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방관아빠 무스 Nov 16. 2021

극한직업-119 구급대원(1)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13)


   요즘 이재명 대선 후보의 배우자를 이송한 구급대원에 관한 뉴스로 떠들썩하다. 경기도의 한 소방서에서 구급대원이 낙상사고로 인해 부상을 입은 이재명 대선 후보의 배우자를 이송하고 나서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아 비번날 다시 소방서로 불려 들어와 조사와 질책(?)을 받았다는 뉴스가 뜨고 있는 것이다.


https://www.dailian.co.kr/news/view/1052494/?sc=Daum


   이런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구급대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구급대원 시절에는 정말 정신없이 일했었다. 얼마나 정신없이 일했던지 구급대원으로 일했던 한 7년 정도의 기간이 3~4년 정도로밖에 안 느껴진다. 그때는 24시간 2교대 근무였는데(지금은 3교대 근무다.) 하루 24시간 근무하면 주간에는 10여 건, 야간에는 5건 정도 해서 총 15건 정도의 출동을 하게 됐었다. 말이 15건이지, 그 정도 하려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출동과 귀소(소방서로 돌아옴)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귀소와 출동 사이에는 이송한 환자의 상태와 병원 등의 데이터를 소방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한다. 환자를 이송하느라 오염된 구급차와 구급장비를 세척, 소독하는 것도 구급대원의 몫이다. 그리고 가끔 일어나는 민원(이송한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불만족의 피드백이 돌아올 때도 있다.)에도 대처해야 한다. 때로는 비번날에도 경찰서 등 관계기관에 가서 목격자로서 현장 상황을 증언(?) 해야 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쉴 틈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환자를 별일 없이 병원에 이송시켜 주고 오면 다행인데 그런 일은 많지 않았다. 야간에 출동해 보면 주취자와 만나서 애를 먹는 경우도 있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데도 이송할 적절한 병원이 없어 애간장을 태울 때도 많았다. 지금은 대부분 119 구급차에 3명의 대원이 탑승해서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일할 때만 해도 보통 2명의 대원이 모든 일을 처리했었다. 그러니까 운전하는 대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한 명의 구급대원이 구급차 안에서 환자 응급처치와 병원 선정, 그리고 취객과의 실랑이까지 혼자서 다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그 와중에서 구급대원 폭행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특히나 긴급을 요할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구급차는 빠르게 달려야 하고 그러니 구급차 안은 더욱더 흔들린다.) 응급처치를 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환자의 협조가 없으면 붕대 하나 제대로 감기도 어렵다. 그러나 환자의 협조를 못 받을 때가 많다. 주취자와 중상자는 협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어느 환자든 기본적으로 혈압, 혈당, 심전도, 산소포화도 등 생체징후를 파악해야 하고 그 환자에 맞는 응급처치를 시행해야 한다. 또한 그 상황에서 환자의 인적사항도 파악해야 한다.(병원에 도착하면 그걸 먼저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나 주취자는 자기 인적 사항도 말하기 어렵다. 몇 번이나 물어서 어렵사리 그걸 파악하고(이 과정에서 주취자와 실랑이나 폭행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빨리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고 쓸데없이 뭘 그리 물어보냐는 식이다.) 나서 응급처치도 해놓고 나면 또 병원 선정이 문제다. 간단한 열상(찢어지거나 긁힌 상처)이나 만성질환자라면 근처 병원이나 그 환자가 다니던 병원에 가면 된다. 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과다출혈이 있다거나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라거나 독극물을 흡입했을 경우에는 대학병원급의 대형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구급차 안에서 전화를 걸어보면 수용불가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의가 부재중이라거나, CT나 MRI 등 의료 기계가 점검, 수리 중이라거나, 가장 흔한 것이 병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까운 다른 대형병원에 문의를 해 보지만 거기도 사정은 매한가지인 경우가 많다.(아마도 코로나 시절인 요즘은 병원 선정이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고열을 동반한 환자라면 선택지는 더욱 줄어든다.) 그러면 병상이 남아 있거나 가능한 병원을 찾아서 장거리 운전을 감행해야 한다.(뒷좌석의 환자는 몇 분이 다급한데 말이다. 그래서 구급대원도 덩달아 다급해진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려다 교통사고가 나는 확률도 높아진다.)


   이렇게 구급대원은 구급차 안에서 분주하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빨리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구급차 안에서 응급처치를 해 놓고도 환자의 혈압, 심전도, 산소포화도 등 생체징후가 나빠지면 자기가 한 응급처치가 잘못되었나 싶어 다른 처치를 시행할 때도 많다. 그러니 구급차에 같이 탄 보호자가 누군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더구나 새벽 한 시에 모자와 마스크까지 쓴 대통령 후보를  보고 '아, 이재명 후보님이시네요, 어쩌다가...' 하고 안부를 물어보기는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밤새 이렇게 고생한 구급대원을 퇴근하고 나서도 어제의 VIP 이송 보고를 누락했다는 이유로 다시 소방서에 불러들여 사건 개요를 조사하고 질책했다고 하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같은 소방인의 한 사람으로서, 선배 구급대원으로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구급차 속에서 움직이기도 불편한 방호복을 입고 환자의 상태 파악과 응급처치, 병원 선정과 주취자의 폭력에도 대응해야 하고 또한 그 보호자의 사회적 지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우리의 구급대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시절에 국민들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 오늘도 달리고 있는 젊은 그들에게 다시 한번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이전 02화 다시 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