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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석 Jun 24. 2020

엄마는 홍수를 마시고
아빠는 도둑을 잡아 먹었어

곧 장마다.

그 시작을 알리듯, 

어제부터 날이 흐리다.


장마는 무섭고 싫다.

어렸을 때 장마로 인해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곤 했다.



우리 집은 한강과 아주 가깝다.

지금의 한강은 산책과 운동, 피크닉이 떠오르는 공간이지만, 

예전에는 치수가 되지 않아 늘 홍수로 우리를 괴롭힌 성가신 존재였다.

특히, 2호선이 지상으로 다니는 지역은 더욱 그러했다.


지하철조차 피해가던 이곳에,

나의 부모님은 가진 것이 없어

이 척박한 땅에 살기 시작했고, 

지하방에서 나를 낳았다.


지하방에 살면서 비가 올 때면 늘 물을 퍼내야 했고,

방학이 되면 난 언제나 외가로 피난을 떠났다.


엄마는 이미 젖은 걸레로 방을 닦으며 빗물을 퍼냈고,

아빠는 도둑으로부터 밖에 걸어둔 가구를 지켰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방도 난장판이지만, 우리들의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다.



결혼식 사회를 맡았다.

그 날도 오늘처럼 장마가 쏟아지려는 날이었다.


자양동에서 나고 자란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우리는 소꿉놀이도, 중고등학교 생활도 함께 하다가 어른이 되어 갔다.


한 동네에 꾸준히 산다는 것이 이렇게 큰 축복이구나를 늘 느끼게 해준 친구였고,

힘들 때조차 힘들지 않게 만들어준 고마운 벗이었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차례가 되었다.

친구가 부모님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 하고 고개를 떨군다.

부모님도 친구를 곧장 보지 못 하고, 고개를 돌리신다.

유난히 눈물이 많았다.


내가 부모님 당신들이었다면,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이 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늘 부족하고 가난했던, 

그래서 채워주지 못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일 것이다.

그 미안함에 한없이 흐르는 눈물.


내가 친구였다면,

분명

그 힘든 시기에도 

나 하나를 보살피려 애쓰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음 순서를 곧바로 진행하기에는

감정이 복받쳐 어려워 보였다.


"자양동 사람들은 자부심이 있는데요,

그 자부심은 지금 살기 좋아져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아마 수 십년 전 힘든 시기에

그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살아온 것에 대한 자부심일 겁니다.


오늘만큼은 그 자부심이

부모님에게는 자식에 대한 미안함으로 느껴져

제 친구에게는 부모에 대한 고마움으로 느껴져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그 날처럼 장마가 쏟아지려는 날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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