 안부전화를 제가 했는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합니다.
처음엔 살짝 짜증도 나고... '갑자기 뭐 어쩌라는 거야?'라는 막막한 생각에 그렇게 갑자기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이게 또 머리에서 생각이 안 없어지는 겁니다. 뭐 어쩝니까? 돈 못 벌어와서 불효한다는데... 이런 거라도 효도해야겠다 싶어서 급하게 근처 포천의 '백운계곡'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계곡들이 잘 정비가 돼서 평상 장사도 안 하고, 자릿세나 바가지요금이 없어졌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봤거든요.
회춘
요즘 계곡은 오픈런을 해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해서 아침 8시에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평일이라서 그런지 9시 30분 즈음에 도착했는데 자리가 여유롭더군요. 사실 1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부모님이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톨게이트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주유소나 휴게소 갈 때까지 못 참는다고 해서 톨게이트 직원분께 부탁해서 팔자에도 없는 톨게이트 화장실을 다 다녀와봤네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계곡에 도착했는데요. 부모님이 무릎도 아프고, 더운데 차에서 내리기도 싫어서 그냥 한 바퀴 돌고 가자는 겁니다. '예? 여기까지 왔는데요?' 뭐지 싶었는데... 띵! 형광등이 들어왔습니다. 투철한 절약정신... 제가 계곡에 놀러 가자고만 했지 비용을 설명 안 했지 뭡니까... 크크크 요즘은 '계곡 공짜예요~!' 그런데 사실 저도 뉴스로만 봤지 실제로는 안 와봐서 반신반의하고 있었거든요... 만약 돈 달라고 하면 '여기까지 왔는데...'하고 부모님 몰래 돈을 지불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공짜더군요.
공짜!라는 말에 부모님이 안심하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갔는데... 우와~! 제가 지금 세숫대야에 얼음물 채워서 글을 쓰고 있는데... 계곡 물은 이 얼음물보다 더 시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실 돈이 들까 봐 계곡에 안 들어간다고 갈아입을 옷을 안 가지고 왔는데... 발을 담그자마자 앞뒤 안 가리고 그냥 바로 입수해 버렸습니다. 첨벙첨벙 제일 신나게 놀더군요. 아기가 되어버린 아버지... 크크크 진짜 안 왔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었습니다. 정말 시살 먹은 아기가 되더군요.
여든 시살 먹은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