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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Dec 25. 2022

크리스마스 시즌 일기

연말에도 오락가락하는 마음

12월 20일 화요일


귤상자 마음


모두를 등지는 마음과 걸으면서 보는 하늘과 시규어 로스의 음악이 어우러지는 짧은 산책을 했다. 일찍 나와서 더 오래 걸을걸. 그 많은 관심과 그 짧은 사랑, 외면하고 싶은 세상과의 거리감, 한낮의 쨍한 하늘 아래를 걸을 때 충분해 보이는 세상과 한없이 부족하게 보이는 내 삶.


오랜 잠, 습관적인 빅뱅이론 시청, 괜찮던 것들이 미워지는 마음들은 모두 무기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들이다. 내버려 두면 상자 밑바닥의 귤에 번지는 곰팡이처럼 생활 구석구석으로 번지는 무기력증임을 잘 알기에 늦어버리기 전에 하나하나 골라내야 한다. 곰팡이에 점령당해 문드러지기 직전인 묵은 미움을 꺼내 들어 쓰레기봉지에 넣고, 그 옆에서 찢어지고 물러진 덩어리들도 상자밖으로 끄집어낸다. 여기저기 알게 모르게 상한 동그라미가 물컹거리고 허옇게 핀 시멘트색이 되어가고 있다.


싱싱할 때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세 식구가 부지런히 귤껍질을 깠더니 귤상자의 바닥이 보인다. 골라내고 정리해가며 먹었지만 물러가는 귤이 또 나타난다. 질리면서도 아까운 귤.


올해 내 마음속은 이 귤상자 같았다. 어느 해보다도 부지런히 기록했다. 글쓰기 모임도 적극적으로 하고 여름이 끝나도록 많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수업도 다시 시작해서 용돈 벌이를 하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여전히 쌓이는 양이 압도적이지만, 책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섯 살 아이는 너무 귀여워서 낮이 아무리 힘들어도 밤에 나란히 눕는 시간이 달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력은 찾아온다. 늘 같을 수 없고 늘 좋을 수 없으니 당연하다. 가만히 있지 않고 노느라고 지쳐도 지치는 건 지치는 거니까. 상자 바닥에 깔려 있던, 외면하고 있던, 눌린 채 상해 가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실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쩌다 발견해서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본다. 깊고 낡은 불안과 색을 잃은 감정과 묵직한 슬픔을 본다. 꺼내고 버려도 또다시 그 자리에 있는, 사라지지 않는 바닥.

눈 온 날 만든 눈곰들


12월 22일 목요일


10만 원 가까이하는 옥토넛 변신 장난감을 사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2만 원짜리 작은 탐험선을 샀다. 그림 모임 언니들에게 줄 양말 선물을 포장하면서 여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도 포장했다. 요즘 문구사에는 포장지 종류가 별로 없어서 아쉬운 대로 현란한 비닐포장지를 골랐다. 장난감 탐험선은 울퉁불퉁해서 포장이 어려웠다. 대충 둘둘 말아 테이프를 붙이고, 편지도 쓸 걸 했나? 하다가 그만뒀다. 여름이는 글씨를 못 읽으니 내가 읽어주어야 할 텐데, 오글거려서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시골에는 산타가 없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노래 가사에나 살았고,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텔레비전 만화에나 나오는 판타지였다. 역시 산골에서 자란 남편에게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느냐 물어봤다.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고 잤더니 양말에 새우깡이 들어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작은 낭만이 있었구나.


성탄절이 다가오면 교회에 가서 율동과 합창 연습을 하는 것이 특별한 겨울 행사였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교회에서 성탄절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고 배웠다. 마음속으로는 산타가 와서 선물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봤었나?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는 믿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들어준 어른도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교회에서 같이 밥을 먹고 간식을 얻어먹으며 공연을 준비하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성탄 행사로 동네 어른들을 앞에서 율동도 하고 목청 높여 "고요한 밤, 거룩한 밤"도 부르고 연극도 했다. 유치원 재롱잔치나 학교 학예회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그것이 큰 잔치였다. 그렇게 행사를 마친 밤, 가족들이 깜깜한 눈길을 걸어 집으로 와서 교회에서 준 선물을 뜯어봤다. 산타클로스 모양의 커다란 양초였다. 더 좋은 선물이기를 바라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그 양초를 꽤 오랫동안 간직했었다.


산타를 믿었다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걸 초등학교 3학년 때야 알았다. 그 따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다니, 순진한 것들... 하며 친구들과 웃었던 하굣길이 떠오른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며 조금쯤은 심통이 났었다. 크리스마스, 어린이날은 커녕 생일 선물도 받지 못하고 자란 어린 시절이 자꾸 억울하게 느껴져서이다. 참, 얼마나 유치하고 치졸한 마음인가. 어떻게 나눠주겠어, 좁디좁은 이 마음에서도 자그마한 내 사랑을.


그 졸렬한 마음을 품고서 장난감을 포장해 신발장 맨 위에 숨겼다. 혹시라도 들킬까 봐 빵집 종이가방으로 한 번 더 가리고, 포장지의 잔해도 꽁꽁 숨기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이 저마다 손에 커다란 블록 장난감 상자를 들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는 아이들에게 초콜릿과 젤리가 든 봉투를 나눠주었다. 여름이도 한 손에는 블록, 한 손에는 군것질을 들고 신이 나서 집으로 왔다.


저녁에는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여동생에게 물어서 여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비싼 장난감을 알아내서는 꼭 사주라고 한다. 돈은 엄마가 줄 테니 할머니가 사줬다고 하지 말고 꼭 산타가 준 거라고 해달란다. 플라스틱 장난감인데 너무 비싸다고 나는 몇 번이나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그러겠다고 했다. 최저가를 검색해서 2만 정도 싼 가격에 옥토레이를 주문했다. 장난감이 오면 몰래몰래 포장을 해야지.


요즘 자꾸 이런 말을 했다. 애들은 울어도 다 선물 받는데,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낸 나는 왜 선물을 받지 못하느냐고 툴툴댔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긴 54만 원어치의 책과 멋진 책장이 갖고 싶어요. 편지를 쓴들 산타는 오지 않겠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

12월 23일 금요일

어제 어린애마냥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다고 징징댔는데 하루 더 기다려볼 걸 그랬다. 한 달 만에 그림티(그림+tea) 모임 날이었다. 날이 추워서 멸치칼국수를 브런치로 먹고 늘 가는 카페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리는 언니들과 동생의 손에 쇼핑백이 몇 개씩 들려 있었다. 언니들은 가방만 크지 별 거 아니라며, 기대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찬바람에 높은 "미"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늘 앉는 자리에 앉았다. 큰 언니의 빨간 가방, 작은 언니의 노란 가방, 막내의 산타가방과 나의 작은 초록 포장지가 넓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웃음과 탄성 속에서 선물을 주고받았다. 귀여운 양말과 차분한 색의 목도리, 핸드크림과 립밤 세트, 그리고 정말 갖고 싶었던 머그컵이 내 몫의 선물이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거 내가 갖고 싶던!!! 하며 흥분하는 나를 보며 큰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전에 카페에 갔을 때 수진씨가 너무너무 좋아하던 게 기억이 나서, 그날 생각나서 네 개를 세트로 샀지. 내가 티코스터도 색깔 다 맞춰서 만들어왔다. 봐봐."


"저 이 컵이 정말 좋았는데 제가 살 건 아니었거든요. 근데 이렇게 선물을 받을 줄이야!!"


"그런 걸 선물해 줘야지. 수진씨가 원래 물건 보고 갖고 싶다고 막 말을 잘 안 하잖아. 우리 그날 커피 리필할 때도 새 잔 말고 이 컵에 해달라고 말했잖아. 그만큼 좋아하는 거를 본 적이 없어."


눈물이 찔끔 났다. 아무도 못 봤겠지? 힝, 누가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기억해서 선물을 해주다니... 어쩔 줄을 모를 만큼 좋았다. 오늘 입은 옷과 색이 잘 어울리는 잔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당장 컵을 씻어서 거기에 커피를 따라 마시고 싶은 걸 겨우 참고 그림일기 스케치북을 꺼냈다.

이런 선물이라니


그날의 그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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