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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Apr 12. 2024

소방관 잡는 공기호흡기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54)

위 사진이 무엇인지 아는 일반인은 아마 드물 것이다. 이것은 바로 소방관들이 쓰는 공기호흡기의 '면체'라는 것이다. 면체는 공기호흡기에 달린 것인데 공기호흡기는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메고 들어가는, 소방관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제공하는 장치다. 면체는 쉽게 말하면 공기호흡기 용기에서 나오는 신선한 공기로 숨 쉴 수 있도록 소방관들이 머리에 착용하는 것이다. 


(좌-공기호흡기와 거기에 달린 면체, 우-공기호흡기를 메고 면체를 쓴 미쿡 소방관)


이 공기호흡기는 제대로 호흡할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한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의 목숨을 담보해 준다. 한 모금만 마시면 바로 골로(?) 가는 유독가스를 들이마시지 않고 신선한 공기로 숨 쉬면서 화재 진화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소방관인 우리들에겐 정말 생명줄 같은 장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런 공기호흡기에 관해 아래와 같은 뉴스가 있었다. 소방관들에겐 무엇보다도 생사가 걸린 중요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https://youtu.be/v1mCB7Ym5GQ?feature=shared


뉴스의 주요 내용은 소방관들이 쓰는 공기호흡기의 면체에 불량이 있어 화재 현장에서 공기가 나오지 않거나 유독가스가 그냥 들어오는 등 소방관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3년 전에도 그런 일이 있어 2만여 개나 리콜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문제가 된 경기소방에서는 이 제품을 전량 교체하고 소방청에도 전국에 보급된 이 제품을 모두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소방청에서는 제조사등과 함께 정밀 검사를 해보고 정말 불량일 경우 전국 소방관에게 보급된 같은 제품 전량을 리콜하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궁금증이 든다, 그 사이에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정밀 검사가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문제는 그 사이에라도 소방관들이 그 공기호흡기를 착용하고 화재 현장에서 작업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나도 내가 사용하는 공기호흡기를 살펴보았다. 놀랍게도(전국 소방관에게 지급된 공기호흡기의 50% 이상이 이 제품이라니 사실 놀랍지도 않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제품도 바로 이 제품이었다. 


동시에 내 머릿속엔 지난겨울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지난겨울에 한 시장에서 화재가 나서 화재 진압하러 출동하면서 이 공기호흡기의 면체를 썼는데 순간적으로 공기가 나오지 않은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 밤이 2명의 소방관이 경북 문경 육가공 공장에서 순직한 바로 그날 밤이었다.


https://brunch.co.kr/@muyal/158


그날 밤 나도 시장인 그 화재 현장에서 공기호흡기를 썼는데 순간적으로 공기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큰 화재는 아니라서 현장에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공기가 나왔는데 생각해 보니 만약 그곳이 유독가스로 가득 찬 대형 화재 현장이었고 또 내가 신입 소방관이었다면 뉴스에 보도된 20년 차 소방관의 말대로 멘붕이 왔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내가 어떻게 응급조치를 해서 다시 공기호흡기의 공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여기에 기록하기로 했다. 어느 소방관이 언제 어떻게 이 공기호흡기를 메고 화재 현장에 들어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처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먼저 경험한 사람이 이를 어디든 기록하는 것이 최소한의 동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량면체의 전면 교체가 언제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 목숨은 우리가 먼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공기호흡기 면체의 문제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겨울과 같은 저 기온에서 소방관이 내쉬는 날숨이 면체 안에 체류하면서 김(수증기)이 되었다가 다시 물방울로 맺히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그 물방울이 면체와 공기호흡기를 잇는 공기의 통로를 막아 순간적으로 공기가 면체 안으로 공급되지 않는 현상(3년 전 2만여 개의 리콜 발생 원인)


둘째-뉴스에서 보도된 대로 면체 안의 부품이 규격이 맞지 않아 대기호흡(공기호흡기 외부의 공기로 호흡하는 상태)에서 양압호흡(공기호흡기 안의 공기로 호흡하는 상태)으로 전환이 되어도 여전히 외부의 공기가 들어오는 현상(이번에 문제가 된 현상)


내가 겪었던 현상은 바로 첫 번째 현상이었다. 두 번째 현상도 응급처치는 비슷하니(사실 화재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응급처치라곤 해봐야 이거밖에 없긴 하다) 내가 겪은 첫 번째 현상에 대한 응급처치를 기술하겠다. 


(면체의 아랫부분, 왼쪽 빨간색이 바이패스 밸브, 오른쪽 검은색이 공기차단버튼, 맨 아래가 양압 대기 호흡장치이다.)  


첫 번째, 바이패스를 밸브를 조작하여 비상호흡을 실시한다.

-왼쪽에 있는 빨간 밸브가 바로 바이패스 밸브다. 이 바이패스 밸브를 열면 막혀있던 면체에도 응급으로 공기가 공급된다. 이 바이패스 밸브를 열어서 응급호흡을 하면서 면체 내의 압력을 조정해야 한다. 공기가 차단된 면체 안은 공기가 거의 없는 음압상태일  것이다. 그래서 외부와 내부의 압력차가 있기 때문에 공기호흡기 용기 안의 공기가 면체로 제대로 들어올 수 없고, 규격에 맞지 않은 부품들이 서로 어긋나게 맞물리다 보니 대기, 앙얍스위치가 제대로 외부의 공기를 막아주지 못해 외부의 유독한 공기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먼저 바이패스 밸브를 열어 응급으로 호흡을 하면서 면체 내의 압력을 양압으로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 맨 아래쪽에 있는 양압, 대기 밸브를 몇 번 좌우로 왔다 갔다 해 본다.

-일단 바이패스 밸브를 열었으니 탈출 가능시간은 확보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외부의 공기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면 유독가스를 계속 흡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는 맨 아래에 있는, 제대로 잠기지 않은 양압 대기호흡 스위치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조정해 본다. 바이패스 밸브를 작동하기 전에는 음압이었던 관계로 부품들이 제대로 맞물리지 못해 양압호흡이 안되었다면 바이패스 밸브를 열고 압력을 조정하고 나면 훨씬 더 양압 대기호흡 스위치가 제대로 맞물릴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양압상태에서 용기에 있는 공기도 나온다면 더 이상 염려할 것이 없을 것이다. 어서 화재 현장을 벗어나 탈출하면 된다.


이렇게 지난겨울의 내 기억을 되살려 공기호흡기 면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의 응급처치법을 생각해 보았다.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나 화재 현장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선 누군가에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랴, 조직과 장비가 날 지켜주지 못하면 내 목숨은 내가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으니... 


전국의 모든 소방관들이 화재 현장에서 면체 불량현상으로 나와 같이 이런 응급처치를 사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개선된 공기호흡기를 쓰고 마음 편히 화재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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