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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방관아빠 무스 Jul 31. 2022

소방관의 정신건강(7)-민원인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26)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소방관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원인 중 첫째는 생사를 오가는 화재, 구조, 구급현장에서 겪게 되는 몸과 마음의 트라우마, 둘째는 신고자와 민원인의 민원제기 및 불만 표출, 셋째는 상사와 동료 간의 갈등과 불화이다. 오늘은 두 번째 원인인 신고자와 민원인의 민원제기 및 불만 표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그때는 2012년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내가 부산 북부소방서에서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날은 오늘처럼 무척 더운 날이었다. 아침부터 쉴 새 없는 출동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늦은 오후였다. 이제 한 30분 후면 야간 교대자가 출근하기 때문에 그들이 오면 인수인계를 해주고 퇴근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런 시점에서 출동벨이 울렸다.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을 빠져나가자 소방서 차고의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 올라왔다. 무더운 열기 속에서 하루 종일 도로를 누볐던 구급차의 타이어가 달궈진 아스팔트에 녹았는지 고무 타이어 냄새까지 진동했다. 나와 진반장은 재빠르게 구급차에 올라 에어컨을 틀고 무전을 들어보았다. 


   "장소는 L마트 내에 있는 ***의원, 현재 환자 복통으로 상태가 안 좋아 다른 병원으로 전원 요망!"


   "어?, 반장님, 병원 간 이송은 우리 구급차로 못하게 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진반장이 119 구급차의 병원 간 이송에 관해 나에게 물어보았다. 법률상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이송은 119구급차가 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맞다. 119구급차는 당장 도움이 필요한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료진 등 전문인력이 있는 병원에서 병원으로의 이송은 그 병원 소속의 구급차나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가보자!"


   난 출동을 망설이는 진반장을 설득하며 말했다. 우리의 일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일을 법이나 원칙만 가지고 할 수는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유도리 -편이나 경우에 따라서 여유를 가지고 신축성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다음 국어사전 참조)- 있게 해야 한다. 의원급 병원에서는 구급차가 없을 수도 있고 또, 전문인력이 다른 응급환자를 보느라 그 응급환자의 이송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현장에 가서 현장의 상황을 살피고 이송 가부를 판단하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이 온 데다 가지 않아도 될 곳을 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진반장의 얼굴이 약간 찡그려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동 지령서를 따라 도착한 곳은 한 대형 마트 앞이었다. 그 의원은 마트 건물 6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기도 전에 난관에 봉착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마트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주들것(메인 스트레쳐)을 끌고 사람들로 가득 찬, 길고 긴 마트 무빙워크를 돌아 6층까지 가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서 1층엔 서지도 않고 바로 2,3,4층과 지하층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기다릴 수는 없었다. 환자가 복통이고 하니 간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고 내려올 수 있으면 데리고 내려오는 게 시간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구급대원입니다. 119 신고하셨죠?"


   "네에~"


   "지금 환자상태는 어떻습니까?"


   "왜 그러시는데요?"


   "저희가 6층까지 올라가려니 사람들이 많아서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혹시 환자 상태가 괜찮다면 1층까지 데리고 내려오실 수 있으신가요?"


   "네?, 뭐라구요?"


   전화를 받은 한 간호사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을 멈췄다. 뭔가 쌔(?)한 느낌이 들었다.


   "환자가 아픈데 1층까지 내려오라구요?"


   "걷기가 힘드신가요?, 그럼 저희가 올라가죠."


   '우리가 현장에 가기도 전에 전화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이런 사람들에겐 오래 말 섞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주 들것을 끌고 무빙워크에 위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6층에 있는 의원으로 올라갔다. 예상대로 환자의 상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복통이 있을 뿐, 혼자서 걸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의원의 퇴근시간이었다. 의사는 벌써 퇴근한 듯 자리에 없었고 입이 불퉁하게 튀어나온 간호사는 '왜 이제야 왔냐?'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자기도 퇴근시간인데 복통이 있는 환자가 와서 배가 아프다며 이것저것 요구를 하니 다른 병원으로 전원을 시켜 버리려고 하는데 구급대원은 빨리 오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 1층으로 내려오라고 하니 짜증이 난 것이었다. 


   나와 진반장은 별 말을 하지 않고 환자를 부축했다. 그리고 이송기록부에 사인을 해 달라고 하자 그 간호사는 자신의 짜증을 거기다 휘갈겨 써버렸다. 그리고 내가 병원 간 이송은 의료진이 동승해야 한다고 하자 얼굴빛이 달라졌다. 빨리 퇴근해야 하는데 퇴근시간이 더 늦어지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녀는 의사도 퇴근하고 없고 자신은 의료인이 아니라서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도 간호조무사인 듯했다.) 그런 대답을 들으니 난 더욱 황당했지만 복통을 일으킨 환자의 상태가 진짜로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단 일단 이송을 먼저 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왕 왔으니 이송을 하겠지만 앞으로는 병원 간 이송은 의료진이 동승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환자를 데리고 내려가 구급차로 태웠다. 그리고 환자를 근처에 있는 D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이송하고 나서 센터로 돌아오니 정작 우리의 퇴근시간에서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지만 이런 일은 그저 일상 다반사였기 때문에 교대근무자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퇴근을 했다. 나와 진반장은 그렇게 힘들고 뜨거운 하루가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센터장님이 우리를 불렀다. 센터장실로 들어가자 대뜸


   "너거 어제 무슨 일 있었나?"


    하고 물었다. 우리는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머리만 굴리고 있었는데


    "어제 너거가 이송거부 했다매?"


    "네?"


    "그 의원 간호산지 간호조무산지 그 남자 친구가 소방본부 홈페이지에다가 민원을 올렸데이, 너거가 이송거부 했다고!"


    "네?"


    우리는 둘 다 눈이 둥그레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거 함 봐바라, 너거가 첨에는 올라오지도 않고 환자를 1층까지 데리고 내려오라고 하고 나중에는 의료진이 없어서 이송을 할 수 없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이렇게 안 써있나!, 이걸 보고 시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노?"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기도 답답했는지 센터장실 안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우리도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빨리 환자를 이송하고자 데리고 내려와 줄 수 없냐고 물어보았고 현행 규정대로 병원 간 전원은 의료진이 동승해야 한다고 안내했을 뿐인데... 그리고 의료진이 없더라도 환자의 안위를 생각해서 퇴근시간까지 넘겨가며 힘들게 이송을 해 주었건만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치다니...


   우리는 당시 상황과 우리가 한 일을 자세히 설명했지만 센터장님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너거 얘길 들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너거가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 글 좀 빨리 내려달라고 부탁해라, 본부장님 이하 모두 이 글 때문에 아침에 발칵 뒤집혔데이, 이런 글이 여기에 오래 남아 있으면 얼마나 남사스럽겠노!"


    그는 담배를 뻑뻑 피면서 우리를 달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했다. 우리도 개인대 개인으로 이런 일이 생겼으면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려보고 싶었지만 소방조직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서 조직에 누가 될까 봐 그냥 사과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반장과 나는 그 간호조무사에게 전화를 했고 어제의 이송 도중에 불미스러운 점이 있어서 미안하다고, 더운 날씨에 서로 오해가 있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 테니까 글을 좀 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전혀 사과나 부탁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조직을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 그녀는 알았다고, 자기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글을 내리라고 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후, 홈페이지에서 그 민원글은 사라졌고 이렇게 해서 그날의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소방서에선 나와 진반장에게 '불문 경고'라는 징계를 내린 것이다. 주의나 견책처럼 가벼운 징계에 해당하지만 일년동안 포상이 금지되는 징계였다. 나로서는 정말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환자의 안위를 먼저 생각해서 한 일이었지만 민원인의 항의를 받고, 또 우리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소방조직을 생각해서 그 민원인에게 사과까지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징계라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구급대원으로서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구급현장에 가면 환자를 우선시하기보단 민원인과 신고자를 먼저 살피게 된 것이다. 환자의 편에 서서 그 안위를 생각하면서도 법과 규정에 맞지 않는 일은 될수록 피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에서도 병원 간 이송이 우리가 할 필요 없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더라면 진반장의 말대로 그 의원엔 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이 사달이 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법과 규정보다 환자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행동한 일이었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 발목을 잡았던 것다. -처음에 진반장의 질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가서 이런 사달이 난 것 같아 한동안 진반장을 보기가 미안했다.-


   환자의 안위를 우선시할까, 법과 규정을 우선시할까, 신참 구급대원일 때는 당연히 전자가 우선이었지만 고참이 되어 갈수록 후자를 중요시하면서 전자도 지키는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트라우마라면 트라우마일까? 그러다 보니 구급활동이 점점 소극적으로 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를 무사히 병원까지 이송해야 하지만 그 와중에 민원 때문에 내가 다쳐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신고자나 환자, 민원인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해야 하기 때문에 응급처치나 기타 제반 활동들이 점점 더 소극적으로 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 우리 소방조직의 간부들이 구급현장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민원을 무마하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했다. 적어도 일선에서 일하는 구급대원의 편에 서서-아니, 최소한 중립의 위치만 지키더라도- 민원인과의 마찰을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중재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최소한 아직도 환자나 민원인들에게 매 맞는 구급대원들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라때'는 이미 지나갔으니 이제 의미가 없다. 몇 년 전 소방조직이 국가직으로 되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도 들렸다. 하지만 일선에서 일하는 구급대원들이 느끼는 현재의 소방조직은 어떨까? 지금이라도 현장에서 열심히 더위와 싸우고, 환자의 안위를 위해 악성 민원인과 싸우는 후배 구급대원들에게 부디 그들의 편에 서서 옳은 건 옳다고 해 주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해 줄 수 있는, (시원한 냉수와 같은), 진정 함께 하는 소방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본다. 


(사진 출처-다음 카페 목포 찬찬이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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