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찾은 아내의 이모님 댁. 삼돌이는 여전하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짖기는커녕 놀아달라고 앞발을 치켜든다. 수문장으로 불합격이다. 안쪽의 누렁이는 이름이 다빈이란다. 이제 겨우 한 살인데, 몸집이 크다. 낯선 나를 보고, 쉬지 않고 짖는다. 가까이 다가가자, 숨는다. 이 녀석도 수문장으로 불합격.
터줏대감 개 다다가 보이지 않는다. 바람났단다. 동네 수캐들이 자꾸 꼬여서 줄을 끊고 도망갔단다.
현관 입구에 안 보이던 소 사료가 쌓여있다. 이제는 소도 키우시나?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장모님이 집을 나서신다. 아마도 흑염소 밥을 주러 나가시는 길일 것이다. 따뜻한 이불을 벗어나기 싫은 아내는 나보고 어서 뒤따라 가보라고 채근한다. 어제 흑염소 저녁밥 주다가 장모님이 뒤로 넘어지실 뻔했단다. 부랴부랴 옷섶을 챙기고 뒤를 따라나선다. 예상대로 흑염소 우리 쪽으로 가시는 장모님. 익숙한 몸놀림으로 밥을 주고, 갑자기 땅을 파신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장모님이 흑염소 똥을 묻으려는 줄로만 알았다.
잠깐 한눈판 사이, 눈앞에서 갑자기 장모님이 사라지셨다. 한 손에 무언가 끌고서 다시 나타나셨다. 왼손에 끌려오는 건 분명 흑염소다. 갑자기 섬뜩한 기분이 든다. 또 땅을 파시는 장모님. 얼마 깊이 파지도 않으시고, 흑염소를 구덩이로 옮긴다. 흙을 덮기 시작하신다.
“장모님! 삽 주세요. 제가 할게요.” 모든 상황이 짐작되었다. 간밤에 흑염소 한 마리가 죽었나 보다.
“자네 언제 왔는가?” 화들짝 놀라시는 장모님. 순순히 삽자루를 내게 건네주신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떨리신다고 하셨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드시단다.
“어젯밤에만 해도 분명 멀쩡했는데, 간밤에 이슬 맞은 고구마 줄기를 줘서 죽었을까?” 장모님은 당신이 주신 먹이를 의심하고 계셨다. 당장은 알 길이 없다. 묵묵히 흙을 퍼서 흑염소를 덮는다.
죽은 흑염소를 묻고 나서, 장모님을 겨우 진정시키고, 검색한다. 도대체 흑염소는 갑자기 왜 죽은 걸까? 어제만 해도 건강했다는데. 흑염소를 키우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찾아보았다.
흑염소가 죽인 원인은 이슬 맞은 고구마 줄기가 아니었다. 소 사료가 원인이었다. 흑염소에게 소 사료를 주면, 요소 중독에 걸려 죽을 수도 있단다. 장모님에게 이유를 알려드리고, 다음날 이모부님에게도 자초지종을 설명해드렸다. 물론 소 사료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가만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이모부님, 흑염소가 갑자기 죽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셨다. 벌써 3번째란다. 그러고 보니, 사료를 바꾸고 나서부터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아내에게 흑염소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아내. 어쩌면 염소가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걸지도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검색하더니, 염소가 기절하는 모습을 찾아서 보여주었다. 영상 속에서는 정말로 멀쩡하던 염소가 픽하고 쓰러졌다. 죽은 듯 기절했다. 갑자기, 염소가 죽은 게 아니라 기절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은 땅속에서 깨어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다닐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이모부님은 사료 가게로 바로 달려가셨다. 사료 가게 주인이 그러더란다. 흑염소에게 소 사료를 주는 건 개밥을 주는 거랑 같다고. 절대로 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단다. 도대체 누가 소 사료를 주라고 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이모부님의 친구가 소 사료를 줘도 된다고 우겼단다.
며칠 뒤, 아내가 이모님에게 흑염소의 안부를 물었다. 이모님은 남은 흑염소들은 모두 건강하다고, 사료 때문에 죽는 흑염소는 없다고 하셨다.
흑염소가 죽던 그날 밤. 간밤에 울었던 건 개들이 아니라, 흑염소들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날따라 흑염소들의 울음소리가 좀 달랐던 것 같기도 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도 긴 울음소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