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21)
(사진출처-다음카페)
소방관들의 정신건강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화재, 구조, 구급활동 시에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거나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뻔한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릴때 소방관의 멘탈이 붕괴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원인의 불만 제기나 상사나 동료의 갑질 등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다. 삶의 문턱을 넘을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현장활동을 하고 돌아왔는데 신고자나 민원인이 불만을 제기한다든지 같이 일하는 상사나 동료가 알아주지 않고 그를 비난할 때는 이 두가지 원인이 복합된다. 더구나 이 모든 것을 온몸으로 맞으며 집에 돌아갔는데 그를 감싸주어야 할 마지막 피난처인 가정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부부싸움을 한다든지 가족이 아버지(혹은 어머니)를 무시하는 분위기라면 그 소방관의 마지막 선택은 아마도 극단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번 회차에서 말했듯이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 20화) 이번회에서는 소방관의 정신건강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로서 내가 소방서에 들어와서 7~8년 차쯤 되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통해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원인 -그중에서도 생사의 갈림길에 놓일 뻔한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때- 에 대해 써 보고자 한다.
그때는 2007년도쯤, 아마 아주 추운 한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구정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어느 평일이었다.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한 나는 소방차의 적재장비를 살펴보고 있었다. 소방차에서 물을 뿌리면 그 뿌린 물이 얼지 않게 하는 염화칼슘 -요즘은 환경문제로 잘 쓰지 않는다.- 이 제대로 있는지 보려고 소방차 위에 올라가 적재해 놓은 염화칼슘 포대 갯수를 세고 있을 때였다.
화재출동, 화재 출동, 창선동 국제시장 화재 발생!
국제시장은 부산에서 유명한 재래시장으로 -아마 황정민 주연의 영화 '국제시장'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지만 그때는 아직 그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때다.- 내가 일하고 있던 안전센터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다. 차로 한 30분 이상 걸리는 곳으로서 그곳에 난 불로 우리 센터까지 출동을 시킨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큰 화재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신속히 소방차에 올라탔다. 더욱이 그곳은 6.25 이전부터 소규모 점포가 밀집한 곳으로서 좁은 골목 사이로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불이 나면 대형화재라는 것은 부산에 근무하는 소방관이면 누구나 알만한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때는 구정을 며칠 앞둔 시점, 많은 상인과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하다 보니 대형화재가 날 만한 요건은 충분해 보였다.
우리의 예상대로 소방차에 올라타자마자 울리는 무전은 다급하고 그칠 줄 몰랐다. 가까운 거리에서 몇 대의 소방차가 먼저 출동했지만 커지는 화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양이었다. 불은 시장 내의 몇몇 점포를 태우고 몸집을 불려 가며 주위의 적산가옥 -일제시대에 지은 건물로 일본이 패망하면서 일본인들이 남긴 가옥이라 하여 적산가옥이라고 부른다. 국제시장은 이런 건물들 1층에 점포가 오밀조밀 붙은 구조였다.- 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몇 건물이 아니라 시장 전체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방차가 진입할 통로도 없이 오밀조밀 붙은 적산가옥들은 마치 아궁이에 서로 버티고 서 있는 장작들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서서 검붉은 머리카락들을 휘날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방차에서 내리마 자자 검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불냄새가 우리의 목과 코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공기호흡기 면체로 안면을 가리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우리가 배치받은 건물로 향했다.
"**분대는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파괴하고 아래층으로 방수할 것!"
지휘관의 명령이 무전을 통해 하달되었다. 건물의 좌우 측면으로는 다른 분대 -좀 군대식이긴 한데 소방서에서는 한 센터의 인원과 장비를 통틀어 '분대'라고 표현한다.- 가 진입하여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자 우리에겐 지붕을 뚫고 아래층으로 물을 쏘아 불을 끄라는 명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우리는 소방차에 적재되어 있는 사다리를 펴고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공기호흡기를 쓴 데다 면체까지 착용하고 나니 숨쉬기도 불편하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팀장님의 발끝만 보면서 사다리를 한 걸음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붕에 올라가니 이미 소방관들이 뿌린 물로 인해 기왓장들이 미끄러웠다. 잘못하면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한걸음 한걸음 팀장님을 따라갔다. 팀장님은 앞서가면서 내게 뭐라고 했지만 주위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 않았다.
"이반장, 여길 깨자!"
지붕 중간쯤 갔을 때 팀장님은 나에게 자기 앞에 있는 기왓장을 가리키며 거길 깨자고 말했다. 나와 박반장은 준비해 간 도끼와 해머로 그곳을 깨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단히 고정해 놓은 기왓장은 잘 깨지지 않았다. 한참을 도끼질과 해머질을 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널빤지만 한 기와가 깨지고 그 아래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로 호스를 집어넣어!"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나는 박반장에게서 소방호스를 건네받아 그 안에 대고 밑으로 물을 쏘려고 했다. 그래서 호스 대가리를 구멍 안에 넣으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와장창!"
하며 내가 밟고 있던 기왓장들이 한순간에 깨져서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이미 물을 잔뜩 먹었기 때문에 몇 번의 해머질과 도끼질에 그 주변 기왓장까지 다 깨져 버린 것이었다. 내 몸도 기왓장들을 따라서 아래로 추락했다. 그 밑은 시뻘건 불길이 입을 벌리고 거대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지만 운 좋게도 나는 겨우 주변에 남아있는 기왓장 한 귀퉁이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마저 부서졌다면 이미 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즉시 팀장님과 다른 동료들이 달려와 내 손을 잡아주고 날 거기서 끌어올려 주었다.
화재진압을 모두 마치고 나서 센터로 돌아가는 소방차 안에서도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죽다가 살아난 경험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소방관 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사표를 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팀장님은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봐 주었다. 센터로 돌아와서도 내게는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고 씻고 대기실에 가서 쉬라는 말과 함께 나를 다독여주었다.
며칠 후 있은 팀별 회식에서 팀장님은 장어 쓸개즙을 넣은 소주를 권하며 내게 말하셨다.
"이봐라, 이반장!, 저번에 한번 죽을 뻔했지?"
"네"
나는 술이 좀 돼서 알딸딸한 상태로 그 소주를 원샷으로 들이켰다.
"그래, 우리가 불을 끄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기라, 나도 소방서 밥 30년을 먹었지만 나라고 이런 일 저런 일 없었는 줄 아나, 나도 이반장처럼 죽다가 살아난 경우도 부지기수야, 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서 버틸 수가 있었던 게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게 불 속에 떨어지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쩌겠노, 나도 이 짓 그만둬야지, 그런데 여긴 자넬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잖아, 그러니 여긴 혼자서 죽을래도 죽을 수가 없어, 알겐나?"
"네"
"그리고 그날 내가 앞서가면서 뭐라핸노, 용마루와 서까래 -지붕의 중심이 되는 뼈대와 그 주위를 받치는 뼈대 목재- 를 밟으면서 잘 따라오라고 안 했나, 그거 밟으면 안 떨어진다고, 그런데 그 말을 안 듣고 밑에 아무것도 없는 데를 밟으니 떨어지지, 안 그렇나?"
팀장님 역시 눈이 풀린 상태에서 말을 이어갔다. 난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그날 팀장님이 앞서가면서 한 말이 그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 마라, 이번 일로 기죽을 거 없다. 누구나 이 바닥에 들어오면 죽을 고비 서너 번씩은 다 넘기니께, 이번에 한번 지나갔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여기 있는 동료들이 널 죽게 안 놔둘 끼다, 그러니 저번 일이 무섭더라도 내만 믿고, 여기 있는 이 동료들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그러니 저번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한잔해라!"
"네"
"그라고 우리는 소방서에 출근하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불과 싸우러 들어가지만 결국 남는 것은 이 술처럼 씁쓸한 것뿐이데이, 하지만 그게 또 인생의 묘미 아니겐나?"
나는 그가 따라주는 몬도가네식 장어 쓸개주를 다시 한잔 들이켰다. 타고난 소방관 스타일에다 호탕함에선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그도 마음 한구석은 이렇게 따뜻한 사나이 었다. 그 회식 이후로 나는 그날의 일을 잊고 다시 소방차에 올랐다. 힘들고 위험한 순간이라도 믿고 따라갈 팀장님이 있고 날 도와줄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다. 혼자라면 힘들고 위험하겠지만 그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언 소방서 생활 23년 차에 접어들었다. 오늘같이 볕이 좋은 날이면 몇 년 전에 퇴직하신 그 팀장님을 모시고 그때 갔던 장어집에 찾아가 같이 장어 쓸개주를 한잔 하며 지나간 이야기들을 한번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