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착각

by 숨듣다
남성은 자신이 여성을 접한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가 접하는 것은 그의 욕망의 원인, 제가 ‘대상a’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행위입니다.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시(poésie)입니다. 그러나 시와 행위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합니다. 사랑의 행위는 수컷의 ‘다형적 도착’이며, 이는 말하는 존재의 특성입니다. -자끄 라깡, <세미나 XX>


1. “사랑이란 아름다운 것을 영원히 소유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소크라테스

그녀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의 세계는 멈춘 듯 고요해졌고, 시간조차 그녀를 비추기 위해 흐르기를 멈춘 듯했다. 신이 정성을 다해 빚어낸 조각상처럼, 그녀는 눈앞에 놓인 하나의 완벽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단지 외양에만 그 완벽함이 머물렀다면 아마 감탄하고 돌아섰을 것이다. 그녀는 눈빛 하나, 미소 하나로 나를 붙잡았다. 그 눈빛은 어딘가 깊고 아득한 길로 나를 이끌었고, 그녀의 미소는 오래 잊고 있던 안식을 불러왔다.


그녀의 말은 마치 오래도록 기다려온 대답처럼 들렸다.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의 혼란을 조용히 정리해 주었고, 그녀의 생각은 복잡한 길을 간단하게 열어주었다. 그녀의 존재는 단순히 아름다운 사람이기보다는, 어딘가 내가 계속 찾아 헤매던 것을 알고 있을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새로운 관점과 대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대답은 그녀에게서 흘러나왔으면서도 나에게서 발견된 것 같았다.


나는 가끔 그녀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그녀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으면, 어떤 길이든 꽃이 핀 정원이 된다. 그 길이 특별할 필요는 없다. 그녀와 함께 걷는 순간, 그 평범함이 아름다워진다. 그녀의 존재는 나를 채우고, 나의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든다. 그녀를 바라볼 때마다 내 안의 갈증이 사라지는 듯한 안도감을 느꼈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감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두려움이 찾아온다. 이렇게 아름답고 고요한 순간이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 마치 손을 뻗으면 흩어질 안개처럼 그녀를 조심스레 붙잡는다. 하지만 그녀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나는 여기에 있어.” 그 한마디가 내 불안을 씻어내고, 나는 다시 평온 속에 잠긴다.


그녀는 나의 빛이고, 바람이며, 어딘가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은 풍경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아니 그녀와 함께 있는 나 자신이 사랑스럽다고 느껴진다. 그녀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그녀의 존재는 그 자체로 나를 오래도록 가만히 물들인다.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고, 나는 그 곁에서 안도하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영원히, 아마도 영원히.


2. "사랑은 영혼의 일부이다. 그것은 같은 본질의 불꽃이다." - 빅토르 위고

그와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저 한 사람을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손을 잡은 순간, 따스한 온기가 나를 휘감았다. 단순히 살갗이 닿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 더 깊은 곳에서부터 나를 흔들어 깨우는 감각이었다. 그의 존재는 마치 오래도록 비어 있던 자리에 찾아온 무엇이었고, 나는 그것을 운명이라 불러도 될까 망설였다.


그는 다정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손을 마주 잡고 걸을 때,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었다. 평범한 골목도, 낡은 벤치도,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의미를 가졌다. 나는 그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그가 만들어낸 이 고요하고 든든한 세상을 믿고 싶었던 것뿐인지도 몰랐다.

비 오는 날, 그는 나를 꼭 붙들어 맸다. 그 순간만큼은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보다 더 깊은 위안을 느꼈다. 그의 존재만으로 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잊었다.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았고, 그가 나에게 내민 그 손이 나의 어둠을 덮어주리라 믿었다.


그의 말은 때로 나를 위로했고, 때로 나를 아프게 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나를 가르치는 듯했고, 나는 그 말속에서 나를 다시 세우려 했다. 그는 나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으며, 그이로부터 배우며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거울이었지만,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며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나는 가끔 스스로를 속인다. 그의 손을 놓지 않는 한, 이 평화는 영원할 것이라고. 그러나 그의 온기가 내 안의 허기를 채워줄 때마다, 그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을 때마다, 나는 불안해진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끔 나를 덮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일까, 아니면 그가 만들어준 이 안온한 감각일까.


어느 날, 세월이 흘러 우리의 손에 주름이 가득해질 때에도, 나는 여전히 그의 곁에서 말할 것이다.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어. 이 손을 놓지 않아 줘서 고마워.” 그러나 그때의 나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것은 그가 아닌, 그를 통해 마주하고 싶었던 나 자신이었음을. 그와 함께 걷는 이 길은 결국 나를 향한 여정이었음을.

그의 손을 잡고 걷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곁에 서 있을 때 나는 온전하고 평화롭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나는 그를 붙잡는다. 어쩌면 그는 나의 끝없는 갈망을 비추는 조용한 등불이고, 나는 그 빛을 따라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 놓인 작은 기적이며, 평생토록 나를 지켜줄 소중한 신앙이다.


3. 요조숙녀여, 군자의 여자로다.(窈窕淑女,君子好逑) -시경(詩經)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왕의 시선은 그녀를 벗어나지 못했다. 단정한 모습, 맑은 눈빛, 마치 이 세상이 요구하는 모든 덕목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한 여인. 그녀는 한순간에 왕의 이상이 되었다. 아름답고 정숙한, 그 무엇보다도 조화롭고 완전한 존재. 군자는 그 여인을 보며 마음 깊이 생각한다. ‘찾았다. 이토록 고요하고도 완벽한 사람을.’


여인의 웃음은 마치 한낮의 햇살처럼 왕의 어지러운 마음을 비추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혼란을 가라앉히고, 걸음걸이는 세상을 조화롭게 일구는 듯 보였다. 왕은 질서 안에서 안도한다. 여인은 여전히 말이 없고,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있다.


왕은 여인이 입을 열까 두렵다.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더라도, 군자는 그 생각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을 테지만, 여인이 자신이 찾던 그 여인이기 위해서는 항구적 침묵이 필요했다. 왕은 오로지 자신의 기대를 확인하려 할 뿐이다. 그녀가 요조숙녀가 아니게 되는 순간 겪게 될 참혹을 누가 감당할 수 있으랴.


여인은 그 자체로 불안이었기에, 혹여나 입을 떼는 일이 없도록 항상 그녀의 주의를 끌 무엇인가 필요했다. 왕은 여인을 호숫가로 데려갔다. 궁궐 밖의 사람들은 아마 구경도 못해봤을 아름다운 경치였다. 해질녘의 강가, 물결은 잔잔하고 저녁노을이 수면 위를 붉게 물들인다. 강둑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늘어져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멀리 선 지저귀는 새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강 위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 한가운데에 마치 신선이 머무는 듯한 정갈한 정자가 서 있다. 왕은 약속한다.


“그녀가 내 여인으로만 남아준다면 이 호수는 평생 그대의 것이오.”


여인은 홀린 듯 강가의 풍경에서 눈을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은 호수에 비친 자신들의 풍경을 바라본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태양 밑에 그녀는 여전히 우아하다, 아름답다! 어쩐지 여인을 직접 쳐다보는 것보다 그녀가 더욱 빛나보였다. 정자의 기둥과 기와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시선이 머무는 곳은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다. 그녀의 옷자락은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고, 고동색 비단 위에 수 놓인 연꽃무늬가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인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우면서도 단정하다. 황홀할 만큼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정말 아름답네요. 이런 풍경은 태어나서 처음 봐요!”


예상치 못하게 터져 나온 그녀의 대답에 왕은 놀란 듯 여인을 쳐다본다. 누구라도 할 법한 경탄이었지만, 여인의 목소리는 기대하던 것처럼 꾀꼬리와 같이 선율이 흘러나오기는커녕 경박스러웠다. 왕은 다시 여인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에는 그가 보고 싶었던 고요한 순종이나 동경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그의 심연을 꿰뚫어 보는 듯한 낯선 시선이었고, 동시에 그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이상을 무너뜨리는 파문처럼 느껴졌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구나." 왕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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