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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l 08. 2022

소방관의 정신건강(6)-어미닭과 병아리

소방관의 살아간다는 것(25)

(사진출처-네이버 블로그 '풍류 천하')


   지난 회(소방관의 정신건강(5)-자살)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처음 소방서에 들어온 후 6개월간은 내 인생에서 고난의 시기였다. 회식 중간(?)에 집에 가버린 이후, 난 첫 팀장에게 찍혀(?) 무엇 하나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하려고 하면 그걸 왜 하느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물어보고 해야지, 하는 잔소리 삼종세트가 내 귀의 고막에 와서 박혔던 것이다. 예를 들면 소방서에서 하는 훈련 중에 '로프 매듭법'이란 것이 있다.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긴급한 상황이 오면 휴대용 로프로 매듭을 지어 자신과 요구조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신속히 구조하기 위해서 로프매듭법을 평소에 연습하는 것인데 소방관들의 훈련 중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내 첫 팀장은 그 로프매듭법에 꽂혀 있었는데 소방관이라면 '모름지기' 로프매듭법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로프매듭법을 강조했었는데 문제는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그걸 잘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훈련시간에 자신이 대충 시범을 보이고 나서 내가 한번 해 보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로프를 뺏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제대로 교육도 못 받고 팀장에게 닥달만 당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https://youtu.be/VDTJd3OyiNs

(라때 이런 게 있었으면 로프 천재가 되었을 텐데~ㅠㅠ)


   지금은 소방서에 개인 로프도 많고 무엇보다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소방관들의 로프 매듭법은 물론, 모든 훈련들이 동영상으로 자세히 나와 있다. 그것만 보고 따라 해도 웬만한 훈련은 모두 마스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신입이던 20년 전엔 그렇지 않았다. 연습할 만한 개인 로프도 몇 개 없었고 모든 훈련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로 시범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도제식(徒第式-옛날의 도제 관계와 같이 제자가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지식과 기능을 배우는 방법이나 방식-음 어학사전-)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선임자에게 밉보이면 어디 가서 배울 수도 없었다. 그랬는데 팀의 리더인 팀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버리다니... 그래서인지 누구도 나에게 팀장 앞에서 로프매듭을 제대로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다. 정말로 난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람으로 인한 문제는 결국 사람으로 풀어야 했다. 나를 눈엣가시처럼 보던 팀장과는 달리 나에게 다가와 자상하게 로프매듭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야간에 대원들 모두가 대기실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로프를 가지고 혼자서 끙끙대고 있는 나에게 와서 로프매듭을 빠르고 쉽게 하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바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7)-건물 붕괴에서 언급했던 고 김영식 소방관이었다. 


https://brunch.co.kr/@muyal/58


https://news.v.daum.net/v/20120802134714450


   그분은 2012년 공장 화재를 진압하다 건물 붕괴로 인해 순직하셨지만 2000년 나의 햇병아리 소방관 시절을 지켜주셨던 어미닭과 같은 존재였다. 독수리(?) 같은 팀장의 눈을 피해 그가 잠든 틈을 타서 로프 매듭과 같이 소방서에서 꼭 알아야 할 이것저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다행히 그분 덕분에 다음날 독수리 팀장이 


   "이 봐, 신입!, 어제 로프 매듭은 연습했나?"


   라고 물어볼 때, 나는 자신 있게 


   "네, 그렇습니다!"


   를 외치며 그의 앞에서 멋지게 로프매듭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 녀석이 이걸 어떻게 했지?'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독수리 팀장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https://youtu.be/1jtTS74Vgtg

(소방호스 똑바로 던지는 법-이런 건 아무한테나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잘 못하면 깨졌다~ㅋ)


   그 외에도 팀장이 그토록 나를 빠꾸(라고 쓰고 재작성이라고 읽는다.)시켰던 공문 생산 방법, 화재 현장에서 호스 똑바로 굴리는 방법, 지하소화전 뚜껑 여는 방법 등... 그 당시만 해도 소방서에서는 신입들에게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알아서 잘(?)하라며 던져주는 일들이 많았다. 눈치껏, 요령껏, 잘하라는 것 같았는데 자신의 사수가 애살있게 가르쳐 주지 않으면 깨지면서(?) 배워야 하는 일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 김영식 선배님을 만나게 된 건 내 소방생활에서 행운이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이런저런 일들로 발톱을 드러내는 독수리 팀장에게서 내 여린 몸은 성할 날이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비번날엔 떡집(?)을 운영하시면서도 근무 날에는 소방서 직원 중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움직이셨다. 그리고 모든 직원들이 다 휴식을 취하는 야간 시간에도 나 혼자 있는 사무실에 내려와 나에게 뭐 힘든 건 없냐고 물어보셨던 것이다. 아마도 낮에 독수리 팀장에게 쉴 새없이 쪼이는(?) 어린 햇병아리가 안쓰러워서였을 것이다. 그러면 난 낮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그때는 24시간 맞교대였다.) 그러면 그분은 소방서에서 어려운 일을 쉽게 해결하는 노하우(?)를 내게 전수했던 것이다. 그분 덕분에 난 6개월간의 시보기간을 무사히 마쳤고 6개월이 지난 후, 인사이동에서 독수리 팀장은 발톱을 접고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갔던 것이다.-그 뒤에 온 팀장님은 다행히도(?) 일반 상식을 가진 평범한 소방관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상적인 소방관 생활을 이어갈 수가 있었다.


   그런 나의 소방서 멘토이신 분이 화재진압을 하시다가 건물 붕괴로 순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한달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꺼이꺼이 울음을 토해내었지만 그분을 다시 뵐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하늘은 좋은 사람을 먼저 데려간다는 것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독한 사람일수록 오래 산다지 않은가!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그분은 울고 있는 나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십여 년 전 그날 밤처럼 내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괜찮아, 무스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요렇게 하면 돼, 요렇게만~ 이제 한 번 해 봐!, 오, 그래, 잘한다!"  


   사람과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나를 도와주는 분도 있다. 이 간단한 진리를 나는 소방서 시보 시절에 두 사람의 고참 소방관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도와주셨던 그분의 응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어렵다면 어렵고, 힘들다면 힘든 소방서 생활을 다른 소방관 동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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