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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Oct 13. 2023

아이와 나에 대한 질문 세 가지

"그림책산책" 글쓰기 모임에서 "L부인과의 인터뷰"를 읽고

지난 봄 여름이 모습

첫 번째 질문


임신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무엇인가요?


 90년대 주말 연속극 마지막 회에는 여자주인공이 ‘우욱’하며 밥상머리에서 뛰쳐나가는 장면이 필수였습니다. ‘어디 아파?’ 어리둥절한 남편 옆에서 시부모님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미소를 짓죠.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여주인공의 배가 남산만큼 부른 장면에 이어 산모의 비명이 화면을 채웁니다. 남편의 머리끄덩이를 잡는 클리셰도 빠트릴 수 없지만, 고통에 찬 비명은 금세 끝나고 ‘응애응애’ 소리에 모두가 기뻐해요. 죽을 고비를 넘긴 여주인공은 이제 여생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겠죠. 드라마는 또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아기의 돌잔칫날입니다. 다른 가족들은 물론, 엄마도 정말 행복해 보이네요. 하하 호호 웃음소리와 엔딩 음악이 깔리며 이 연속극도 안녕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임신 기간이 자세히 나올 때도 있지만, 가 아는 임신의 이미지는 고작 이 정도였습니다. 좀 더 실제적인 거라면 미혼일 때는 절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결혼을 하고 나면 빨리 하도록 권장받는 사회적 관례라는 것 정도일까요? 양가에서 주선해 서둘러 결혼을 한 만큼 임신도 재촉받았습니다.(이 이야기는 시작하면 길어지니까 넘길게요) 전화로 의 임신 소식을 들은 엄마는 날아갈 듯 기뻐했고, 시어머니는 울먹거릴 정도로 기뻐했으니 말 그대로 모두가 기다린 임신이었지요. 무뚝뚝한 남편도 2주 동안은 나를 상냥히 대해주어서 좋았습니다. 잠깐 말뿐이었지 내가 원하는 대로 잘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정작 임신을 한 나는 무덤덤했습니다. 냄새에 민감해져 구역질을 할 때는 있었지만, 입덧도 거의 없었고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마음과는 별개로 내 몸 역시 임신을 기다린 것인가?라고 하라 정도로 모든 것이 순조로웠어요.


 임신부에 대한 배려라고는 하지만 환자 취급과 다르지 않아서 나의 행동들에 제약이 많아졌어요. 여전히 학생들의 집에 찾아가 수업하고 집안일도 하는데 ‘커피를 마시지 말아라, 컵라면은 몸에 해롭다.’ 따위의 잔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위험하다며 남들 다 가는 태교 여행도 못 가게 하는 대신, 가까운 곳 나들이는 자주 가자고 한 남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어요. 임신 기간 남편이 잘못한 일에 대한 이야기도 시작하면 길어지니까 다음에 할게요.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증 약을 먹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임신을 하면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힘들 거라는 예상은 했습니다. 감정이 널을 뛰었죠. 살짝 신나는가 하면 바닥으로 꺼질 듯이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우울해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여름이를 향한 미안함까지 더해져 툭하면 울다 그치기를 반복했어요. 거기다 평생 처음으로 식욕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입맛이 그렇게 좋았던 시기는 한 번도 없었어요. 특히 라면과 빵, 과자가 얼마나 맛있던지, 입 쉴 틈이 없이 먹었습니다. 임신성 당뇨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재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먹었을 거예요.


 많이 먹으면 살이 찌죠. 임당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지자 ‘뚱뚱해지는 나’에 대한 공포가 밀어닥쳤습니다. 식욕과 싸우면서(대체로 가 지는 싸움)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다니던 요가학원을 다니면서 저녁에는 19층까지 계단을 올랐어요. 그래도 살이 붙는 걸 막지는 못했어요. 맛있는 게 너무 많아서요. 임신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너무 길어지네요. 저는 임신 내내 불안과 우울, 외로움과 식욕과 싸우느라 힘들었답니다. 끝!

우리의 50일

두 번째 질문


출산 이후 달라진 삶에 힘들어할 때 나를 다시 일으킨 아이의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임신이 괴롭다고 느껴서인지(물론 그런 이유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요) 저는 예정일보다 5주 빠른 35주에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기 검진 날 양수가 너무 적어진 상태라 큰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응급 수술로 아기를 낳았고, 아이는 2주 정도 신생아 중환자실(이름이 무섭죠. 인큐베이터가 있는 곳입니다.)에 있었어요.


 1.83kg으로 태어난 아이가 2kg이 되자 집으로 왔습니다. 아이는 일찍 세상에 나온 만큼 신생아 기간이 길어서 퇴원 후에도 한 달이 넘도록 분유를 먹는 시간 외에 잠만 잤어요. 안아주지 않아도 트림을 시키고 눕히면 잘 잤습니다. ‘아기가 이렇게까지 조용하다니,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하며 자꾸 아이를 들여다볼 만큼 조용했어요. 아이에게 직접 수유할 상황이 아니어서 유축을 시작했었지만 젖이 잘 안 나오고 아프기만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올케에게 빌린 유축기가 아니었다면 어느 날 새벽 창밖으로 집어던져버렸을 거예요.


 아기가 작은 만큼 분유 때를 놓치면 안 되었기 때문에 쭉 긴장 상태이긴 했습니다. 잠이 많아 밤에 아기 소리를 듣지 못할까 봐 무서웠어요. 다행히 잠귀가 밝아서 대부분은 아이가 울기 전에 버둥거리는 소리에 깨서 바로 젖병을 물렸지만, 자지러지게 울던 새벽도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 50일쯤 지나자 조용한 아기의 모습은 없어졌어요. 울지 않을 때면 무표정으로 멀뚱멀뚱한 작은 아이를 안고 집안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신생아 시절 애틋했던 만큼 아기에게 더 다정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장고가 깊지 않은 나의 애정은 체력과 함께 쉽게 바닥이 났어요. 아기가 귀엽긴 했지만,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힘든 건 힘든 거니까요.


 그렇지만 18년 9월 25일, 아기가 태어난 지 90일 되던 아침은 달랐어요. 아기 침대에서 파닥대는 소리가 나서 번쩍 눈을 떴는데 어쩐 일로 몸이 개운한 느낌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7시가 넘어서 새벽 수유를 하고 5시간이 넘도록 잔 거였습니다. 깜짝 놀라 침대에서 뛰어내려 아기를 들여다보았는데, 여름이가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온 얼굴 가득 활짝 웃고 있었어요. 아기 돌고래처럼 사랑스러운 입모양으로 방긋거리며, 얼굴 전체로 웃느라 코에 가득 주름을 만든 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나를 바라보았어요. 나는 그날 처음 큰소리로 아기에게 인사를 했어요. “우리 아기! 엄마 보면서 웃어 주는 거야?”하고는 나도 얼굴을 바짝 대고 웃었습니다.


 무뚝뚝하던 우리 아기가 처음으로 나를 보고 활짝 웃어 준 날, 그날의 웃음이 나를 완전히 바꾸어주었다면 그거야말로 드라마겠죠. 그 후에도 아기가 자랄수록 저는 지칠 대로 지쳐서 바닥난 케첩통을 푸슉 푸슉 짜내듯 다정함을 긁어모으느라 명상 공부에 빠져들고, 쌍욕으로 버무려진 일기를 쓰다가, 정신과를 찾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아기의 미소에 감격한 나머지 바로 아이를 안아 올리는 대신, 침착하게 사진을 찍어 인화까지 해둔 덕분에 유치원생 아이와 짜치도록 싸운 날 그 사진을 보면서 다시 감격하곤 한답니다. 엄마라면 다들 그렇겠죠.

4살 겨울

세 번째 질문

내가 낳았지만, 정말 이해 안 되고 싫은 부분이 아이에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아이에게 화를 많이 내는 편입니다. 세상과 자신에게도 그런 편이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나에게 의지하는 아이에게 화를 자꾸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어투와 어조가 툭대니 부드럽기도 힘들지만, 엄격하다기보다는 신경질과 짜증을 자주 표출해서 볼썽사납게 화를 폭발시키는 일이 드물지 않아요. 화가 폭발하면 아이가 먼저 나에게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순전히 내 잘못이죠. ‘내 욕심에 못 이겨서, 아이가 내 비위를 거스르니 화를 낸다.’라고 자각하면 보통은 멈출 수 있지만 어쩌다 한 번씩은 그게 안 되는 날도 있습니다.


 2년 전 겨울, 4살이던 아이가 아파트 주민센터 안에 있는 미술 교실에 가고 싶어 했어요. 친구가 가기에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라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어요. 어느 날 수업에 들어간 날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에 기분이 상해 빨리 나왔습니다. 그리고도 계속 심통을 부렸죠. 슬슬 열이 받던 나는 선생님이 몽땅 그려준 까만색 큰 종이가 꼴도 보기 싫었어요. 아이가 저녁 내내 말을 잘 듣지 않아 소리를 빽 지른 김에, 그러면 안 되었는데 그림 종이를 찢어버렸습니다. 아이는 자기 그림이라며 오열했습니다. 그 와중에 ‘네가 그린 그림도 아니잖아!’하며 치졸하게 아이에게 따지다가, 가까스로 정신머리를 챙겨 투명테이프로 그림을 붙여주었습니다. 아이에게 사과도 하고요.


 거기서 끝이 났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시답잖은 이유로 다시 아이와 말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서 아이를 겁에 질리게 만들었어요. 분노인지 신세 한탄인지 모를 말들을 계속 하자 아이가 사과를 했습니다. 그때 그만두었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하지 마!’하며 또 소리를 쳤죠. 세상에나, 쓰면서도 내가 싫어지네요.(그래도 이왕 솔직한 거 계속해볼게요) 엉엉 울던 아이가 흐끅흐끅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말했어요. “내가 물을 마시면 엄마가 화를 내지 않겠지?”


 나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습니다. 평소 아이가 오래 울면 내가 늘 ‘물 마시고 진정해.’라고 말했으니까, 물을 마시고 나면 보통 안아주고 달래주었던 게 떠오른 모양이었어요. 아이는 정수기에 가서 물을 한 잔 뜨더니 조금 마셨어요. 히끅히끅 울음을 삼키면서요. 뒤늦은 사과를 퍼부으면서 울어버렸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한참 아이를 끌어안고 등을 쓸었어요. 정말 나는 왜 이다지도 못났을까. 어서 막지 않으면 터져 나올 울음을 삼키면서요.


 아이가 가시복어처럼 부풀어오를 때마다 무심결에 말하곤 합니다. “쟤는 뭐 저런 걸로 화를 내냐? 웃기네. 이런 일로 삐친다고? 참, 나. 마음 상할 일도 천지네.” 마치 대인배 어른인 양 내뱉는 말이지만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온갖 사소한 일에 화가 날 수도 있고, 고작 그 정도 일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예민해빠져서 괴롭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니까요. 불편한 것이 많고, 그 불편한 상황에서 느끼는 불쾌하고 애매한 감정을 꼭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나의 성격이니까요. 우리는 아주 많이 닮은 모녀 사이. 아이의 미운 부분 부분은 나의 가장 싫은 부분일 때가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할 일은 잘 없습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다 감싸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쉽지 않지만요. 아, 그렇지만 채소를 일절 먹지 않는 그 식성만은 이해조차 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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