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큰아들 주성 ①
그이를 닮은 귀여운 아기가 내 옆에 누워있다. 이 아기가 정말 내 속에서 태어난 아기일까? 마음이 이상하다.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그이도 아들을 낳아주었다는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다. 이제는 새 생명이 우리들 앞에 있다. 정말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들의 제2의 인생은. 사랑스러운 아기와 그이를 위하여 즐거운 가정을 꾸려나가도록 좀 더 힘쓰도록 해야지. 『동분의 일기』 1983년 2월 20일 中
팍팍한 시집살이와 무뚝뚝한 남편, 경제적 어려움과 고된 밥벌이까지. 돌아보면 무엇 하나 순탄하지 않았다. 동분은 자주 넘어졌다. 때로 코가 깨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섰다. 두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42살 주성과 38살 주홍 말이다. 사회적 지위로 보나 경제적 수준으로 보나 두 아들 모두, 어떤 면에선 평균을 밑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은 존재 자체로 동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좀 더 아프고 덜 아픈 손가락은 있기 마련. 동분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무게는 같아도, 각각을 대하는 감정과 마음 씀은 다르다. 상대적으로 마음 쓰이는 건, 어쩐지 주성이다.
“니들 어릴 때 툭하면 싸웠잖어. 그래서 엄마가 가끔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렸단 말여. 그럼, 니네 형은 맞기 전부터 벌써 울먹울먹해. 곧 울게 생겼어. 호호호. ‘주성이 먼저 손바닥 내밀어.’ 하면 손바닥을 내밀었다가 뺐다가 허벅지에 비볐다가 막 난리가 나.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그런다니까? 호호호. 한 대만 때려도 아파 죽는다고 팔짝팔짝 뛰고, 손바닥을 막 비비고, 눈물을 훌쩍훌쩍 거리고, 아휴. 열 대 때리는데 한나절이여. 근데 너는 니네 형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도 손바닥 내밀라고 하면 딱 내밀고 열대 맞을 때까지 가만히 있어. 맞고도 아프다고도 안 햐. 입술만 삐죽 내밀고 눈깔 부라리면서 꿍 하고 있는 겨. 그만큼 넌 어릴 때부터 고집도 세고 독한 면이 있었지. 아니나 달라? 대학 다닐 때부터 혼자 자취하면서 알바해가지고 용돈 벌어 쓰고, 혼자 알아서 다 했잖어. 그때 엄마가 생각했지. 주홍이 저놈은 자갈밭에 내놔도 혼자 살 놈이구나. 그래서 사실 니 걱정은 크게 안 해. 아무리 힘든 일 있어도 알아서 잘 헤쳐 나갈 거라고 항상 믿는 겨. 근데 니네 형은 맏아들이어서 한편으로는 의지가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맏아들인데도 자꾸 들여다보게 돼. 어릴 때나 지금이나 니네 형 마음이 여리잖어. 사람 자체가 독하질 못하고. 어떨 때 보면 하는 짓이 엄마랑 똑같다니까.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는 거 같어.”
주성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 쓰이는 자식이었다. 주홍 임신했을 땐 두 번째 임신이라, 경험이 좀 쌓인 터였다. 입맛 없어도 끼니 안 거르고, 비싼 영양제도 챙겨 먹었다. 그 덕인지 3.7kg 우량아로 태어났다. 주성 임신했을 땐 첫 임신이라 뭘 잘 몰랐다. 상황도 이래저래 혼란했다. 끼니를 종종 걸렀다. 옆에서 챙겨주는 어른도 없었다. 영양제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1983년 2월, 주성은 3kg로 태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1983년 출생아수는 769,155명(전체 인구 39,910,403명)이다. 이세돌, 장미란, 이말년(웹툰작가)과 더불어 아기공룡 둘리가 같은 해 태어났다. 김수정 화백의 <아기공룡 둘리>는 1983년 만화전문잡지 <보물섬>에 첫 선을 보였다.
“갓 태어난 니네 형을 봤는데, 아휴~! 팔 다리는 길쭉길쭉한데, 주름이 자글자글한 게 빼짝 말랐더라고. 얼굴에도 명털이 쌔까맣고. 꽉 잡으면 부서질 것처럼 그렇게 쪼만했어. 엄마가 제대로 못 먹어서, 아무래도 다 못 커가지고 나온 거 같은 생각이 드는 거여.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더라고.”
동분은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주성을 업고 시댁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주성은 6살까지 줄곧 사촌누나 영희, 사촌형 철수와 함께 지냈다. 아기 때부터 순해 빠졌던 주성은 남매 상대가 못 됐다. 각각 2살, 1살 더 많은 영희와 철수는 매일 주성을 괴롭혔다. 근데도 졸졸 쫓아다녔다. 동분은 그게 너무 안쓰러웠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시어머니에게 구박받고, 막내 시동생에게 치여 가며 여덟 식구 살림을 책임졌다. 더군다나 ‘장손(철수)’ 사랑이 끔찍했던 시어머니는, 동분이 주성만 감싸는 걸 가만 보지 않았다.
“그러니 니네 할머니 몰래, 저녁마다 주성이 얼굴에 연고 발라주는 것 말고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겨. 그렇다고 집안 살림 나 몰라라 하고, 니네 형만 쫓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리고 뭐 그 시절에 동화책 같은 게 있었겄냐, 장난감이 있었겄냐. 그러니까 니네 형도 영희랑 철수가 매일 괴롭혀도 졸졸 쫓아 댕기는 겨. 셋이서 맨날 들이며 산으로 뛰어 댕겼지.”
시골에서 뛰어다니던 게 몸에 뱄는지, 타고나길 그랬던 건지, 주성은 초등학교 다닐 때도 책상보단 운동장이었다. 학교 끝나고 해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공 차고 놀다가 집에 들어왔다. 와서는 하얀 도화지 하나 펼쳐놓고 그림만 그렸다. 취미이자 놀이였다. 미술학원 한 번 안 다닌 주성이 그림 대회 나가 금상 받았을 때 동분은 깜짝 놀랐다. 그렇듯 주성은 예체능 고루, 능히 남달랐다. 그런 만큼 공부와는 거리가 멀기도 했다.
그랬던 주성 12살 때였던가. 단 한 번도 뭘 사달라거나, 해달라고 한 적 없던 주성이 하루는 동분을 붙들고 하소연하더란다. 전학시켜달라고. 얘길 들어보니 자기는 축구가 너무 좋고, 또래들보다 실력도 월등히 좋으니 축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가고 싶다고 말한 거다. 당시 송일영은 무조건 공부, 오직 공무원이었다.
“엄마도 국민학교 5학년 때 학교 그만뒀고, 니네 아빠도 중학교 댕기다가 그만뒀으니, 공부 못했던 거에 대한 설움이 있었던 겨. 특히 니네 아빠가 심했지. 그런 데다가 엄마나 니네 아빠나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지도 몰랐고. 요즘 부모들은 자식이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또 물어도 보면서 맞춤 교육을 시키잖어. 니네 아빠는 주성이한테 공부 열심히 해서 공무원 하라는 말밖에 안 했어. 주성이가 축구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니네 아빠는 펄펄 뛰면서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지. 운동하다가 실패하면 인생 조지는 거라고.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닌데, 그래도 니네 형이 축구하고 싶다고 했을 때 시켜 줄 걸 그랬나 봐. 엄마는 그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겨. 엄마라도 나서서 니네 형 의견을 존중해 줬어야 하는데, 엄마도 그러질 못했으니까. 니네 형은 또 아빠가 한 번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수긍하는 스타일이잖어. 그렇게 축구 얘기는 쏙 들어갔지.”
그렇다. 주성은 이날 이때까지 동분과 송일영 의견이라면 전적으로 따른다. 그것도 주홍과 다른 점이라고, 동분은 웃으며 얘기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단다. 주성이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 때 있었던 일이다. 중학교 내내 학교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 공부를 잘하는 것도, 그렇다고 까불거리면서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었던 주성. 어느 날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하고 왔더라는 것. 동분과 송일영은 화들짝 놀랐다.
“니네 아빠가 난리 났지. 한 번도 그런 적 없던 주성이가 그러고 집에를 왔으니. 니네 형 한다는 소리가, 친구들이 방학 때만 되면 다들 그렇게 탈색을 한다는 거여.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나 봐. 주성이도 그게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겨. 근데도 못해보다가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겨울방학 기간이 기니까 용기 내서 한 번 해본 거여. 호호호. 근데 니네 아빠가 그걸 그냥 넘어갈 사람이냐? 당장 가서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오라고 막 승질을 부렸지. 그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가더라? 그러고 바로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왔어. 호호호. 니네 형은 항상 그랬어. 니네 아빠가 뭐 얘기하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했지. 너 같았어 봐. 눈 똥그랗게 뜨고 바득바득 대들면서 아빠가 나 탈색하는 데 돈 보태줬냐고 했을 거 아녀? 호호호. 실제로 너는 그런 적 많았잖어? 고등학교 때 니네 아빠랑 대판 싸우고 가출하고, 대학 때도 서로 몇 달 동안 말도 안 하고. 아휴, 아무튼 간에 니네 아빠나 너나 성질머리 똑같아가지고.”
주성은 그렇듯 무탈하게 중학교까지 졸업했다. 그리고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얘기했던 것처럼 공부엔 취미 없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엔 갈 수 없었다. 동분은 그 시절 주성을 이렇게 기억한다.
“니네 형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문제집 한 번 사달라고 한 적이 없어. 학원 한 번을 안 다녔고. 중학교 다닐 때도 엄마가 가끔 ‘주성아, 문제집 같은 거는 필요 없어? 학원은 안 다녀도 괜찮겠어?’ 하면 ‘엄마, 나는 공부는 아닌 거 같어. 공고 가서 일찌감치 취직할 거야.’ 그러더라고. 그렇다고 또 사고 치고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었지. 학교랑 집밖에 몰랐으니까. 니네 형이 대전에 평생 살았으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대전역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여.”
축구선수 꿈은 포기했지만, 주성의 축구 사랑은 그 뒤로도 쭉 이어졌다. 중학교 다닐 때도 공 차고 노는 것밖에 모르더니, 축구부도 없는 고등학교에서는 자체적으로 축구팀을 꾸려 대회에 나갈 정도였다. 축구팀 만든 것도 주성, 감독 겸 주장도 주성, 팀의 에이스이자 공격수도 주성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나간 대회에서 덜컥 우승까지 해버린 것. 학교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말이다. 주성은 종종 얘기한다. “내가 그때 축구부 있는 학교로 전학 가서 계속 축구했으면 염기훈, 조원희(둘 다 83년생이다.)보단 낫지~!” 그러고 말 줄 알았더니, 요즘은 넷이나 되는 애들을 이따금 동분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프로축구 경기 보러 다닌단다. 하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안정환이 이탈리아 상대로 결승 골 넣었을 때, 눈물을 꺼이꺼이 흘리면서 좋아하던 주성(그 당시 20살)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나 축구에 진심이다. 주성은.
주성은 제법 먼 거리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통학버스를 타고 다녔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학교 마치고 옆길로 한두 번씩 빠질 법도 하건만 주성은 한결같았다. 학교 끝나면 곧바로 통학버스에 탔고, 곧장 집으로 왔다. 동분은 “니네 형은 집에 무슨 꿀단지라도 숨겨놓은 사람처럼, 학교 아니면 집이었어. 호호호.”라고 표현했다.
마음 여리고 순했던 주성에게도 물론, 사춘기는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하루는 학교 끝나고 집에 온 주성이 가방을 의자에 ‘툭’ 집어던지고, 괜한 짜증을 부리더라는 것. 동분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아 몰라, 짜증 나니까 건들지 마.”라는 말뿐이었단다.
“그래서 직감한 거지.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사춘기구나. 엄마도 아들 사춘기는 처음이었으니까 뭘 아냐? 더군다나 니네 형은 그때까지 말썽 한 번 안 부린 애였으니까 더 당황스러웠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친구한테 전화해서 물어본 겨. 그때 친구는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었거든. 그 친구 말이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해서 친밀감을 쌓고, 아들이 속 얘기를 할 수 있게 이끌라는 겨. 그 다음다음날인가? 니네 형이 집에 왔는데 또 그러더라고. 입술을 잔뜩 내밀고 짜증을 계속 내는 겨. 그래가지고 앉혀놓고 얘기했지. ‘주성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니까 엄마한테라도 얘기를 좀 해. 문제가 뭔지 알아야지 엄마도 도와줄 거 아녀.’ 그랬더니 자기도 이유를 모르겠는데 괜히 화가 나고 승질이 난다는 겨.”
동분은 주성을 다독여 줬다. 그때도 주성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게 전부였다. 동분이 기억하는 주성의 사춘기.
“물론 그다음부터 속으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겉으로 드러내면서 짜증 부린 건 그 3일이 전부였어. 그것도 보면 니네 형이랑 너는 참 달러. 너는 학창 시절에 집 오면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있었던 일 다 얘기했잖어. 그러니까 너 사춘기 때 엄마가 속은 편했지. 그래도 니가 뭔 생각하는지는 알았으니까. 근데 니네 형은 도통 속 얘기를 안 하니까, 엄마는 초조해 죽겠는 겨. 주성이 저놈이 뭔 일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얘길 안 하니까. 연애도 그려. 니네 형은 총각 때 엄마한테 여자친구 얘기를 단 한 번도 안 했어. 당연히 니네 형 여자친구는 한 명도 못 봤지. 그래서 엄마가 걱정했다니까? 도대체 연애는 하고 다니는 건지. 근데, 호호호. 니가 만났던 여자친구는 엄마가 다 봤잖어. 엄마는 다 기억해, 니 여자친구들.”
주성은 짧디짧은 사춘기를, 국가대표 육상선수가 허들 넘듯 무난히 넘겼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계 내고 공장에 취직했다. 그때부터 2~3년간 묵묵히 공장에 다녔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동분과 송일영 용돈을 매달 챙겼다. 그러는 사이, 한국 남자라면 거를 수 없는 군 입대 시기가 찾아왔다.
“그때 니네 아빠가 어디서 부사관 얘길 듣고 온 겨. 부사관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갈 수 있는 직업군인이잖어. 운동 좋아하고 체격 좋은 니네 형한테 딱 어울리긴 했지. 어차피 군대는 가야 하는 거고 일반 군대 갔다 와 봐야 다시 공장 생활해야 할 텐데, 그러느니 부사관 가서 말뚝 박아라. 니네 아빠는 그렇게 생각했던 겨. 아무튼 니네 아빠는 끝까지 나랏밥이었어. 그래가지고 니네 형 앉혀놓고 부사관에 지원하라고 한 거지.”
단 한 번도 송일영 말을 거역한 적 없던 주성은 펄펄 뛰며 죽어도 부사관 가기 싫다고 했다. 일주일간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송일영은 주성 볼 때마다 부사관 가라, 주성은 그때마다 싫다, 그야말로 팽팽한 신경전이었다. 딱 일주일이 지났을 때, 주성이 동분과 송일영에게 할 말이 있다며 부르더란다.
“앉자마자 니네 형이 진짜루 꺼이꺼이 울면서 ‘아빠 저 부사관 갈게요. 지원해서 열심히 해볼게요.’ 하는 겨. 아니, 가면 가는 거고, 안 가면 마는 거지, 뭘 그렇게 서럽게 울면서 간다고 하느냐고. 호호호. 근데, 그때는 진짜 엄마도 마음이 안 좋더라고. 그래가지고 엄마가 ‘주성아, 그렇게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뭘 울고 그래. 가지마 주성아, 괜찮아.’ 했는데도 양손으로 눈물을 훔쳐 가며 ‘아니여. 나 가기로 마음 먹었어. 내가 생각해도 부사관밖에는 답이 없는 거 같어.’ 하더라고.”
결국 2003년 3월, 주성은 부사관으로 군대에 갔다. 주성이 입대하던 날을 동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날따라 봄비가 질척질척 내렸다. 훈련소에 갔더니 주성 또래 청년들이 바글바글했다. 곧이어 우비 입고 운동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다들 머리는 까까머리지, 우비는 입었지, 우르르 몰려가서 운동장에 모여 있으니 도통 니네 형을 못 찾겠는 거야. 니네 아빠랑 한참 찾고 있는데, 인솔자가 앞에서 인솔해가지고 다들 어디로 데려가더라고. 그때 저 끝에서 니네 형이 ‘엄마’ 크게 부르면서 손을 흔들더라? 그러더니 또 양손으로 눈물을 막 훔치면서 들어가는데 아휴~! 그 모습 보니까 엄마가 진짜 가슴이 미어지는 겨. 니네 아빠도 마찬가지고. 어쨌거나 가기 싫다는 애 등 떠밀어서 보낸 거잖어. 그날 니네 아빠랑 둘이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가지고 비를 홀딱 맞아가며 얼마나 울었나 몰라. 엄마는 그러고도 한 일주일은 훌쩍거리며 다녔던 거 같어. 니네 형 안쓰럽고 미안해서.”
그때부터 동분에게 주성은 늘 ‘주기만 하는 아들’이었다. 동분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던 적이 언제 있었겠냐만, 주성이 부사관으로 입대한 2003년도 녹록치 않았다. 얘기했듯, IMF와 홈쇼핑 여파로 이불 가게를 접은 동분과 송일영은 이즈음 2.5톤 탑차에 이불 싣고 전국을 떠돌며 팔 때였다. 길바닥 장사는 그야말로 궁여지책이었다.
“누구는 길바닥에 이불 늘어놓고 팔고 싶어서 팔았겄냐? 먹고 살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했던 거지. 근데 뭐,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매일매일이 쪼들릴 때였지. 그런 데다가 너도 고등학교에 막 올라갔을 때니까, 과외니 참고서니 돈이 한두 푼 들어갔냐고.”
그때마다 동분은 주성에게 전화했다. 아들 보기가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했지만,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주성은 20만 원도 보내주고, 30만 원도 보내줬다. 그러더니, 나중엔 매달 40만 원씩 고정적으로 보내줬다.
「공무원보수규정」 제2장 봉급 제5조(공무원의 봉급) [별표 13] 군인의 봉급표에 따르면 2003년 하사 1호봉 월급은 575,500원이었다. 당시 주성은 기본 월급에 시간외수당을 더해 월급으로 100~120만 원 정도 받았다고 기억한다. 참고로 2023년 하사 1호봉 월급은 1,770,800원이다.
“니네 형이 뭐 월급 많이 받아서 그렇게 보내줬겄냐? 우리 집 형편 뻔하고, 그때마다 엄마가 전화해서 ‘주성아, 미안해서 어뜩하냐’ 하는 게 니네 형 딴에는 마음이 안 좋았겄지. 아들이 엄마한테 생활비 주는 게 뭐 별거라고 매번 쩔쩔 매는 엄마 모습이 싫었던 겨. 그래가지고 한 번은 니네 형이 먼저 얘길 하더라고. ‘엄마, 그러지 말고 그냥 매달 40만 원씩 보내드릴 테니까 생활비 보태고 주홍이 참고서 사주고 해요.’ 그 말 듣는데 아휴. 엄마도 진짜 마음 같아서는 ‘아녀 주성아, 너도 돈 부지런히 모아서 장가가야지.’ 하고 싶은데,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오는 겨. 그 돈이나마 진짜루 아쉬울 때였으니까. 그래가지고 못 이기는 척 받았다는 거 아니냐. 아무튼 간에 니네 형은 늘 엄마한테 주는 아들이었어.”
결과적으로 주성은 군인 체질이 아니었다. 송일영은 큰아들이 평생 직업군인으로 살길 바랐지만, 주성은 4년의 의무복무를 끝내고 2007년 여름 전역했다. 스트레스성 탈모로 이마가 훤히 드러난 주성에게, 동분과 송일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주성 나이 25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