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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um Nov 17. 2019

자전거 여행기 01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해보자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나였다. 순진하고, 무모한 계획이었다. 


몇 년 전, 둘 다 제주도에 미쳐있을 때였다. 제주 올레길을 걷고 나서부터 앓기 시작했던 열병 탓인지 제주로 이사하는 꿈을 날마다 꾸었다. 제주에서 살고 싶었다. 제주도 어디가 살기 좋은지 한 바퀴 돌아보자고 아내를 줄기차게 설득했다. 자전거로 제주를 한 바퀴 돌면 윤곽이 드러날 거라고 장담했다. 아내도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 뭉그적거리던 아내가 말했다. 한번 해보자고. 생각보다 자기가 자전거를 잘 탄다고 자랑까지 곁들였다.


동네 공공자전거를 빌려서 같이 달렸다. 일종의 맛보기였다. 예행연습이자, 전지훈련이었다. 아내는 자기 말마 따라 생각보다 자전거를 잘 탔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렸다. 기대보다 빠르게 달리지 못했지만, 그때마다 아내는 공공자전거 탓을 했다. 낮은 언덕도 잘 올라가지 못했지만, 3단뿐인 공공자전거 탓을 했다. 좋은 자전거만 있으면, 제주도 한 바퀴 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날 이후, 좋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제주도의 자전거 매장에서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었다. 자전거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선택하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였다. 줄곧 동네 공공 자전거만 탔던 우리는 어떤 자전거가 좋은 자전거인지 알 수 없었다. 날렵하게 잘 빠진 자전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부실해 보였다. 속도보다는 일단 튼튼해야 했다. 짐도 실어야 했고, 내 무거운 체중도 견뎌야 했다. 최종선택은 산에서도 달릴 수 있다는 MTB 자전거였다. 제주도에서 산은 달릴 일이 없겠지만, 가장 튼튼해 보이고 믿음직스러운 자전거를 골랐다.


일주 계획은 단순했다. 제주도 평면지도를 꺼내 놓고,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사 등분했다. 하루에 50km씩, 4일이면 충분해 보였다. 아내는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좀 더 여유 있게 달리고 싶다고 했다. 난 이것도 여유 있는 거라고 항변했다. 시속 20km 속도로 하루에 3시간씩 달리는 거라고, 절대 무리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건 제주도를 둘러보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거 아니냐고 내게 따졌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아내가 옳았다. 나는 시속 20km가 얼마나 빠른 건지도 몰랐다. 우리가 주로 달리게 될 제주 해안도로는 대부분 평지 일거라고 착각했다. 바닷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자전거가 문제라고 오판했다. 좋은 자전거만 있으면, 일주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최종 계획은 아내의 뜻에 따랐다.

아침 일찍 출발해서 부지런히 달려 일찍 도착하는 것을 기본계획으로 잡았다. 남은 시간 동안, 동네 주변을 여유롭게 돌아보기로 했다. 자전거는 반시계 방향으로 달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바다를 최대한 가까이 보면서 달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첫날은 제주시에서 보내고, 둘째 날에는 애월, 셋째 날에는 모슬포, 넷째 날에는 서귀포, 다섯째 날에는 성산, 여섯째 날에는 조천에 머무르는 것으로 정했다. 일곱째 날, 제주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정해놓고 나서 보니, 숙박을 예약한 지역이 올레길을 걷는 동안 좋아했던 곳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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