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놀이가 끝나면 어른이 되는 걸까. 생각의 어른이 되어야 할 텐데. 어른의 마음 씀씀이란 어떤 걸까. 어른이 된다는 것에 설레지 않고 한숨이 나올 때, 꼼짝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 이제는 어른이야. 언제까지 그럴 거니.라는 마음속의 목소리가 최대 음량으로 쩌렁쩌렁 울릴 때, 그 목소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화들짝 놀라며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재미로 가득했던 마음자리를 슬픔으로 채우는 서글픈 일 같지만, 아직도 재미있는 일들이많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12월 8일 목요일
"소꿉놀이가 끝나면"이 어제도 오늘도 계속 떠오른다. 나에게는 분명한 기억으로 남은 마지막 소꿉놀이가 있다. 시골에서 보내는 여름방학 동안에는 버릇처럼 친구와 개울가 넓적한 바위에 앉아 이런저런 풀을 뜯어와 돌멩이로 짓이기곤 했다. 달리 놀거리도 없고 만날 새 친구도 없으니 그냥 무료함을 달래려고, 잡담을 나누는 아주머니들이 콩나물이며 시금치를 손질하듯이 우리는 이런저런 초록즙을 내며 풀을 찧고 빻았다.
마지막 소꿉놀이도 그 시기였지 싶다. 대구 단칸방에서 할머니와 살던 시절이니 아마 4학년쯤이었겠지. 주인집 언니와 2층 언니, 건넛집 아이까지 옥상에 모여 소꿉놀이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만큼 소꿉장난 따위는 시시하기 짝이 없었지만, 옥상 텃밭에는 빈 냄비와 나무젓가락, 버려진 화분과 잡초가 있었다. 우리는 엄마들이 하듯이 냄비에 물과 풀을 넣었다. "우리 집 옥상에 가면 고추장이 든 항아리가 있어. 고추장을 퍼오자" "그러다 혼나면 어떡해" 우리는 용기를 내서 건너편 집 옥상으로 갔다. 고추장도 푸욱 떠왔다. "너희 옥상 올라가지 마라!" 혼내는 어른도 있었지만 고추장 뜬 걸 들키지는 않고 무사히 소꿉놀이 장소로 돌아와 놀이를 계속할 수 있었다.
재미도 거기까지였다. 어른들 몰래 고추장을 뜨러 가는 건 짜릿했지만 가짜 요리를 만드는 건 시시했다. 진짜 고추장이 있으면 무얼 하겠는가. 잡초를 찬물에 담근 건 진짜 요리가 아닌데... 우리는 물 조절을 잘 못해도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나이의 아이들이었다. 우리가 다 함께 하고 싶었던 건 소꿉장난이 아니라 떡볶이 만들기 정도는 되었어야 했다. 아무도 할 줄은 모르지만 아마도 재미있었겠지. 하지만 우리 동네에 친구네 부엌에 들어가서 노는 걸 허락해주는 엄마는 없었다.
그 후로 언니들과 모여 논 기억은 많지 않다. 소꿉놀이 다음 기억이 다 같이 손지창, 김민종에게 팬레터를 쓰던 거니까 그때 소꿉놀이가 끝이 났나 보다.
12월 9일 금요일
"집에 있는 부엉이"
저녁 내내 위층으로 다시 아래층으로 슬리퍼와 깃털을 휘날리며 달리는 부엉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같은 때에 두 곳에 있을 수가 없어 슬퍼한다. 결국 계단 한가운데에 앉아 슬퍼하는 부엉이.
꼭 내 모습 같다. 수업을 하느라 여름이에게 옥토넛을 틀어주고, 계속 거실에 신경이 팔리는 나. 한창 문제 풀이를 하다가 여름이가 칭얼대는 소리에 달려 나와 리모컨을 눌러주고, 다시 방에 들어가 수업을 하느라 부산하다.
감기에 걸린 여름이에게 다니 유치원을 틀어주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내 할 일을 한다고 해보지만 완전히 집중할 수 없는 상황.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설거지와 빨래를 하며 여름이에게도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 날. 하필이면 저녁에 학생 어머니와 긴 통화를 하게 되어 보채는 여름이에게 쉿! 해야 하는 순간. 아무리 열심히 해보아도 내가 동시에 두 곳에서 두 가지 모습일 수는 없고, 그렇지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으니... 나도 부엉이처럼 주저앉아서 한숨 돌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