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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Jul 23. 2023

나 보지 말고, 거울부터 봐요

옷차림을 지적하던 선배가 떠올라 쓰는 글




 지난번 내가 쓴 글에는 예쁘다는 말이 몇 번 나왔을까? 앞으로 또 몇 번이나 ‘예쁘다’라는 글자를 쓰게 될까. 아이들과 여성들을 옭아매어 덜 쓰고 싶은 단어인 "예쁘다"를 오래오래 생각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예쁘다"를 찾으면 "생긴 모양이 아름다워 눈으로 보기에 좋다"라고 쓰여있다. "눈으로 보기에 좋은 무언가"가 가진 힘은 아무리 애를 써도 외면할 수 없이 강력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아름다운 모양새를 한 것들은 존재감이 강하다. 이만하면 된 정도에 만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너는 내 눈에 제일 예뻐." 대신 "너는 내 눈에 적당히 예뻐."라고 해도 괜찮을까? 예쁘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듣고 자랐는데도, 미적 기준이 엄격한 나는 내 모습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예쁘다더니 아니었잖아!" 하며 어린 시절 받은 칭찬에 배신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별로 예쁘지 않은 어른이 된 나는 "날씬한 여자"에 집착하기도 했다. 이 글은 예쁘지 않은 내가 그래도 매력적인 외모의 여자가 되고 싶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쓰는 분노의 일기가 될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부터, 늘 가난하던 우리 집은 최고로 가난해졌다. 삼 남매의 학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살림살이에 나의 대학 합격 선물은 농협에서 저녁 찬거리와 함께 산 프링글스 한 통이었다. 입학식에 입을 새 옷이 없어 수능 날 입은 청바지와 빨간 점퍼를 입으며 ‘왜 대학에는 교복이 없나!’ 한참을 안타까워했다. 신입생 환영회에는 꼭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오만 눈치를 보아가며 쇼핑몰에 가서 꼭 끼이는 까만 바지 정장과 핸드백을 샀는데, 몇 번의 환영회 후에는 불편해서 거의 입지 않았다. 같이 놀면 재미있는 동기 여자아이들은 용돈을 잘 썼다. 친구들은 학식을 먹지 않고 늘 식당에 갔고 매일 같이 예쁜 옷을 입고 학교에 왔다. 아르바이트하면 밥을 사 먹고, 술집에 갈 수 있었지만 멋을 부리기는 어려웠다. 돈도 없었지만, 옷 가게에 가면 점원에게 기가 눌려 옷을 잘 고르지 못했다. 일단 나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입고 싶은 옷이 어떤 건지조차 잘 몰랐다. 그저 너무 밝고 쨍한 색이 아닐 것, 날씬해 보일 것. 정도가 내 쇼핑의 기준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옷’이나 ‘외모’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선배가 있었다. 한 살 위의 남자 선배(본명이 생생히 기억나지만, 대충 한이라고 부르자)인 한의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지나치게 날씬했고, 머리카락이 뻣뻣하고 억셌으며, 얼굴에 여드름 흉터와 잡티도 많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었는데, 그래서인가? 나에게는 미스터리이지만, 여자에게 인기가 없지 않았다. 한의 여자친구이던 동기와 무리를 이루어 친했기 때문에, 나도 그와 자주 같이 놀았다. 한은 전화번호를 알아도 서로 통화는 전혀 하지 않는 ‘친구의 남친인 선배’였다. 그런 한을 이날까지 내가 기억하는 데에는 그의 꼴값 떠는 연애사와 어처구니없는 껄떡댐, 그런데도 집안에 돈이 많아서 서울에서 큰 카페를 열어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재수가 없긴 하지만) 어느 여름날 낄낄대며 나를 놀리던 그 말투와 표정이 20년이 지나도록 잊히지 않아서이다.


 덥고 화창한 날이었다. 수업이 끝났지만 다들 집에 가기는 싫고,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무 그늘이 시원한 건물 앞 계단에서 시간을 때우는 참이었다. 그때 대구에는 ‘클럽’이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해서 대학생들이 한창 관심을 가질 때였다. 한결같이 시끄러운 음악에 리듬을 타며 서 있는 일이 곤욕스러운 나는 클럽 따위보다는 술집이 좋았다. (나는 평생 나이트클럽과 그냥 클럽에 딱 한 번씩 가보았고,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도 않다) 친구들은 새로운 ‘클럽 문화’라는 것에 몹시 마음이 동하고 궁금해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그저 학교 앞에 있는 술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나 한잔 들이켜고 싶을 뿐이었다. 대화 주제는 ‘클럽에 가는 알맞은 복장은 무엇인가’로 이어졌다. 소개팅처럼 치마를 차려입어야 한다, 좀 센 언니처럼 입어야 한다, 너처럼 입어서는 입구에서 쫓겨난다…. 시시껄렁한 말들이 오가는 중에 한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야, 니처럼 입으면 완전 인기 폭발이지. 맨날 입는 그대로 가면 짱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멍한 사이, 다들 웃기에 나도 웃었다. ‘뭐지? 내가 옷을 잘 입는단 말인가? 놀리는 건가? 놀리는 거구나!’ 깨달았을 때는 미묘한 타이밍도 지나간 다음이었다. 한은 다른 여자애들과 달리 매일 같은 옷만 입고 오는 나를 손가락질하며 그 억센 경남 사투리 억양으로 놀린 거였다. 그 여름에 나는 어찌 그리도 옷이 없었던지, 작은 물고기 패치가 붙은 분홍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카고바지(요즘 이런 바지들 다시 팔던데)를 늘 입었던 것 같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질끈 묶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고 다니는 내가 예쁜 친구들에 비해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그건 내 감정이었다. 다른 누가 입 밖으로 꺼낼 일은 아니었다. 적어도 ‘쟤가 옷이 없는 건 사실이니 말해도 되잖아?’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여자친구들은 없었다.


 아무리 비싼 옷을 사 입어도, 나부끼는 바자락이 안쓰럽기만 한 선배가 나의 옷차림을 지적하다니 충격을 받았다. 이 무슨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도 아니고 무슨 개소리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고, 그 기억을 짧은 순간을 잊지 못해서 이런 걸 쓰고 있다. 아마 그 선배는 내가 가난해서 옷을 못 산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고, 단순히 나의 패션 감각이 구리다고 놀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놀림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아니고, 어떻게든 그 입장을 한번 이해나 해보려고 하는 소리이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여자아이들 7명 중 5명에게 껄떡대고 그중 한 명에게 차이고, 한 명에게는 상처를 입힌 꼴값의 아이콘인 그 선배. 나는 천만다행으로 그 선배의 취향이 아니었다.


 졸업과 동시에 잊고 지내던 한을 다시 마주친 건 동기 결혼식에서였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했더니, 한이 나를 아래위로 여러 번 훑어보는 게 느껴졌다. “야, 너 많이 달라졌다?” “선배는 똑같네요.” 인사는 그걸로 끝이었는데, 나중에 친구가 나에게 “한이 선배가 너 예뻐졌다고, 졸업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그러더라.”라는 말을 전했다. 친구가 무심히 전하는 말에 나의 기억은 몇 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 잊고 있던 그 놀리는 목소리, 와하하 웃던 소리가 떠올라 성질이 확 났다. 제 까짓게 뭔데, 내 외모를 또 평가질이야? 꼴같잖은 녀석일세.


 한을 마지막으로 마주친 건 내 결혼식 전의 동성로 길바닥에서였다. 서로 어색하게 어? 여기 웬일이냐? 웬일이에요? 가세요. 하는 식의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어색함에 황급히 돌아섰다. 아, 그때도 선배의 스타일은 좀 구렸다. 한여름에 청바지와 청남방을 입고, 엄청나게 큰 까만 뿔테 안경이 하나하나 별로였고, 피복 전선을 벗기면 나오는 구리선 같은 머리카락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모습에, 그저 예전보다 늙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참, 멋없는 사람. 이런 글을 쓰는 내가 너무 속이 좁은가? 그래도 나는 선배 면전에서 그 우스꽝스러운 꼴을 비웃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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