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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an 18. 2023

빵이 좋다!

빵빵빵!!!


1996년도쯤, 슈퍼에 팔던 까만 직육면체 모양의 봉지 빵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바닥 면에는 카스텔라처럼 종이가 붙어있고 식감은 시장에 파는 옥수수 술빵과 비슷했다. 술빵보다는 좀 더 촉촉하게 압축된 느낌으로 끈끈한 묵직함이 있었고, 그 묵직함이 흑설탕의 달큼함과 어우러져 한 입, 한 입이 아까운 맛이었다. 여느 봉지 빵들과 다른 고급스러운 맛에 가격도 특이하게 700원인 그 빵의 이름은 블랙슈가케이크 (아닐 수도 있다)였다. 700원이면 가나 초콜릿을 2개 사고도 100원이 남는다. 나는 골목 끝 슈퍼의 좁은 매대 앞에서 심사숙고 끝에 그 빵을 사곤 했다. 아쉬움에 종이에 붙은 끈끈한 부분을 이로 긁어먹으면 얼마나 달콤했는지!


 단종된 지 오래된 그 빵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2013년 ‘러브미 블랙센스’라는 도통 알 수 없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미지를 하나 찾아주었다. 생김새는 내 기억 속 흑설탕빵과 비슷했지만, 색이 더 옅어지고 크기도 작아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 빵조차 지금은 생산되지 않으니 추억의 흑설탕빵을 다시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마카롱이나 소금빵처럼 흑설탕 파운드가 유행하는 디저트가 된다면 실컷 먹어주리라. 일단은 아쉬운 대로 브라우니와 초콜릿케이크에 만족하는 수밖에!


 다행히 우리 동네에는 훌륭한 초콜릿케이크를 파는 카페가 있다. 커피가 맛있었지만, 평소 내 동선과 잘 맞지 않아 잊고 지내던 카페에서 운명의 케이크를 만났다.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초콜릿이 폭신한 초콜릿 시트와 어우러진 ‘마틸다 초콜릿케이크’를 한입 먹자마자 완전히 반해버렸다. 아이가 나의 케이크를 맛나게 먹으며 자기 몫의 스콘을 내 앞으로 밀어줄 때, 속이 상했을 만큼 맛있었다. 배가 부를 때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면, 초콜릿케이크는 완벽한 음식이다.


 달콤한 케이크도 좋지만, 담백하고 심심한 빵도 그만큼 좋아한다. 빵과 커피로 시작하는 아침은 향기롭다. 고소한 식빵과 꼭꼭 씹어먹는 캄파뉴, 올리브 치아바타와 시금치 베이글, 몇 개씩 집어먹게 되는 부드러운 모닝빵. 김과 라면이 들어있는 찬장 옆에는 식사 빵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빵 자리에 식빵만 있으니 내일 도서관에 그림책을 반납하고 오는 길에는 새로 생긴 베이글 가게에 꼭 들러봐야겠다.

소금빵과 올리브감자베이글


 언제나 빵을 좋아했다. 엄마가 프라이팬에 구워준 도넛믹스와 핫케이크, 사과잼이나 감자샐러드를 발라 먹던 식빵, 슈퍼에 파는 꿀호떡과 보름달, 오예스와 몽쉘, 케첩에 버무린 양배추와 오이가 상큼한 시장표 샐러드빵, 겨울이면 밥솥에 넣어 먹는 호빵까지…. 좋아하는 빵 이름을 다 부르려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된다면 매일 빵만 먹고살고 싶지만, 나는 어른이니까 빵만 먹겠다고 떼를 쓰지는 않는다. 그저 점잖게 된장찌개와 멸치볶음으로 밥공기를 비우면서 속으로 계획을 세우며 설렌다. ‘빈속에 빵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니까, 밥 조금만 먹고 이따가 커피랑 빵 먹어야지.’ 냉장고에 아이가 유치원 체험으로 만들어온 과일 생크림 케이크가 아직 한쪽 남아있다.


다 먹어버린 케이크



#기대어씁니다6기

#나의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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