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의 사계절 (에필로그 : 겨울, 마지막 계절의 문턱)
철컥.
“여보세요?”
지훈은 숨을 멈췄다.
“아빠?”
그 목소리는..., 혜진이 아니었다. 딸이었다. 지훈은 잠시 말을 잃었다.
"아빠가 이 시간에 웬일이야? 헉! 거기 지금 새벽 4시 아니야?"
"응. 그냥. 우리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왜 그래? 아빠? 무슨 일 있어? 인종 차별이라도 당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지훈은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마치 술주정처럼 딸에게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이런 아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딸을 보고 있으니 다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빨리 결혼 좀 했으면 하는 소망이 이었지만, 딸의 목소리는 혜진과 닮아 있었다. 단정하고, 조용하고, 무언가를 오래 지켜본 사람의 말투.
“아빠, 그냥 해요.”
“어? 뭘?”
“전화. 오늘 엄마 봤죠? 아빠 엄마 생각나면 꼭 나한테 전화해서 이러더라?”
“훗, 우리 딸 다 컸네? 이제 내가 눈치 봐야겠어. 그런데 내가...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
“그럴 수 있어요. 지금이 아니면, 다음 계절은 없을지도 몰라요.”
통화가 끝난 후, 지훈은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번엔 진짜 그 번호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저장했던 번호. 신호가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철컥.
“여보세요?”
지훈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 목소리였다. 조용하고, 낮고, 하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목소리.
“저예요.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에요."
"아직 차단되어 있을 줄 알았어요. 신호음이 안 갈 줄 알았는데..."
"............"
"저... 독일에 와 있어요."
“알아요.”
“그리고 광장에서 당신도 봤어요.”
“............ 네, 그것도 알아요.”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요.”
“.........”
“잘 지내요?”
“그럭저럭. 당신은요?”
“나도요.”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삶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렇게 그들은 연결되어 있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한 채,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복받치는 서로의 감정을 느낄 뿐이었다. 통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은 사계절을 지나기에 충분했다.
혜진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들이 물었다.
“엄마, 누구야?”
혜진은 말했다.
“그냥… 옛날 친구.”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올 거야.”
지훈은 노트북을 열었다.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사랑의 사계절』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그 너머.
그 너머는 다시 시작되는 계절일 수도 있고, 그저 서로를 기억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다시 마주한 계절의 끝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