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죄죄한 눈물

왜 그리 울었던가

by 원효서


거의 모든 눈물이 곤란하지만, 우울의 눈물만큼 대처가 힘든 눈물은 없었다. 우울의 눈물은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흘러내렸다. 코가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짐과 동시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손수건은커녕 휴지조차 들고 다니지 않는 나는 버스 안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 옷에 슥슥 닦았다. 밤늦은 시간의 퇴근길이면 그나마 나았다. 버스에서만 버티면 어두운 밤거리를 걸으며 그칠 수 있었으니까. 정말 곤란한 건 출근길의 눈물이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끝내 눈물이 나왔다. 다른 이유를 찾아도 보았으나 역시 연애가 문제였다. 앞날이 안 보이는 연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끝내 슬픈 날일 수밖에 없는 깜깜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지만, 버텼다. 버스에서 울고 출근하면 쾌활하게 일했다. 퇴근길에 또 울지만 술을 마시면 웃다가 잠들 수 있었다.


연애감정에 내 모든 것을 맡겼다. 내가 그를 좋아하니까, 내 사랑의 값어치가 하찮을 리가 없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면 매번 회피하는 사람이었지만 '지금 상황이 힘들어서 그렇겠지.' 하고 나 자신에게조차 한 번도 베푼 적 없는 이해심을 발휘했다. 당장 결혼하자며 나를 설득하던 그의 사랑이 사라졌을 리는 없었다.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내 마음을 자책했을 뿐.


만난 세월이 긴 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추억도 많았겠지만, 술자리의 여흥 같은 순간들만 우스갯거리로 남겨졌다. 10년도 훨씬 지난 그 연애를 떠올리면 '아, 그때 헤어졌어야 했네.' 하는 장면만 몇 가지 떠오른다. 어느 밤, 퇴근길에 또 터진 눈물이 도저히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의 집으로 찾아간 적이 있었다. 길에서 울 수는 없고 여동생이 있는 집에서는 더욱 울 수 없었다. 자고 있는 그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은 아무리 숨죽여 울어도 들키는 원룸이었다. 잠에서 깬 그는 바로 화를 냈다.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했다. 오밤중에(11시가 넘은 시각) 찾아와서 말도 없이 엉엉 우는 게 뭐 하는 짓이냐는 다그침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걸 알지만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울보 이미지도 아닌 여자친구가 울고 있으면, 자초지종을 따지기 전에 달래주어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들자 서러움이 터져 나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울음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에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누기라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기진맥진하도록 울었고, 그는 끝까지 내 울음을 외면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싸우면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 울음을 그쳐도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집에 왔고 새벽에 길고 긴 통화를 했다. 그때 헤어졌더라면 몇 년이나 더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의문형인 내 말에 오랜 침묵으로 답하던 그는 이별을 통보하고 싶었을 텐데, 내가 눈치가 없었다. 눈치는 있지만, 눈먼 척하고 있었던 거겠지.


헤어진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서너 번 이별하기도 했다. 장문의 이메일로 내가 진심이 아닌 이별을 말한 적이 있고, 술에 취한 그가 이별을 통보한 적도 있다. 술이 깨면 우리는 화해했고 그런 일을 반복할 때마다 나는 점점 헤어지는 법을 잊어버렸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인생에서 그토록 열렬히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위태롭고 불안한 정신으로 하는 연애는 점잖게 표현해도 집착일 뿐이었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불안으로 울고, 끝내지 못하는 미련으로 또 울었다. 더 이상 둘 사이에서 헤어짐 비슷한 단어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청유형 문장이 없는 사이는 어차피 끝'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울고 또 울었다.

마침내 마지막 만남, 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오기로 하고 연락두절로 약속을 깬 그는 자정 넘어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했다. '지옥, 공멸'같은 단어들로 사람을 놀라게 하고 만취해서 쿨쿨 자는 그를 깨우다가 나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그는 내 얼굴을 마주 보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술에서 깨어나도 그의 단어 선택은 지난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있든 없든 그의 삶은 지옥이었고, 내가 있으면 더 힘들다는 설명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눈물을 흘렀다. 겨우 끊었던 담배를 피우며 엉엉 울었다. 그 와중에 담배는 다시 피우지 말라는 가증스러운 배려를 하던 얼굴을 비웃으며 목이 마르도록 담배를 피웠다. 끝내 그의 입에서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내가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주면 덜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정말 나는 생각하지 말고 너의 인생을 잘 고민해 보라고, 놀랍게도 진심을 담은 말을 건넸다.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문밖을 나서자 쨍한 태양 아래 내 몰골이 부끄러워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완전히 헤어짐. 저녁에 시간 되니?'

며칠 동안 퇴근 후에 그를 아는 내 친구와 직장동료들에게 이별 소식을 전했다. 끝까지 예의 없었던 그의 행동과 말들을 하나하나 비웃으며 술을 마셨다. 어떤 언니는 내 이야기가 판소리 같다고 했고, 다른 언니는 웃으면서 말해서 더 슬퍼 보인다고도 했지만, 지인들의 걱정과 염려는 웃어넘겼다. 내 일 같지 않은 이별 이야기가 나에게도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이제부터 전투적으로 소개팅을 해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겠다!라고 내 말 같지 않은 다짐을 선포했다. 수시로 전화기를 들여다보았지만 그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매일밤 베개를 적실 각오로 잠자리에 누웠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고 잠들어도 산란한 꿈속을 헤매느라 피곤했다. 일기를 쓸 수 없었고 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모니터와 책을 바라보며 눈물이 말라버린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그와 나는 오래 만난 사이가 아니었다. 단지 너무 오래 걸려 헤어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