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8)
(사진출처-창원일보)
이번에 강릉 옥계와 경북 울진 산불은 2019년 강원도 산불과 닮아있다. 모두 건조한 기후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연소 확대되었고 최초 발화원인은 사람의 실화, 혹은 방화인 '인재'라는 것이다. 강릉 옥계의 산불은 60대 방화범이 동네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토치로 불을 놓은 것이 원인이고 울진 산불 원인은 누군가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버린 담뱃불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2019년 강원도 산불은 한 도로변의 전선에서 불꽃이 일어나 그것이 강풍을 타고 산불로 확대되었다.(2019년도와 마찬가지로 올해 겨울도 매우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이것이 2019년과 올해 산불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되며 같은 이유로, 2019년의 뜨거웠던 여름을 생각하면 올해 여름도 엄청난 폭염이 예상된다. 그리고 강원도에서 이맘 때 대형 산불이 일어난 것은 한두 해가 아니었다. 강원도 산불은 역대 5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었는데 00년 4월 강원 동해안/ 05년 4월 경북 양양/ 19년 4월 강원 동해안/ 22년 3월 경북 울진, 강원 삼척/ 22년 3월 강원 강릉, 동해 등이다.)
올해 초에 대형 산불이 일어날 것이라고 1월달쯤에 내가 쓴 글이 있다.
https://brunch.co.kr/@muyal/54
(이 글 마지막 부분에 보면 2019년에 있었던 강원도 산불을 잊지말고 -냄비근성을 버리고- 미리미리 산불을 예방하자는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올해도 결국 대형산불은 반복되어 일어났다.)
그러고 보면 늦겨울~초봄에 발생하는 한국의 산불은(주로 강원도를 비롯한 동쪽 지역에서 빈발함) 대체적으로 이런 공식을 대입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요인과 인적요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한국의 산불은 많은 소방관들과 관계 공무원들의 희생과 노고에 의해 진화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역민들의 피해도 결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노고와 희생, 그리고 피해는 해마다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 아쉽다. 내가 부산 강서구에서 소방관 생활을 하던 2011년, 부산에서 역대급 산불이 났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1103261241359816
내가 그 산불과 만난 때는 2011년 3월, 부산 강서구에 있는 '보배산'에서였다. 역시나 누군가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가 원인이라고 추정되는 이 산불은 18만 ha의 산림을 모두 태우고 발생 18시간 35분 만에 꺼졌다. 내가 맨 처음 그 불을 본 것은 야간근무를 하기 위해 차를 몰고 소방서로 가는 내 차 안에서였다. 저 멀리 산에서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언 듯 '산불인가?'하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이 맞았다. 몇 분 후 소방서에 도착해 보니 소방차가 이미 불이 난 보배산으로 출동을 나가고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개인장비를 챙겨서 구급차에 올랐다.(소방차가 불이 나서 출동하고 나면 야간에 출근한 직원들은 구급차로 불이 난 곳까지 타고 간다. 그때 구급출동이 걸리면 다른 센터 구급차가 출동한다.) 다른 직원들도 삽, 불털개, 쇠스랑 등등 산불진압장비를 챙겨 하나둘씩 구급차에 올랐다.
"일단 산불이 크게 난 것 같으니까 개인장비는 잘 챙겨라, 오늘 안에는 센터로 못 돌아올 것 같다."
마지막에 타신 팀장님이 예언처럼 낮게 읊조리며 말했는데 그 예언은 정확하게 맞았다. 우리는 그로부터 정확하게 3일 후에 산을 내려왔다. 언론에서는 산불 발생 18시간 만에 꺼졌다고 하지만 그건 큰 불을 잡은 시간일 뿐이다. 산불은 완전히 진화되고 나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숨어 있는 잔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그것들이 되살아나 산을 다시 태우는 것이다. 그래서 산불이 다 꺼지고도 철수를 할 수가 없다. 우리는 3월 초순의 살을 에는 찬바람과 맞서 싸워가면서 소방차에서 3일 밤낮을 지새며 산불과 사투를 벌인 것이다.
3월은 봄인 듯 봄이 아닌 계절이다. 특히나 밤과 새벽으론 1, 2월 못지않은 차가운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온다. 그 바람을 타고 산불이 인가로 넘어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방차들을 산을 빙 돌아가면서 산길에 배치해 두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리고 산불이 인가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경계근무를 서면서 화재를 진압했다. 불이 넘어온다 싶으면 그곳으로 소방호스를 끌고 가서 물을 뿌리고 점점 산불을 포위해 가면서 포위망을 좁혀 갔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의 불씨도 남아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숨은 불씨까지 찾아내어 진화해 가면서 점점 산꼭대기로 올라갔다.(밥은 순찰차를 통해서 도시락을 공급받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산을 내려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둘째 날과 셋째 날에 바람이 좀 잦아들어서 우리는 겨우 산불을 모두 진압하고 산을 내려올 수가 있었다. 산을 내려와서 보니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3일 밤낮 동안 씻지도 못하고-생리현상은 적당히? 알아서? 처리했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소방차에서 쪽잠을 자다가 불이 내려오면 부랴부랴 호스를 당겨 불을 끄고 -이 과정에서 바람에 날아온 나뭇재에 온몸이 재투성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방헬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뒤집어쓸 때도 있다. 그래도 그 옷을 계속 입고 작업해야 한다. 감기 걸리기 딱 좋다.- 다시 조금 쉬다가 산 정상으로 전진하는 작업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3일 만에 산을 내려와서 모두 같이 소방서 근처에 있는 대중목욕탕으로 향했다. 내 모습을 누군가 아는 사람이 볼까 두려울 정도였다. 서로를 보며 '까마귀가 형님~하겠다'며 초등학생들이 할 만한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뜨거운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나니 정말 지상낙원이 따로 없구나 하는 소리가 저절로 올라왔다. 산에서 불과 바람과 싸우느라 얼었던 뼈 마디마디가 녹는 느낌이었다. 산에서 바람과 불을 견딘 3일간의 보상치고는 너무나 소박했지만 우리는 산불을 제압하고 민가를 지켜냈다는 뿌듯한 느낌과 함께 목욕을 마치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제각기 퇴근했다.(이걸 소방용어로 '목욕탕 퇴근'이라고 한다. 가끔 큰 화재를 끄고 나서 이럴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저랬나 싶을 정도로 힘든 보배산 산불 진압이었지만 그래도 저 때는 젊음과 열정이 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추운 줄 모르고 했던 것 같다. 2019년에 이어 이번에도 산불진압에 고생하신 강원도와 경북지역 소방관들과 산불전문 진화대원을 비롯한 관계공무원 여러분, 그리고 군인들에게 모두 애쓰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이번 울진과 강릉에서 발생한 산불은 3월 13일, 오늘 내린 비로 모두 꺼졌다. 장장 9일, 213시간에 이르는 진화시간과 24,940ha의 면적을 태운 역대 최대의 산불이 될 것으로 보인다, 1ha는 3,025평이다.) 아울러서 비슷한 시기가 되면 똑같이 일어나는 산불을 비롯한 여러 자연재해 앞에서, 매년 똑같은 피해를 당하는 지역민들을 위해서, 시기와 상황에 맞는 대비책을 세워서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모든 위정자들과 공무원들이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새로 출범한 윤석열 차기 정부는 좋은 대비책을 세워서 이런 반복적인 자연재해를 피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