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아.”
거의 정상에 이르러서야 나는 아내에게 실수를 인정했다. 묵묵히 오르막길을 뒤따라 오르던 아내가 그제야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아내는 중턱에서부터 눈치를 챘었다. 조심스럽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몇 번씩이나 이의를 제기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엉뚱한 곳에 도착해 버렸다. 한바탕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을 만한 상황이었는데, 의외로 아내는 담담했다. 정상까지 오르느라 맥이 다 풀려버린 얼굴이었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까 저 위에 절이라도 보고 가자.” 아내는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그 말이 정말 고마웠다. 이제는 아내가 앞장서고, 내가 뒤따른다. 그저 묵묵히 아내 뒤를 따라 걸을 뿐이다.
절 입구에는 부조로 새겨진 부처님이 웃고 있었다. 자네! 길을 잃었나 보군.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길을 잃을 수는 있어도 잘못된 길이라는 건 없으니까. 익살스러운 부처님의 표정이 꼭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내도 부처님의 자애로운 표정에 위로가 됐는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스님 한 분만 계시는 작은 절이었다. 스님은 마당에서 무언가 하고 계셨다. 얼마나 집중하셨는지, 우리가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셨다. 궁금했던 아내가 스님 곁에서 물었다.
“스님, 이 절 이름이 무엇인가요?”
“이~절~어험! 흠! 흠!” 스님이 뒤돌아보면서, 우리에게 대답하려다가 황급히 말문을 닫으셨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우리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스님이 진정되시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스님은 마저 대답해주지 않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셨다.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기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스님도 생리현상이 있으실 테니까, 우리가 이해해야만 했다. 스님은 아주 급하신 듯, 황급한 걸음새로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작은 절이지만, 아름다웠다. 특히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었다. 온종일 바라보고만 있어도 득도할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스님은 날마다 이런 풍경을 보시면서, 마음을 닦으시겠구나. 갑자기 스님이 부러워졌다.
한동안 보이지 않던 스님은 급한 볼일을 잘 마무리하셨는지 다시 나타나셨다. 여전히 표정이 어두운 게 이상했다. 우리가 스님에게 다가가면, 스님은 먼발치도 떨어지셨다. 스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왠지 자꾸 우리를 피하시는 것만 같았다. 별 이상한 스님이 다 있으시네. 이렇게 좋은 경치에서 마음만 닦으셔서 사람이 싫으신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들어, 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스님도 우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갑자기 정이 떨어졌는지, 아내가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뒤돌아서 막 내려가려는 순간, 어디선가 보살 한 분이 나타나셨다. 아내가 보살에게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스님께서 절 이름도 안 가르쳐 주셔서 섭섭하다고 했다. 가만히 듣던 보살께서 지금 스님이 묵언 수행 중이라고 했다.
“아까 스님이 자기한테 뭐라고 말하지 않았어?”
“내가 절 이름 물었을 때?”
“그때 스님이 분명히 뭐라고 하셨는데.”
“나도 분명히 들었어. 절 이름 가르쳐 주시려고 몇 마디 했다가 황급히 입을 닫으셨지.”
아무래도, 깊은 산중에 있는 절이라서 아무도 찾지 않을 거라고 스님이 방심하셨던 것 같았다. 본의 아니게, 우리는 스님의 묵언 수행을 깬 부부가 되었다. 모든 게 길을 잘못 든 내 탓이다. 길을 내려오면서, 절 입구의 부처님 미소가 불현듯 떠올랐다. 세상에 잘못된 길은 없다고 말씀하시던 부처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