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6)
(사진 출처:연합 뉴스)
소방관으로 살아가면서 비애를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오늘처럼 동료 소방관들이 불을 끄다 순직하거나 다쳤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매년 되풀이되는 동료 소방관들의 순직 소식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것보다도 '왜 이런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언제까지 되풀이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비애를 느낄 때가 많다. 작년에 쿠팡 물류 화재에서 고 김동식 소방경을, 또 울산 상가 화재에서 고 노명래 소방사를 아쉽게 보내드린 기억이 생생한데 오늘 또 소방관 3명의 비보를 들었다. 이번에도 대형 냉동창고 건설현장에서였다.
(jtbc 뉴스 갈무리)
고 이형석 소방위, 고 박수동 소방교, 고 조우찬 소방사. 이들은 대한민국의 소방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었으며, 또한 갓 소방에 입문한 새내기였다. 한창 꿈을 펼치고 가정을 이루고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는 이들을 사지로 내몬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비통한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왜 이런 사건이 계속 되풀이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 대형 물류창고 - 경기도에 많이 있다는 대형 물류창고는 화재가 자주 일어나기도 할뿐더러 일단 화재가 나면 대형화재로 번져서 많은 인명피해를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화재가 일어난 냉동창고도 연면적이 2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작년에 화재가 났던 쿠팡 물류센터도 12만 제곱미터가 넘는 규모였다. 게다가 거기엔 화재가 나면 불쏘시개가 될만한 것들이 많다. 쿠팡 물류센터도 콘센트에서 최초 발화했지만 종이 박스 등 가연물이 많아 대형화재로 커졌다. 오늘 화재가 난 평택 냉동창고도 산소통과 LPG 가스통 등 화재를 급격하게 연소확대시킬 수 있는 재료들이 많았다고 한다. 거기에다 보온재이면서 가연성 물질인 우레탄 폼 등으로 불이 붙으면서 급격하게 연소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말이 12만, 20만 제곱미터지,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이 안 되는 크기다. 게다가 눈앞은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여 있는 그곳을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용량의 공기호흡기를 메고 들어간다는 것은 곧 사지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명검색이나 화재진압을 위해 들어가긴 했지만 그 넓은 곳에서 요구조자나 화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넓은 곳을 그렇게 헤매다 보면 예기치 않은 돌발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건물이 붕괴되거나 장애물이 떨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기호흡기의 공기는 30분이 넘어가면 모두 바닥난다. 작년에 김동식 소방경의 경우에도 불이 어느 정도 꺼지고 인명검색을 하러 들어간 과정에서 갑자기 불길이 다시 되살아나면서 선반의 적재물이 무너져 내려 고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지하 2층 입구를 불과 50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그의 유해가 발견됐다. 마찬가지로 어제 평택 냉동창고 화재상황도 비슷하다. 인명검색 및 잔화정리를 하러 들어간 구조대원들이 다시 커져버린 불길과 무너진 구조물에 갇혀 입구를 불과 80미터 남기고 순직했다.
두 번째 : 진입 시점 - 두 사건 모두 다 불이 어느 정도 꺼지고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인명검색 및 잔화정리를 하러 들어갔던 구조대원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화재 모두 큰 불길이 잡히고 그에 따라 화재대응단계도 낮춰진 상태에서 건물 내로 들어간 소방관들이 진화됐던 불길이 갑자기 재 확산하며 커져버린 화재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화재도 거의 진화되고 안에서 공사 작업을 하던 작업자들도 다 탈출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소방관들을 투입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 두 가지 공통점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다음에는 똑같이 이유로 소방관이 순직하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첫 번째 대형 물류창고는 불이 일단 나면 끄기도 어렵거니와 인명피해도 엄청나다. 면적도 워낙 넓은 데다 연소 확대될 요소도 많기 때문에 불을 끄기 이전에 불이 안 나게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사 중인 대형 창고는 모든 작업을 할 때 소방관이나 외부의 안전감독자를 지정해서 그 감독자의 승인을 받아 작업을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제 화재가 난 냉동창고도 밤 11시 46분에 바닥공사를 진행하다가 공사 인부가 화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야간작업도 불사했는데 그 내부 관계인인 안전감독자가 제대로 안전을 확인했을 리 없다. 공사 관계자가 아닌 소방관이나 제3의 외부인이 현장에 상주하면서 모든 공사의 안전을 확인하고 승인한 후 공사하는 시스템으로 가야 하고 이를 법제화해서 대형 물류창고 건설 시 화재가 나는 비율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불이 나고 나서 커지는 화재를 막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예 될 수 있는대로 화재가 나지 않게 하는 예방소방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쿠팡 물류센터처럼 건설된 후에 영업을 하고 있는 대형 창고의 경우엔 소방시설의 유지 관리를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 초기에 화재를 감지해서 비상방송설비(화재가 나면 사이렌 등을 울리고 대피방송을 하는 설비)를 울리고 스프링클러나 옥내 소화전등 소방시설을 작동시키는 것이 감지기를 비롯한 자동화재 탐지설비인데 그렇게 넓은 면적의 물류창고들은 그 설비가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동화재 탐지설비를 꺼 놓거나 설사 그것이 울려도 오작동이겠거니 하고 작업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화재가 발생할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초기 소화에 실패하고 신고도 늦어져서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면 뉴스에서 보던 대로 검은 연기가 건물을 온통 감싸게 되고 소방관들의 진입도 어렵게 된다. 그러니 그런 대형건물일수록 소방시설을 확실하게 점검하고 활용해서 화재 시 그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소방교육도 철저히 해서 소방시설 유지 관리와 초기 진화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화재 초기에 소화기로도 화재진압을 할 수 있고 소방차도 조기에 출동해서 소방관들이 어렵지 않게 건물 내로 진입해서 화점을 찾아내어 불을 끄고 요구조자를 구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진입 시점에 대해서는 내가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할 수는 없다. 화재 막바지에 불길도 거의 꺼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구조대원을 투입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곳에 있던 지휘관도 분명 많은 경험을 가진 소방관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대원의 안전이 완전히 확보된 상태에서 구조대원들을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건물 안에 요구조자도 더 이상 없다고 밝혀진 상황에서 그렇게 서둘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작년의 김동식 소방경과 어제 세분의 소방관의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이란 건 언제나 의미가 없다. 이미 쏜 화살이고 엎질러진 물이다. 지나간 일들 두고 이러쿵저러쿵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만약이란 건 다음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다음에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다음에는 저렇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거쳐 인류는 발전해 왔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이십 년 소방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제와 작년의 문제들에 대해 복기해 보았다. 왜냐하면 나도 소방관이고 저들에게 닥친 비극이 나라고 해서 피해 가리란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 함께 많은 소방관들의 생각들이 모여서 더 이상 안타까운 소방관의 희생이 줄어들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소방조직도 몇몇 사람들의 생각이 아닌, 많은 대원들의 자유롭고 건설적인 토론문화를 통해서 어제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고 그 해결책을 기반으로 내일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선진소방, K-소방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