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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에게
-너의 00번째 생일을 축하해.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이 너만큼은 피해가길. 내가 겪었던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너만큼은 알지 못했으면. 설령 그 비극이 너를 향하더라도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부디 그 일부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때의 난, 혼자가 아닐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모든 것을 혼자 떠안고 버텼지만 너만큼은, 부디 너만큼은 그러지 않길.
누군가 알아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했었어. 살아오면서 마주하게 되었던 크고 작은 세상의 불행들에 화도 나고 이유 없는 분노에 가슴 속이 뜨거워지기도 했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도무지 해결되지 못할 것 같은 현실을 마주했을 땐 나 하나 노력한다고 바뀌지 않을 거라는 좌절감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더라. 그런데 누가 그러더라. 아무리 해결하기 힘든 일이더라도 누군가 그 사실을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이야. 혼자 끌어안는 것과 함께 끌어안는 것의 차이가 아닐까.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문제를 겪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를 문제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들다는 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조금은 버틸 허상이 되지 않을까. 이런 말은 전혀 맞는 말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누군가 나와 비슷한 아픔이 있다는 사실이, 이 아픔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괜찮아. 너만 그런 고통을 견디는 게 아니야. 너만 힘든게 아니야"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낼 사소한 이유가 되었지. 그래서 나는 더 아팠나봐. 혼자 끌어안아서, 겉으로 드러내는 법을 몰랐어서, 남몰래 버티는 것 밖에 할 수 없어서. 그래서 외로웠나봐. 이 비극을 나누고 싶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서 드러내는 순간 침묵이 찾아올거라고 생각해서 어차피 해결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찍 포기했어. 난 그날 하나의 선을 만들었지. 나 이외에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선.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때 조금 더 기댔더라면 조금은 달랐을까 싶네.
내가 너에게 줄 상처는 되도록 막아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 의해 내가 너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그때 나는 괜찮았는데 나의 비극이 너에게까지 번질까봐 그게 더 무서웠어. 최선을 다해서 그것만큼은 막아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그래도 내가 보아온 너는 운이 따라주는 아이어서 그 비극이 다행히 너의 운명을 빗겨나갔지. 그 운이 너와 계속하기를 희박한 나의 운까지 내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