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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Feb 12. 2022

건물 붕괴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7)

(사진출처-sbs)


   며칠 전 2월 8일 저녁 7시 37분쯤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매몰된 마지막 희생자를 구조해서 수습함으로써 지난달 11일 오후 3시 46분경 붕괴 사고 후 29일 만에 모든 구조작업이 마무리됐다.



   

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로 돌아가신 6명의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구조작업이 마무리되기까지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이 붕괴사고는 2022년 대한민국의 '빨리빨리'문화에 기인한 안전불감증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대한민국 건축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인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보여준 희생자 유가족들과 소방당국의 대처는 이전의 사례와는 다르게 현장 진입 대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 모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나 이번 사고의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무리한 구조작업으로 인한 소방대원의 희생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신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빨리빨리'문화에서 벗어나 안전과 소통을 중시하는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터닝포인트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사건의 구조활동에는 구조안전 전문가 25명이 자문에 응했고 광주 소방공무원 연 4857명과 전국 소방력 동원령에 따른 소방관 연 841명, 구조견 141마리(중복 포함)가 투입되어 24시간 수색체계에 돌입하여 29일 동안이나 구조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또한 수색 과정에서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크레인 등으로 인한 추가 붕괴 우려와 잦은 잔해물 낙하 등으로 수차례 수색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난항을 겪었다. 한 정치인은 아파트 붕괴 구조작업에 이스라엘에 특수부대의 파견을 요청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구조작업이 끝난 후 고민자 광주광역시 소방본부장님은 이번 구조작업이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열악하고 위험한 고난도 현장'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전국의 구조대원과 구조견이 하나가 되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건물 붕괴 구조작업이라고 하니까 10년 전 그날이 떠오른다. 2012년 8월 1일이니까 6개월 후면 10년이 된다. 2012년 8월 1일 오후 4시 19분 부산 사상구 감전동 안전화 제조공장인 (주)빅토스에서 불이 나서 근로자 1명과 소방관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http://www.star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30

   

   이 사고 역시 경기도 평택 냉동창고 화재나 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와 판박이다. 그런 화재 사고들이 나기 벌써 10년 전에 비슷한 화재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공장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졌고 그 안에 있던  보온재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불길은 샌드위치 패널 안의 보온재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해 그 안에 있던 신발 완제품과 각종 화학물질을 연료로 삼아 건물을 집어삼켰고 소방당국은 50여 대의 소방차와 헬기 1대, 150여 명의 소방인력을 동원, 진화에 나서 오후 5시 48분께 완전 진화했으나 이날 밤 10시께 추가 사상자 확인을 위해 건물 내부로 진입했던 소방관 김영식(52) 소방위가 5층에서 건물 아래로 추락 사망했다. 그때도 화재 완진 후 잔화정리와 인명검색을 위한 소방관 진입, 재발화와 급격한 화재 확산, 소방관 고립 후 사망이라는 똑같은 공식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그 화재에서는 화재 진압 중 건물 붕괴가 있었다는 점이다. 초기 진화 후 잔화정리와 인명검색을 하러 진입했던 고. 김영식 소방위는 붕괴된 건물에서 추락해 순직했다. 


(화재 진압 중 붕괴된 (주)빅토스 공장 건물-연합뉴스 펌)


   고. 김영식 소방위는 나와도 같이 근무했던 나의 선배 소방관이었다. 내가 처음 소방서에 발령받았을 때, 그는 소방차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법 없이도 살아갈 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늘은 왜 이런 분들만 먼저 데려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분은 처음 소방에 입문해 쩔쩔 매고 있는 햇병아리 같은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고 따스한 말과 미소를 건네주셨다. 그분 덕분에 나는 소방관으로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한 사람의 소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분이 화재 진압 중 붕괴된 건물에서 추락,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난 깜짝 놀랐다. 그때 나는 부산의 한 해수욕장에서 수상구조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날 근무를 마치자마자 장례식장으로 뛰어갔다. 그분은 장례식장의 영정 안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반대로 내 눈에선 눈물이 마르지 않고 솟아 나왔다. 소방 경력 27년 차의 베테랑 소방관도 갑자기 무너지는 건물 붕괴 앞에선 어쩔 수 없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세 아이와 노모를 모시던 효자 소방관이 얼마나 가족들이 눈에 밟혔을까?


https://news.v.daum.net/v/20120802134714450


-화재 진압 중 건물 붕괴로 순직하신 나의 선배 소방관 고 김영식 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나는 선배 소방관을 화재로 떠나 보낸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한동안 멍한 상태에서 살았던 것 같다. 나도 언제든 그런 일을 당할 수 있고 어쩌면 비극적인 삶을 마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주위의 동료들과 함께 그 트라우마를 견디며 이겨내었던 것 같다. 


   이번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에서도 우리 사회가 '빨리빨리' 문화에만 사로잡혀서 빨리 희생자를 구조해 내라고 소방관들을 다그쳤다면 제2, 제3의 김영식 소방관, 이형석, 박수동, 조우찬 소방관(평택 냉동창고 화재), 노명래 소방관(울산 상가 화재), 김동식 소방관(이천 쿠팡 물류창고 화재)이 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희생자 유가족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족의 안위가 무엇보다 염려되었겠지만 그보다도 무리한 구조 과정에서 똑같이 누군가의 가족들일 소방관들의 희생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우리 사회가 나보다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안전과 소통의 원칙을 지켜가는, 진정한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터닝포인트에 서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2022년 2월 12일, 오늘. 광주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희생자 여러분과 위에서 언급한 순직 소방관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며 한 달 동안 불철주야 고생하며 더 이상의 추가적인 희생 없이 구조작업을 마무리해 주신 전국의 모든 소방관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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