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내가 되기 위한 외침
2015. 07.22
7월 중순 무렵, 내가 일하고 있던 은행 지점에서는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했다. 그로 인해 금고를 제외한 모든 짐을 2층으로 올려야 했고, 모든 직원들이 야근해야 했다. 짐을 옮기는 첫날, 공사 인부들이 6시까지 작업을 하고 우리가 6시부터 8시까지 짐을 옮겨야 했다. 그래서 지점 사람들은 근처 식당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에 앉아 밥을 먹는데, 한 여자 차장이 나를 타박했다.
"얘는 은행 식당 밥도 안 먹더니, 여기서도 조금씩 먹네, 꼴보기 싫게."
이 소리를 은행 식당 밥을 먹지 않은 이후로 수 십번을 들었다. 그날은 말을 하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문채 식사만 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차장 말도 말 같지 않나보네?"라는 말이 날라왔다.
지점장이 그제서야 차장을 말리며, "왜 다른 지점에다가도 없는 소리를 해서 얘 입장 난처하게 만들어?"
말리는 소리에 처음 듣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대충 짐작이 간 상태였고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왜 차장님은 없는 말을 지어냅니까?"라고 덤벼들었다.
은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지점장이 나더러 참으라는 눈빛을 보냈고, 다행히 일단락 되었다. 다시 지점으로 돌아온 뒤에도 몇 십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기왕 결심해왔던 사표를 지점장실에 던지고 나왔다. 아마 지점장이 소리를 지르며 따라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건넌 뒤 택시를 탔다. 그 이후로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어렸다.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싸움을 거듭하고 거듭해서 내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을 터였다. 인사부나 노조를 털어서라도 지점 사람들을 오지에 있는 지점으로 보내려고 노력했을 것이고, 기자를 불러서 인터뷰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았다. 내가 노력한다고 바뀔 것도 아니었으며, 혹시 모를 보복도 두려웠다. 적을 만들며 살지 말라는 기성의 조언들이 기억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어떠한 제스처를 취했다고 해도, 은행의 거대한 조직 문화와 수십 년간 만들어진 부조리한 문화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조직이 똘똘 뭉쳐 소수인 나를 그릇된 존재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취업난과 만년대리가 만연한 극심한 현실의 힘을 빌려 나를 굴복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할 필요는 분명히 있었다. 나의 노력과 시도가 조직과 사회, 더 크게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 하더라도 그 시도 자체는 나 개인에게는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시도가 나를 스스로를 표현할 줄 아는 어른다운 어른으로 더욱 성장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에 누군가가 나의 은행원 시절 이야기를 묻는다면,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나의 과거 행위를 설명하고, 상대방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나의 대응 방식이 철저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7월과 8월, 어느 때보다 힘든 여름을 보냈다. 취업을 하는 것보다 퇴사하는 것이 더욱 힘들다. 더욱이 은행을 그만둔 것은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회자될 정도로 은행에 취업한 것보다 파급력이 크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결정해야 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생각했다. 당시에는 초점이 나에게 있지 않았다. 생각은 합리적이고 마땅한 것이었지만, 행동은 그다지 어른스럽지 못 했다. 그리고 마음 먹었다, 앞으로는 철저히 나를 위해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