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자신을 몸치라 소개하는 여성들이 참 많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누가누가 더 잘하는지 제 몸을 움직여서 활기차게 보여주는데, 몸치들은 누가누가 더 운동을 못 하는지 목청껏 자기 비하를 하곤 한다. 체력장이 5급이다, 100m 달리기는 22초다, 피구는 공이 무섭다, 유연성이 대체 뭐냐, 뜀틀은 어떻게 넘는 거냐, 춤은 부끄럽다, 스포츠는 보지도 않는다, 등산은 막걸릿집까지다!
이 모든 사항에 해당하는 나는 '언젠가 한 번은 춤을 추고 싶어 꿈속에서 춤을 추는 아이'이다. 수학여행이나 캠프파이어에서 내가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춤을 추는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나는 춤을 굉장히 잘 추어서 내가 자리에 앉으려 하면 친구들이 아쉬움에 긴 야유를 보낸다. 못 이기는 척 다시 일어나 무대로 나가면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다. 나는 기분 좋은 열기를 느끼며 신나게 몸을 움직인다. 중학생 때 시작된 이 꿈은 거의 20년 동안 종종 나를 찾아왔다. 깨어나면 아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한 오래된 꿈.
몸을 잘 쓰지 못하는 순간의 내 모습은 쉽게 떠오른다. 뜀틀 앞에서 멈추어 서던 체육 시간, 언제나 꼴찌로 들어가는 달리기 결승선, 서너 번을 넘기지 못하는 배드민턴과 탁구, 발야구를 하며 선배에게 혼나던 대학 체육대회까지. 사람들은 왜 모이면 자꾸 운동하려고 하는 걸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다시는 체육 시간은 없는 것 아니었나? 운동은 나를 열등감 덩어리로 만들었다.
남들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나 어려웠던 나는 볼링장도 질색이었다. 자의식 과잉으로 쭈뼛거리느라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느 무리에나 있는 파이팅 넘치는 누군가가 나를 격려하며 억지로 움직이게 하였기에 차마 분위기를 깰 수 없어 설렁설렁 뒤뚱뒤뚱 걸어서 볼링공을 퉁! 하고 굴리긴 했다. 공은 당연히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나는 하품을 하며 주저앉기 일쑤였다. 마음속 깊이 멋지게 스트라이크를 날리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노래방을 좋아했지만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춤을 출 수가 없었다. 국민체조 외에는 제대로 따라한 율동조차 없는 내가, 음악에 맞춰 자연스럽게 그루브를 타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20대 때 나이트클럽과 그냥 클럽(?)을 한 번씩 갔었는데 친구들의 맥주까지 혼자 다 마시고도 스테이지에 끌려 나가서는 박수 몇 번 치고 지쳐서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그 무안하고 민망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살짝 부끄러워질 정도다.
다시 태어난다면 몸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체조 선수나 댄서들처럼 완벽하게 자신의 동작을 인지하고 제어할 수 있다면, 인생을 대하는 모든 순간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환상 같은 기대가 있었다. 운동회에서 계주 선수로 뛰거나 응원 단장이 되어 팔을 휘젓는 아이들의 빛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학생 1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운동하는 사람’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내 몸은 오로지 생활을 위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가. 결국 나에게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산책만이 운동의 영역으로 남았다.
결혼하고 이사를 한 6년 전 봄, 집 창문으로 바로 보이는 건널목 건너편에 플라잉 요가 학원이 생겼다. 텔레비전에서 종종 소개되던 플라잉 요가를 보면서 올림픽 체조 선수를 보던 마음으로 눈을 반짝이다가 친구의 손을 잡고 큰 용기를 내어 등록했다. 처음에는 레깅스를 입는 것조차 부끄러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ㄴ자 모양으로 앉으면 상체가 흔들릴 정도로 균형이 맞지 않는 몸 상태를 보고 이런 몸은 처음 본다며 요가 선생님이 깜짝 놀랄 때 나도 놀랐다. 민첩하지 못해서 운동을 못 할 수는 있지만, 똑바로 앉을 줄도 모르는 몸이라니, 말도 안 돼!
겁이 많아서 다들 해내는 멍키 동작(해먹에 거꾸로 매달리는 기본 동작으로 첫날 배운다.)을 하며 비명을 지르던 내 모습도 기억난다. 나는 유연성과 근력이 고루 부족해서 어떤 동작을 배우든 마지막으로 해내거나 낑낑대다 포기하는 수강생이었다. 동작 중간에 해먹에 발목이 매달린 채로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린 적도 여러 번이다. 수업 중에 마주치는 거울에 비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둥그렇게 굽은 등을 의식하느라 한동안 제일 끝자리를 맡아 다녔었다.
유연해지는 건 어려운 정도가 아니었다. 관절과 근육을 새로 만들든지 해야지, 내 몸은 유연하려는 욕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 양심적이었다. 다행히 근력은 좀 붙었다. 학창 시절에도 유일하게 그럭저럭 할 수 있었던 종목이 윗몸일으키기였다. 바닥에서 하는 요가는 온전히 내 몸을 내 힘으로 지탱하고 뻗어 올려야 하지만 플라잉 요가는 해먹이 도와준다. 해먹의 도움으로 몸을 펼 수 있으니 상체(특히 팔) 힘을 기르면 매달려서 하는 동작들은 많이 따라 할 수 있다. 바닥에서는 물구나무서기가 정수리만 아픈 셀프 고문 동작이지만 해먹에 목이나 어깨를 걸면 쉽게 거꾸로 매달릴 수 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해먹이 다리를 옥죌 때마다 얼굴이 찌푸려지고 곡소리가 저절로 나왔지만, 어느 순간 시원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종아리와 승모근에 해먹이 단단하게 걸쳐지면 아프면서도 근육이 풀린다는 게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근력이 붙으면 난이도와 상관없이 자세를 쉽게 잡을 수 있는 동작이 제법 많고, 조금만 배우면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새로운 동작을 짠! 하고 해내는 순간에는 여태까지 얻은 다른 성취감들보다 즉각적인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학원에 1년쯤 다니자 석 달 다닌 보통 사람들 정도로 플라잉 요가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었는데 임신을 하는 바람에 다시 ‘몸 쓰지 않는 사람’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를 낳고 1년 넘게 학원을 쉬다가 다시 학원에 다닌 지도 3년째이다. 출산과 육아로 체력을 많이 잃었지만, 아이를 안아 올리면서 팔 힘은 오히려 좋아졌다. 유연함은 여전히 머나먼 세계라 스트레칭하는 다리의 각도는 겨우 예각을 벗어나는 정도이고, 어깨는 완전히 굽어있지만, 해먹에 올라가면 재미있다. 웬만한 자세는 다 따라 할 수 있어 좋고, 어려운 동작에서 막혀도 해먹을 풀고 스르르 내려오는 동작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
처음으로 이런 말을 써 본다. 나는 플라잉 요가를 제법 잘하는 사람이다. 매달리는 힘이 부족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처음 만난 요가 선생님이 해 준 말을 떠올린다. “자기 몸 하나 스스로 못 들어 올려서 어떻게 하려고 해요! 이 험한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