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못된 남편이었다.
기차 안 식당에서 사 먹는 밥이 아까워서, 타기 전에 먹을 것을 잔뜩 준비하자고 했던 남편이었다.
미치도록 눈이 쏟아지던 날. 힘겹게 한인 슈퍼를 찾아, 컵라면을 잔뜩 사 들고 좋아했던 남편이었다.
컵라면 8개로 부족할까 싶어, 빵집에서 빵을 더 사라고 독촉했던 남편이었다.
준비한 음식이 너무 많아, 기차 안에서 다 못 먹고 남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까지 했던 남편이었다.
아침은 빵, 점심은 컵라면, 저녁도 빵. 다음 날 아침은 컵라면.
이렇게 먹으면서, 당신에게 맛있냐고 물어보던 뻔뻔한 남편이었다.
우리가 기차에서 언제 이렇게 먹어 보겠어라고 당신이 대답했을 때, 그 말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남편이었다.
당신이 컵라면을 다 먹고, 국물에 누룽지를 말아먹으면 더 맛있다고 알려주던 날.
침이 마르게 칭찬했던 남편이었다.
당신보다 더 먹고, 몰래 훔쳐 먹고 나서도, 허기진다고 투정까지 부리던 남편이었다.
누군가 샌드위치를 먹는 게 부러워서 우리도 샌드위치 사 먹자고 호기롭게 말해놓고도,
$7씩이나 하는 가격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던 남편이었다.
기차가 연착돼서 매점에서 식사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했을 때,
눈치 한번 안 보고 제일 먼저 매점으로 달려갔던 남편이었다.
컵라면을 먹고 있는 우리를 지나가는 여행객들.
그들이 우리를 쳐다보면서 지나갈 때, 우리가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고 위로했던 남편이었다.
식사 시간마다 어디론가 이동하는 여행객들.
그들이 사실은 식당 칸으로 가는 것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날.
알고도 아무것도 모른 척하던 남편이었다.
마침내 당신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도 기차 안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고 좋아했을 때,
아무것도 못 들은 척했던 남편이었다.
기차 안에서 한 끼 정도는 식당 가서 사 먹을 걸 그랬어.
당신이 생각해도 당신이 좀 심했지.
당신이 그렇게 말했을 때, 당신 몰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정말 못난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