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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Jul 17. 2017

'자존' 아닌 '자존감'을 위한 버림

'혼자'라는 가치의 공감대

예전에 적어보았던 생각이 필요해서 다시 끄집어냈다. 소위 '자존'이라는 말이 나를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에는 가끔씩 내 스스로를 위해 꺼내야 한다.


'자존감'이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자존감'이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쓸모없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 주변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반대로 간혹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주변에서도 가끔 듣는다. 그런데,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것도 마땅하지는 않으나, '자존감'이 높다고 해서 마냥 웃고 기뻐할 일은 아니다.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 '자존감'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가, 그리고 이 사회는 무엇으로부터 '자존감'을 충족시키라고 외치고 강요하고 있는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우리의 '자존감'은바닥을 치던, 정상을 찍던 양자 모두 내 스스로의 만족과 성취로 인해 나타나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와의 단적인 비교를 통해 나타나기 십상이다. 즉, 본인이 다른 누군가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다른 누구가를 앞지른다고 여겨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직업, 외모, 가정, 자녀 등등 모든 가치들이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형성되고, 우리는 종종 이러한 비교가 극단에 이른 어떤 이들을 뉴스를 통해 접하곤 한다.

누군가는 '자존감'이 비교와 경쟁이 스스로에게 자신의 상태와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합당한 기준을 만들어 준다라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정말 스스로를 피곤하게, 가혹하게 만드는 사회다. 여기서 우리는 '혼자'라는 단위의 가치가 홀대받는 사회,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만이 강조되는, 그것만을 인정받는 혹은 스스로 인정하고 만족해 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혼자'서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도, 도전하기도, 유지하기도 심지어 즐기기도 힘든 이곳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이 어떻게 가능할까.

몇 년 전에는 남들보다 훨씬 앞서간다고, 남들만큼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이에 만족하며 자존감을 치켜들려 한 때가 있었다. 다른 내 또래와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만족시키곤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존감의 밑거름은 나에 대한 남들의 부러움과 나에게 가지는 일종의 경외심이었다.

이러한 '자존감'은 장담컨대, 오래지 못해 무너진다. 나의 '자존감'이 남들에 의해 채워지고, 어느 순간이 되면 남들의 눈높이를 맞춰주고 따라가기 위해 나의 자존감에서 '나'는 점차 사라져 간다. 더 이상 자존감이 아니게 된 '나'가 사라진 자존감은 병 들고, 썩어서 작은 걸림돌에도 쉽사리 무너지고, 부서지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남들이 맞추어 놓은 자존감의 기준을 남들에게도 들이대면서 남들을 깍아내리는 비난의 도구가 된다.


생각컨대, 타자의 인생으로 하여금, 그 사람들의 직업, 외모, 재산 등등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채우려는,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일시적으로, 잠깐의 변화와 만족을 누릴 수는 있겠지만, 애초부터 잘못 설정된 목적과 방향은 스스로를 옭아매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자존감'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혹은, '이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러한 공감대가 얼마나 탄탄하게 형성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러한 공감대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우리에게는 어렵지만 필요한 고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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