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로 살아간다는 것(28)
위 사진은 작년에 도라에몽 전시관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마침 아내는 교회 행사가 있었기 때문에 막둥이와 엄니만을 모시고 갔었다. 매우 더운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이 맞는지 엄니는 한 손에 부채를 들고 있다. 그리고 막둥이는 도라에몽 옆에서 어떤 손잡이를 조작하고 있는데, 저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손잡이는 일종의 타임머신을 작동하는 손잡이었던 것 같다. 그 뒤에 그려진 시계모양들이 찌그러지면서 시공간이 왜곡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도라에몽이 그런 시공간을 뛰어넘는 일종의 마술을 쓰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 도라에몽이 가리키는 데로 막둥이가 손잡이를 작동시켜 미래, 혹은 과거로 가는 설정인 것 같았다.
이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고 했다. 섬마을에 일을 보러 가셨다 돌아오는 길에 타고 가셨던 배가 어떤 이유에선지 침몰되는 바람에 배와 함께 돌아오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무런 기억도 없다. 그 배가 어떤 배였을까? 할머니는 그 배가 침몰할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밖엔 들지 않는다. 물론 떠오르는 얼굴이나 모습도 없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할머니였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 막둥이가 생각하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것일까? 작년까진 이렇게 손녀와 함께 잘 놀아주셨는데 요즘은 점점 쇠약해지시는지 키즈카페에 가도 할머니는 안마의자에만 누워계신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마저도 따라나서지 않으신다. 본인이 힘에 부치니 아들과 손녀에게 짐이 될까 두려우신 것일까?
"막둥아, 이 할미는 오늘 몸이 좀 안 좋으니 그냥 집에 있으련다, 엄마, 아빠하고 키즈카페에 가서 재밌게 놀다 오너라."
이렇게 말하면 막둥이는
"아앙, 할머니 같이 가요, 같이 가서 안마의자에 누워 있음 되잖아요~"
"아니, 누워 있으려면 그냥 여기 누워 있으면 되지, 뭘 가~ 자, 이걸로 거기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렴~"
엄니는 그렇게 어디선가 파란색 배춧잎 하나를 들고 와 손녀에게 쥐어준다, 순간 막둥이의 얼굴이 밝아진다.
"아니, 엄니, 이러면 애 버릇 나빠져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엄니는
"아니다, 괜찮다, 난 여기 좀 누워 있을 테니 막둥이 데리고 재밌게 놀다 오너라..."
엄니는 그렇게 소파에 몸을 누이고 tv를 켜신다. 그러면 막둥이는 키즈카페에 빨리 가자고 내 손을 잡아 끈다. 참 난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니 엄니를 남겨두고 키즈카페에 가서 막둥이와 놀아줄 수밖에...
이런 기억들 속에서 막둥이는 자라서 어떤 할머니로 엄니를 추억하게 될까? 인형나라에 가서 재밌게 놀아주던 할머니? 키즈카페에 가서 안마의자에 누워만 있던 할머니? 아니면 거기도 가기 힘들어 용돈 만원을 쥐어주던 할머니?
어떤 할머니가 되든 상관없다. 할머니에 대한 그런 기억들이 먼 훗날 막둥이의 머릿속에 아롱져 가끔 도라에몽의 타임머신을 타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상상을 할 수 있는 그런 할머니로 막둥이의 기억 속에 남아 계시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