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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an 01. 2022

극한직업-119 구급대원(3)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5)

   "어둠을 뚫고 새해가 떠오르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아기는 태어난다."


   얼마 전, 코로나 19에 확진된 한 산모가 출산이 임박해서야 119를 불러서 16개 병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기에 대응할 병상도, 병원도 없어 결국 119 구급차 안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https://tv.kakao.com/v/334692995@my

(MBN 뉴스 갈무리)


  더군다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12월 18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천 년 전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아기 예수님도 갈 곳이 없어 초라한 마굿간 구유 위에 누이셨는데 21세기인 지금도 신생아가 갈 곳이 없어 구급차 안에서 출생했다고 하니 엄중한 코로나 시국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안타깝고 한편으론 우리 어른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만삭의 임산부를 데리고 16개 병원을 수소문하면서 아기를 받아낸 그 구급대원들은 구급차 안에서 얼마나 애가 탔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임산부가 갈 병원은 정해지지 않는데 산통은 계속 심해지고, 그러다 보니 구급차 안에서라도 응급분만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임산부가 잘 버텨줬고 구급대원들도 응급 분만에 대해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뉴스를 보니 나의 구급대원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급 현장에서 아기를 받았던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도 오늘처럼 무척이나 날씨가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다. 


   나와 나의 구급 사수이자 운전요원이었던 이반장님은 그날도 24시간 당번근무를 서면서 -그 때는 지금처럼 3교대가 아니라 24시간 2교대 근무였다.-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먹으며 오늘 밤엔 어떤 구급 사건이 일어날 것인가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구급대원 3년 차 정도였기 때문에 웬만한 구급 사건은 한 번씩 다 경험해 보았지만 그날 저녁, 바로 임산부 응급 분만을 맞닥뜨리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소방서 스피커에서 출동지령이 내려오자 우리 둘은 용수철처럼 소방서 식당 의자에서 튀어서 구급차에 올랐다. 무전에서는 상황요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만삭 임산부, 진통 호소, 출산 예정일은 며칠 남았는데 진통이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신속출동!~"


   지령 컴퓨터에서 프린터 되어 나온 지도를 보니 -그때는 아직 네비게이션이 없었다.- 신고자가 있는 장소는 우리 소방서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한 재래시장이었다. 그쪽을 담당하는 구급대가 다른 곳에 출동을 나간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면 최단 거리에 있는 다른 구급대에서 그쪽으로 출동을 나가게 된다.- 


구형 이동식 들것(구급차 안에 싣고 다니면서 필요시 환자를 싣고 옮길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 펌-)

 

   이반장님도 임산부 분만 관련 출동은 처음이신지 얼굴에 긴장감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 역시 이런 출동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 둘은 서로 아무 말도 없었다. 크게 싸이렌을 켜고 소방서를 나섰다. 그런데 낮에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 자정이 지난 시간이라 도로에 차는 많지 않았지만 길도 미끄럽고 거리도 좀 있었기 때문에 운전하는 이 반장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길게만 느껴지는 몇 분을 달려 시장 입구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나야 했다. 눈 속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몇 대의 차들 때문에 구급차가 시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시장으로 오는 내내 상황실에서는 몇 번이나 무전으로 우리의 위치를 물어왔다. 임산부의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구급차에서 이동식 들것과 구급용처치 가방을 꺼내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자정이 넘은 시간, 재래시장 안은 거의 불이 꺼져 있었고 입구는 내리다 얼어붙은 눈이 쌓여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가 찾는 신고자의 위치는 시장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시장 입구에서 20미터 정도 들어가자 임산부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며 다른 한 손을 흔들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눈길 위에서 조심조심 이동식 들것을 밀어가며 그 남자가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그곳은 시장 안에서 뭔가를 파는 점포였는데 임산부는 점포에 딸린 1층 방안에 누워있었다. 


   "괜찮으세요?, 저희는 119 구급대원입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며 임산부를 안심시키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아기가 나온 것 같아요." 


   산모의 남편이 말했다. 산모는 기진맥진해서 그냥 엎드려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가냘프게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다리 사이엔 모포에 싸인 뭔가가 있었다. 누군가가 갓 태어난 아기를 모포에 싸놓은 것이었다. 우리는 소방학교에서 교육받은 대로 의료용 장갑을 끼고 그 모포 속에서 아기를 꺼냈다. 그리고 가져온 분만세트(임산부 응급처치용)를 사용해서 아기 입에 있던 이물질을 흡인하고 아기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제대결찰-아이와 엄마를 이어주던 탯줄을 자르고 탯줄클립으로 묶어줌-을 시행한 후에 아기와 엄마를 멸균 시트를 깔아놓은 이동식 들것에 눕혀 구급차로 둘이(?)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까지 이송했다. 아기와 엄마를 태운 이동식 들것이 눈길에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아기 아빠와 셋이서 조심조심 이동식 들것을 밀고 당기며 시장 골목을 빠져나온 진땀 나던 그날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기의 아빠는 구급차 안에서 아내의 손을 꼭 쥐고 우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초산인 데다 예정일도 며칠 남아서 처음 진통이 올 때에는 그러려다 말겠거니 했는데 정작 계속 진통이 심해지니 눈길에 불법 주정차한 차들 때문에 만삭인 부인을 시장 밖으로 업고 나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고 했다.


(눈 내리는 도로-네이버 블로그 펌)


   아기와 산모를 둘 다 산부인과 병원에 무사히 이송하고 당직 의사에게 인계한 후, 소방서로 귀소 하는 길에는 다시 눈발이 흩날렸다. 하지만 이반장님과 나의 마음은 가벼워져 내리는 눈처럼 허공을 훨훨 날아갈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의 탯줄을 처음으로 자를 땐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단지 아기와 엄마의 분만을 아무 탈없이 마무리해서 빨리 병원에 이송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P.S - 12/18일 새벽에 구급차 안에서 태어난 아기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코로나 19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이 나와 현재는 할머니 댁에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자가 격리된 아빠, 병실에 있는 엄마와 떨어져 있겠지만 어서 코로나 19가 물러가고 세 식구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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