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23)
항상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반대말'개념을 생각하면 되는데, 높다의 반대말은 낮다, 빠르다의 반대말을 느리다, 크다의 반대말은 작다와 같이 두 개의 낱말이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방관에게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반대말은 바로 '신속'과 '안전'이다. 소방관의 업무에 있어 '신속하면서 안전하게'라는 말은 도달하기 어려운 높은 산처럼 느껴진다. 소방차를 운전해서 화재현장에 가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게 가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신속하게 가려면 여러 교통신호를 위반해야 하고 그러자면 사고의 확률이 높아지면서 안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그리고 안전하게 가려면 신속이란 요소는 일찌감치 제껴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적어도 소방관이라면' 그렇게 해 주길 바란다. 우리의 상관들과 지휘관들이 그렇고 신고자가 그렇고 또 언론인들이 그렇고... 그런 두 개의 모순된 단어에서 진정한 소방관들의 어려움은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이 난 화재현장이나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구조현장이나 생사의 촌각을 다투는 구급현장에서 우리는 그야말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 현장으로 누구보다도 더 빨리 가야 하고 거기서 일어난 문제를 누구보다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다가 정작 자신의 안전은 지키지 못할 때가 많은 것이다. 더 심각하고 급박한 상황일수록 소방관의 안전은 더더욱 담보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늘 '신속하면서도 안전하기를' 소방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그때는 2017년쯤이었던 것 같다. 내가 부산에서 가장 불이 많이 나고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고 소문난 북부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주로 공장지대로 구성된 북부 소방서 관할은 부산 사상구와 북구를 합쳐서 부산에서 가장 넓은 넓은 데다 화학공장과 스티로폼 공장, 폐기물 야적장, 신발 생산업체 등이 즐비해 하루 건너 하루 화재가 난다고 보면 될 정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겨울철이면 공장에서 수시로 대형화재가 발생해서 엿가락처럼 휜 건물 철근 아래에서 -건물은 모두 불타고 철근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 불을 끄느라 날밤을 깐 날-밤을 꼬박 지새운 날-도 부지기수였다.
어찌 되었건 그러다 보니 그 시절 우리의 관심사는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어떻게 하면 화재현장에 '빨리'가서 화재를 '빨리' 끄느냐 하는 것이었다. 신고를 받고 빨리 출동하면 아직 연기만 나고 있을 때 진입해서 간단히 진압할 화재도 어물쩡 거리다 보면 불이 완전히 돌아서-건물 전체로 연소확대가 되어- 이튿날, 다음날이 되어도 완전히 꺼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물쩡거린다는 것은 결국 차가 막혀서 화재 현장에 빨리 도착하지 못한 것인데 그래서 소방차를 운전하는 대원은 머릿속에 지도를 넣어 다니며 가장 최단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최단경로를 연구하곤 했다. 우리 화재진압대원들도 어떻게 하면 차 안에서 빨리 소방복으로 갈아입고 공기호흡기를 메고 화재가 난 화점까지 호스를 빨리 끌고 갈까를 연구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동료들과 식사를 마치고 체력단련 겸 해서 탁구를 한판 치고 있던 오후 2시쯤이었다. 내가 막 스카이 서브를 넣으려고 공을 높이 던져 올렸을 때 비상벨이 울렸다.
우리는 더 들어볼 여지도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탁구채를 집어던지고 아래층 차고로 내려가 소방차에 올라탔다. 오늘은 부디 불이 돌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 현장에 도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재빠르게 소방복을 입었다. 거대한 소방차가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으면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우리의 고막을 강타했다. 하지만 왕복 8차선 도로에서 양보를 받긴 쉽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는 차와 충돌이라도 한다면 현장에 가기도 전에 우리의 작업은 거기서 끝나고 마는 것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신호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겨우 신호가 바뀌고 우리 소방차는 다시 출발했다. 오후 2시, 그 시간이라면 공장에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고도 빨랐을 것이고 공장 직원들이 초기진화를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아직 불이 완전히 돌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일단 우리에게 승산이 있는 것이었다. 화재 초기라면 빨리 호스를 깔아 화점에 방수-물을 쏨-를 하기만 하면 불은 쉽사리 꺼질 것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모퉁이를 도는 순간, 나의 이런 기대는 완전히 깨졌다.
눈앞에 거대한 불길이 한 작은 공장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공장 안에 가스통이나 위험물이 있는지 연신 '쾅!, 쾅!' 터지는 소리도 났다. 화학공장이라 그런지 불이 나고 몇 분 안돼서 건물 전체로 연소확대가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공장 입구 50m 전부터 양쪽으로 어디선가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소위 말하는 '불구경'을 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 화재가 난 공장과 우리 소방차를 찍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큰 불이 난 공장만큼이나 우리를 긴장하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신속'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소방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스를 전개하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내뿜는 뜨거운 열기 탓에 화점에 다가서기가 쉽지 않았다. 공장 전방 5미터에서 65mm 대량 호스를 멈췄다. 더 이상 들어가면 뜨거운 열기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팀장님은 무전기에 대고 고함을 치셨다. 그 말과 함께 소방차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소방호스를 타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나와 팀장님은 뒷다리에다 잔뜩 힘을 주고 버텼다. 65mm 대량 호스의 수압은 상당히 세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서 버티기가 힘들 정도다. 자칫 중심을 잃어 소방호스를 놓친다면 강력한 수압으로 날뛰는 관창-호스 앞부분에 물을 쏘거나 잠그게 되어 있는 장치-에 맞아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서 호스를 잡고 있어야 할 막내가 안보였다.
내 입에서는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소방서에 들어온 지 이제 6개월밖에 안 된 막내대원이 멋모르고 작은 45mm 호스를 하나 들고 혼자서 불이 난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2인 1조로 행동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왔지만 대량 관창은 어차피 나와 팀장님이 잡고 있으니 자신은 혼자 안으로 진입해서 불을 꺼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하기야 그때 화재 진압대원은 나와 팀장님, 막내까지 딱 3명뿐이었다.- 하지만 소방관의 2인 1조 행동원칙은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금과옥조였다. 단독으로 행동하면 위험한 순간이 올 때 구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2인 1조로 진입에서부터 철수까지 함께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본 중의 기본도 알지 못한 것인지 막내는 당당하게 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불속으로 들어가면 자신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라고 고함을 쳐 봤자 화재현장의 각종 소음으로 들리지도 않을 테고 난 막내를 따라 들어가 그를 끄집어내 오려고 하다 막 물이 차오르는 호스를 보았다. 만약 여기서 내가 빠졌다간 팀장님 혼자 대량 호스의 압력을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 그대로 있자니 막내가 위험할 것이다. 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쩔 수 없이 대량 관창으로 막내를 겨누었다. 막내에게 엄호 방수-불 속으로 들어가는 대원을 향해 뒤에서 물을 쏘아 열기를 식혀주는 것-를 한다면 적어도 중상은 입지 않을 것이다. 난 대량 관창으로 공장 안으로 물을 쏘면서 7(공장):3(막내)의 비율로 막내를 지원 사격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불도 좀 사그러 들고 나머지 주위의 다른 분대들도 현장에 속속 도착했다. 공장에 불은 완전히 돌았지만 공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다른 건물로의 연소확대를 저지하고 화재를 완전히 진화한 후, 마무리 작업까지 모두 마칠 수가 있었다.
막내는 화재가 다 진압되고 난 후 마치 자기가 다 끈 것마냥 의기양양했지만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화재를 진압할 때는 몰랐는데 장갑을 벗고 보니 양손이 모두 화상을 입어 화상전문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에서 엄호 방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손뿐만 아니라 온몸에 전신화상을 입었을 수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따끔하게 질책을 하고 싶었지만 병문안 간 병원에서 양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막내를 보니 그전에 내가 입었던 손가락 부상도 생각나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한다고 그리 깊이 들어갔니? 혼자서..."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빨리 끄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다!, 막내 역시 그때 신속과 안전이라는 영원한 두 가지 소방관의 명제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몰려들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빨리 불은 꺼야 할 것 같고, 그러자니 자신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45mm 호스를 가지고 들어가 불과 맞닥뜨린 것이다. 항상 2인 1조로 행동하라는 소방관의 강령을 무시하고서 말이다. 조금 더 경험이 쌓였더라면 신속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더욱 우선시했을 텐데-불을 아무리 신속하게 꺼도 소방관의 인명 피해가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작전 실패인 것이다.- 급박한 화재현장에서 그런 것을 판단하기엔 막내는 아직 너무 어렸다. 우리가 평소에 그런 우선순위에 대해 먼저 교육을 했어야 하는데 선임으로서 막내 대원이 그런 판단을 하게 했다는 데 대해서 나의 책임이 가장 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막내에게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 간단하게 주의를 주고 붕대로 칭칭 감은 막내의 손을 붙잡고 빨리 쾌유하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막내의 병문안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난 다시 양립하기 어려운 소방관의 두 명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신속과 안전, 과연 무엇이 우선일까? 과거에는 신속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면 최근에는 점점 더 대원의 안전 쪽으로 무게추가 기우는 느낌이다. 경기도의 대형 창고 화재와 강원도의 대형산불 현장에서도 소방 대원의 안전은 더욱 중요한 부분으로 다가온다. 많은 경제적 손실과 자연의 훼손이 있더라도 그보다 먼저 소방관의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급박한 화재현장에 놓이게 되면 나 역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화재가 난 건물 안에 아이가 고립되어 있다든지, 수백 년 가꾸어 놓은 금강송 군락지로 산불이 번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소방관인 이상, 자신의 안전보다도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뛰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도 영원한 소방관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건물 안에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고, 금강송 군락지로 향하던 불길이 풍향의 변화로 인해 다른 방향으로 틀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시에 결정한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기에 그런 선택의 순간이 만약 나에게 온다면 정확한 판단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살리고 나의 안전도 지키는 그런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나는 오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소방복을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