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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Oct 09. 2024

고속도로 교통사고(2)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20)

"아빠 어디야?"


생각지도 못한 막둥이의 음성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와이프의 전화기였다.


"엄마가 아빠 어디쯤 오는지 물어보래, 할머니하고 고모 저녁도 준비해야 한다고..."


다섯살 짜리 치곤 너무나 또박또박한 발음, 난 순간 울컥해졌다.


"아빠, 사고 났어, 오다가..."


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사고 났대, 엄마~"


아이가 달려가며 제 엄마에게 소리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 들려왔다.


'하필 이런 순간에 막둥이에게서 전화가 오다니...'


난 와이프에게 사고 경위를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사고 수습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와이프는 수습을 어느 정도하고 나면 어느 병원으로 가는지 연락을 해 달라고 했다. 난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19와 경찰, 그리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은 경찰차였다. 경찰관이 한명 내 차로 다가와서 몸은 괜찮냐고 물었다. 그리고 여긴 고속도로 갓길이라서 2차 사고의 위험도 있고 하니 차를 300m 전방에 있는 톨게이트 부근으로 뺄 수 있겠나고 물었다. 난 허리가 아프긴 하지만 한번 빼 보겠다고 하고 차를 서서히 운행해 톨게이트 부근의 넓은 갓길에 정차했다. 그리고 나니 119가 와서 우리의 상태를 보고 응급처치를 실시했다. 먼저 도착한 구급차 한대는 상태가 가장 안좋은 누나를 응급처치해서 태우고 사라졌다. 두번째 온 구급차는 어머니와 나를 태웠다. 엄니는 허리가 아파 걷질 못했기 때문에 이동식 들것에 태워 구급차에 탔다. 난 그래도 조금 걸을 수 있어서 허리 보호대와 경추 보호대를 하고 구급차 보호자석에 앉았다.


우리가 구급차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어디선가 우리를 들이받은 그 화물차 운전자가 나타났다. 경찰차와 구급차의 경광등이 보여서였을까?, 그 불빛을 보고 어디엔가 숨어있던 그 **가 나타난 것이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때 늦은(?) 내 몸의 안부를 묻는 그 **에게 난 육두문자를 날려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 입만 더러워질 것 같아 순간 참았다. 그렇게 화를 내기엔 내 허리가 너무 아프기도 했다. 이런 사회의 공권력들이 없다면 사고를 저지르고도 어딘가로 내뺄 **였다. 그런 **는 그냥 투명인간 취급을 해 주는 것이 차라리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았다. 경찰과 119와 보험회사 직원이 물어보는 몇가지 인적사항을 대답해 주고 난 구급차 뒷좌석에 내 허리를 붙였다. 구급활동일지를 테블릿 pc에 입력하는 여자 구급대원은 아직 앳되보였다. 그리고 내게 응급처치를 해 준 남자구급대원은 듬직해 보였다. 난 어머니가 투석을 받고 있는 부산의 B병원으로 이송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차피 어머니가 입원을 하더라도 거기서 투석을 계속 받으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역시 엄니를 따라가야 했다. 엄니 옆에서 나도 치료를 받아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 두 모자는 구급차로 B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아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사고가 나서 신고를 하는 즉시 경찰과 119가 와서 사고를 처리했으며 내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에서 나와서 내차를 견인했던 것이다. 응급실 뻉뻉이니, 의정 갈등이니 하는 굵직한 사회 이슈 가운데에서도 이렇게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은 그래도 맨 아래서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가 시키는 대로 영상 촬영을 다 하고 나서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B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고 알렸다. 아내는 입원 준비를 해서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아직 결과가 안나왔으니 입원준비까지는 안 해 와도 된다고 했다.


의사는 여러 사진을 보더니 엄니와 나 둘 다 뼈가 부러지거나 한 것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엄니는 이제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운전자였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입원을 권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입원실로 옮겨가고 엄니는 연락을 받고 도착한 와이프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셨다. 엄니를 생각해서 나도 이 병원에서 치료하려 했는데 엄니는 퇴원을 하고 나만 입원이라니... 사고가 난 것도 그렇지만 이것도 뭐~ 알 수 없는 인생이 아닐까?


https://youtu.be/7b3-4xkihF4?si=Bc6WBKuY35pOtjV3

(문세 형님의 알 수 없는 인생처럼 인생, 정말 알 수 없다.~ㅠㅠ)


입원실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며 부산을 출발했던 일, 아버지의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친척들을 만난 일, 어두운 밤 고속도로에서 예기치 않게 화물차에 부딪혀 이  병원으로 실려오게 된 일까지... 정말 예기치 않은 사건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그 예기치 않은 사건은 자칫했으면 더 큰 예기치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는데, 울엄니가 매번 말버릇처럼 '이만하니 다행이다.'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니는 고령에다 신장 투석까지 받고 계신데, 거기다 얼마 전에는 넘어지셔서 허리 압박골절로 입원까지 하셨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니 사진상에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얼마나 몸이 안좋으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내 잘못은 아니지만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시다 이렇게 사고를 당하시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간에 오늘 사고를 당한 엄니와 나, 그리고 누나까지 아무 별 탈 없이 툴툴 털고 일어나길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래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웃으며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길, 웃으며 오늘의 사고를 다시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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