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그린 Jun 08. 2022

여름을 만난 여름

너는 나의 여름


 갑자기 입원했다. 몇 시간 전 나는 다른 임신부 한 명과 작은 방에 나란히 누워 둥그런 배에 전극 같은 것을 붙이고 누워 있었다. 진료 전날 갑자기 얼굴과 손발이 부어오르고 배 뭉침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에 왔다. 늘 무덤덤하고 태평해 보이는 담당 의사가 지진파 기록처럼 보이는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심박 그래프가 영 마음에 안 드네. 이상하다." 했다. 소견서를 써 줄 테니 차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며칠 입원을 할 수도 있는데 계속 이 상태면 다음 주에 유도분만을 하자고 했다. 남편은 나를 차병원에 내려주고 출근을 했다. 마침 병원 점심시간이라 대기가 길었지만 '양수과소'라는 글씨를 본 원무과 직원이 응급으로 산부인과 접수를 해주었다. 응급이라니, 그 정도인가?

 응급 접수를 했지만, 산부인과에는 대기 인원이 많았다. 두 시간이 넘게 대기실에 앉아 가까운 빵집과 버스 정류장을 검색했다. 임신 기간 내내 성장기 때보다 강한 식욕을 감당하느라 힘든 참이었는데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해 배가 너무 고팠다. 먹고 싶은 빵의 이름을 줄줄 외며 기본적인 문진표를 작성하고 초음파실에 다녀와 만난 의사는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역정을 내는 것이 아닌가. 나의 산모 수첩과 소견서, 초음파 검사 결과지를 신경질적으로 펄럭이며 속사포처럼 한 말들은 이랬다.

 ‘이런 산모가 제일 골치가 아프다. 노산에 초산에 태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평균 이하로 작은데 만삭이 되어 갑자기 나를 찾아오면 내가 어떻게 책임을 지라는 것인가. 지금 웃을 때가 아니에요. (나는 가끔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바보처럼 웃곤 한다) 아주 위중한 상황일 수 있어요. 내가 하라는 대로 다 할 거예요? 갑자기 이런다고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는 않을 거죠? 확실히 약속하세요. 지금 당장 여기 입원하든지 다른 병원으로 가세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시키는 대로 입원을 했다. 원피스형 환자복을 입고 원래 다니던 병원보다 확실히 선명하게 잘 보이는 초음파 화면을 보던 선생님이 태아에게 영양공급이 잘 안 되고 있다고 했던 말을 계속 떠올렸다. 임신하고 처음으로 작은 산부인과에 다니기로 한 결정을 후회했다. ‘처음부터 대구에 있는 규모 있는 병원에 갈 걸, 아이가 작다고 했을 때 담당 의사라도 바꿀 걸, 유난을 좀 떨고 조심조심할 걸, 어제 몸이 퉁퉁 부었을 때 산책을 하지 말걸….’
 팔에는 링거를 꽂고 태동을 검사했다. 화면과 종이에 보이는 삐죽삐죽한 그래프는 지식이 없는 내가 봐도 지나치게 잔잔했다. 그날따라 나뿐이던 분만 대기실의 간호사가 친절해서 잠시나마 진정할 수 있었다. 바늘을 잘못 꽂아서 왼팔에서 피가 철철 흐르긴 했지만 아프지 않았다. "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이러면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요?"라는 내 질문에 간호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오늘 아마 수술하게 되실 거예요."

 제왕절개를 한다는 말이구나. 그래, 자연분만보다 덜 무서울 것 같아. 전치태반이라고 했을 때부터 은근히 제왕절개 하기를 바라고 있었잖아. 그런데, 아기는 괜찮은 거야? 나의 여름이는 지금 괜찮은 거야?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가족들에게 입원 소식을 알리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오늘 아침에는 샤워도 못 했는데…. 다시 등장한 의사가 나에게 식사는 언제 했느냐고 물었다. 어제저녁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하자 보호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지금 마침 수술실이 비고 마취과 의사도 시간이 딱 맞는다고 하니 수술을 해야겠다고, 태아의 심장박동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남편의 회사로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낳는다고? 수술? 남편도 당황한 목소리로 출발하겠다고 했다. 차가 막혀 남편이 늦는다고 하자 일단 나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의사가 간호사에게 엄포를 놓는 목소리가 들렸다. "만약에 보호자가 와서 뭐라고 하면 바로 구급차 불러서 다른 병원으로 보내세요."
수술실로 들어온 의사는 무서운 말만 했다.
"지금 신생아실에 인큐베이터가 있다고 하는데, 혹시 아이를 못 보고 바로 인큐베이터로 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괜찮아도 얼굴만 보고 바로 인큐베이터에 보내야 해요. 아시겠지요?"

'의사들은 원래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말하는 법이다. 아이가 2.1kg이라도 괜찮을 거다. 나도 2.4kg으로 태어났지만 이렇게 건강하지 않은가. 괜찮을 거야.'
나는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마취하기 직전 수술실 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반신 마취의 감각은 이상했다. 오늘 벌어지는 모든 일이 현실감이 없었다. “6월 27일 18시 45분 출생, 체중 1.83kg.” 의사의 목소리에 뒤이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의사가 밝아진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아기 우네. 아기 운다. 괜찮겠다. 산모님, 아기 보이죠?"
 내 몸에서 나온, 그러나 너무 멀리 있는 듯한 새빨간 아기가 눈앞에 다가왔다 멀어졌다. 정말 작은 내 아기, 머리가 겨우 토마토만 한 크기잖아.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아기 괜찮아요? 괜찮은 거예요?"
"자, 이제 전신 마취하고 마무리합니다. 쉬세요."
의식이 사라져 가는 순간 의사가 간호사들과 나누는 쫄면이 맛있는 분식집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안심했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닌가 봐.’

 회복실에서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멍한 와중에 혼자 있던 간호사에게 말을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여기 종일 계시는 거예요? 춥지 않아요?"
"조금 서늘하죠? 저는 괜찮아요. 산모님, 좀 더 주무세요."
다시 깨어났을 때는 밤이었고 나는 입원실의 침대로 옮겨지는 중이었다. 간호사가 무언가 설명했지만, 진통제 버튼 외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랫배를 뜨거운 걸로 지지는 듯 아팠고 몸속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휴대폰을 집어 들고 육아 선배들인 절친 카톡방에 출산 소식을 알렸다. 마침 여름이와 생일이 같은 친구가 ‘저녁에 태어난 개띠는 사주팔자가 아주 좋아. 이제 여름이 생일날마다 내 생각도 하겠네. 우리 평생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하고 발랄한 메시지를 보내 웃으려다 배가 아파 멈추었다.

 자다 깨다 하던 깊은 밤에는 남편에게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독일을 2 : 0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진통제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구역질만 올라와 더욱더 아파질 뿐, 쓰고 미끈거리는 액체를 왈칵 토해낸 후에는 어서 씻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름도 무서운 신생아 중환자실의 면회 시간은 매일 1시부터 30분간이었다.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겨우 환자복을 갈아입었다. 복도를 느릿느릿 오가는 산모 중에서도 가장 느린 걸음으로 아기를 만나러 갔다. 비닐 옷을 입고 간호사가 이끄는 대로 서늘한 병실 안쪽 인큐베이터 앞까지 갔다. 거기에 나의 여름이가 누워 있었다. 정말 작고, 너무 마르고, 까무잡잡하고 발그스레한 아기. 엄지손가락만 한 손목과 발목에 주삿바늘과 몇 개의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작은 얼굴에 호흡기를 쓰고 있는 모습이라니,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아과의 신생아 담당 의사는 체구가 자그마하고 말투가 부드러운 여자분이었다. 간호사가 건네준 휴지로 눈물 콧물을 닦으며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하는 나에게 ‘엄마, 아기 괜찮을 거예요.’ 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양가 부모님이 오셔서 비어 있는 1인실로 병실을 옮겨 주었다. 넓고 커다란 창문 밖에 산이 바로 붙어 있었다. 어른들은 시골에 돌아가고 남편은 집과 병원을 오갔다.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기가 힘들어 오래 서 있었다. 많이 걸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해서 병실 안을 오락가락했다. 텔레비전은 지루했고 입맛이 없었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많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그저 몸이 아팠고 아기가 걱정스러웠고 무엇보다 빨리 씻고 싶었다.

 남편이 집에 간 동안에는 창가를 서성이면서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를 보았다. 자꾸 울면 눈이 짓무른다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해서일까, 눈물은 더 나지 않았다. 나의 여름이가 저기 어둑어둑한 병실에 엄마도 없이 혼자 누워 주사를 맞고 있구나. 내 작은 아기를 떠올릴 때마다 창밖의 소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기의 건강 상태가 많이 나아져 내가 퇴원할 때쯤 호흡기를 떼고 분유도 먹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는 젖몸살과 악몽에 시달리며 매일 택시를 타고 병원에 아기를 보러 갔다. 아기를 교통사고로 잃는 꿈을 꾼 날은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기의 모습을 계속 떠올렸다. 처음으로 눈은 뜬 옆얼굴, 손가락으로 살며시 쓸어본 피부의 부드러움, 힘없이 작은 울음소리, 몸에 비해 커다란 손발. 잠든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직 엄마란 말이 나오지 않아서 ‘내가 내일 또 만나러 올게.’ 했던 날들. 사진 한 장도 남지 않은 여름이의 신생아 시절이다.

 2kg이 되자마자 퇴원을 한 여름이는 놀랍도록 쑥쑥 잘 자랐다. 4개월쯤에는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서 피검사를 할 정도였다. 여름이는 예정일이 7월 31일이라고 해서 붙인 태명이었다. 내 생일과 꼭 6개월 차이가 나는 그 날짜가 좋았다. 나는 한겨울, 너는 한여름이라고. 일찍 태어난 여름이는 이번 달에 네 돌 생일을 맞는다. 키도 크고 달리기도 좋아하고 또박또박 이야기도 잘하는 아이를 볼 때, 그 조그마하던 신생아의 모습이 어디에 남아있나 싶다. 퇴원하던 날, 보들보들한 겉싸개에 폭 감싸 졌던 아기가 지금은 보풀 가득한 그 이불을 껴안고 자고 있다.

 ‘엄마, 손 잡아줘서 고마워. 엄마 덕분에 계단을 잘 올라올 수 있었어.’ 오늘 들은 여름이의 말을 일기장에 써넣는다.

꽃을 보는 여름
새 모자가 좋은 여름


#미루글방

#여름글방

작가의 이전글 친구의 삐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