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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Dec 11. 2021

극한직업-119 구급대원(2)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4)

   소방관은 크게 셋으로 나눈다. 불을 끄는 화재진압대원, 화재나 교통사고 현장에서 구조업무를 주로 하는 구조대원,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업무를 주로 하는 구급대원으로 나뉘는 것이다. -물론 내근직이나 상황실 요원처럼 다른 업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장직만 놓고 보면 이렇다는 얘기다.- 입사할 때부터 자격증을 갖고 특채로 입사하는 경우도 있고 입사하고 나서 자격증을 따고 보직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나 역시 소방서에 들어와서 2급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서 몇년간 구급대원으로 일했었다. 


   그런데 구급대원을 하면서 보람되고 뿌듯한 일들도 많았지만 힘든 점도 많았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구급대원 폭행사건이다. 


   https://mn.kbs.co.kr/news/view.do?ncd=3008686

(2015년 1월 KBS뉴스 링크)


   내가 구급대원으로 일할 때만 해도 이런 뉴스가 가끔씩 나오곤 했었다. 실제로 구급 현장에 가 보면 상당수 환자가 술에 취해 있었고 그러면 아무래도 구급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특히나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술에 취해 누군가와 다투다 상해를 입은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환자 본인의 감정도 격앙되어 있었고 자기를 도와주려는 구급대원에게 뭔가 시비를 걸어 화풀이를 하려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핑계는 여러가지였다. 왜 구급차가 늦게 왔느냐, 응급처치는 왜 안해 주느냐, 구급차가 왜 이리 천천히 가느냐... 그러면 응급처치를 하려다가도 멈칫! 하게 되었다. 혹시나 저 사람의 주먹이라도 날아오지 않을까?, 그러면 좁은 구급차 안에서 어디 피할 데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와 맞서 싸울 수는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면서 1.5m 정도 거리를 두고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더라도 피할 수 있는 거리- 가급적 환자의 머리쪽에서 -머리 위로 주먹질이나 발길질 하기는 쉽지 않다- 응급처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내 구급대원 생활 동안 이렇다 할 폭행사건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한번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신고자는 백발이 성성한 영감님이었는데 어지럽다는 그 분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서 생체징후를 살펴보니 이상이 있는 곳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모두 정상이었다. 수년간의 구급대원의 촉이 발동했다. 약간 취기가 있는 걸로 봐서 영감님은 어디서 한잔 걸치신 듯 한데 집에 고이 가시기엔 차비도 부족하고 집도 너무 먼 거리였다. -지금도 그런 환자가 많은지 몰라도 내가 근무할 때는 약간의 꾀병(?)을 핑계삼아 구급차를 택시처럼 이용하려던 환자 코스프레 승객(?)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이 어르신께서 어지럽다며 김해에 있는 무슨 병원으로 이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되돌아 가기엔 '어지럽다'는 말이 맘에 걸렸다. 뇌졸중 환자의 특징인 '어지러움'을 무시할 수가 없는 거였다. 일단 우리는 FAST(뇌졸중 자가진단법)에 따라서 뇌졸중 자가진단을 해 보았다. 


(뇌졸중 자가진단법-티 스토리 펌)

 

   예상대로 영감님은 정상이었다. 약간 술냄새가 나긴 했지만 발음도, 시선도, 동작도 모든 부분에서 정상적으로 반응했다. '영감님은 꾀병이시네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긴 좀 그래서 우리는 부산소방 소속이기 때문에 김해까지 갈 수 없다는 말씀을 먼저 드렸는데 -이송 체계상 관할 시도를 넘는 이송은 규정상 불가하다, 대신 관할 시도를 넘게 되면 그 쪽 관할 구급대에 인계해서 연계이송을 한다.- 그 때 갑자기 영감님의 표정이 싸해지더니 뭔가가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영감님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갑자기 내 가슴팍을 찌른 것이었다. 항상 환자와 1.5m의 거리를 유지한다는 나의 전략은 영감님의 지팡이 공격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아픈 것은 둘째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볼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감님~, 영감님!"


   옆에 있던 김반장이 영감님을 잡으려 했지만 영감님은 어지럼증 환자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속도로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난 김반장에게 그냥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냥 오늘 *밟았다고 생각하는 게 속편할 것 같았다. 저런 사람을 잡아서 경찰서에 데려 가야 하고 사건 조서 작성하느라 비번날에 여기 저기 불려다닐 걸 생각하니 내 머리가 아플 것 같았다. 그냥 저 영감이 뇌졸중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김반장과 나는 뉘엿뉘엿 지고 있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센터로 귀소했다. 우리 둘은 서로 아무말도 없었다. 누굴 도와주러 갔다가 지팡이 공격을 당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차가 막히는 바람에 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우리의 퇴근시간도 한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김반장, 오늘 일은 그냥 잊어버리자."


   "네? 그래도 그건 아니죠, 저런 사람들은 감방에 집어넣어서 콩밥을 먹게 해야 합니다."


   "아냐, 머리도 허연 저런 영감을 집어 넣어 뭐 하겠어?, 우리만 피곤하지..."


    "....."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구급대원 폭행사건은 잊혀져 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론에 나오는 구급대원 폭행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많은 구급대원들이 나처럼 이렇게 폭행을 당하고도 그냥 *밟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여전히 구급대원 폭행사고 소식은 들려오고 있다. 지난달 29일자 뉴스다.


https://youtu.be/ENwSBHpuVlw

(2021년 11월 MBC 뉴스 링크)

 

   어쩌면 지난 5년간 변화된 것이라곤 하나 없을까?, 아니, 내가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마무리 된다. 구급대원 폭행에 대해 무관용으로 엄정대처할 것이며 가해자는 몇 년의 징역형과 몇천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내용 말이다. 하지만 구급대원 폭행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가해자가 그런 징역형이나 벌금을 받았다는 뉴스는 아직 한번도 보지 못했다. 제2, 제 3의 강연희 소방관이 나와야 이 사회는, 이 정부는 정신을 차릴 것인가?


https://tv.kakao.com/v/319413020@my

(취객에 맞아 숨진 (고)강연희 소방관-채널A 뉴스 링크)


   제2, 제 3의 강연희 소방관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가 소방관과 구급대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전환하여 더 이상 약자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구급대원 폭행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코로나 19로 다시 구급대원이 힘들어질 것 같은 오늘 밤,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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