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20)
며칠 전에, 태어나서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 우리 막둥이, 이제는 주위 사물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늘어가고 그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혹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그런 걸까?~^^;;)
이제는 걸음마도 완벽해져서 집 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아래층에 발 망치 소리로 들릴까 봐, 말리는 내가 더 미안할 정도~) 언니들이 자기네들 방에서 뭐하나 궁금할 때는 까치발을 하고 방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여는 스킬까지 터득했다. 게다가 나하고만 있을 때면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유튜브를 틀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조르는 방법은 다양한데 내 핸드폰을 발견하면 마구 패턴을 풀다가 안된다며 아쉬운 표정을 짓기도 하고, 내 손을 잡고 컴퓨터 앞으로 가서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기도 한다. -이런 건 언제 배웠니?~^^;;) 그러면 한편으론 귀엽고 한편으론 애처롭기도 해서 절대 보여주지 말란 아내의 말을 잊어버리고 난 또 유튜브를 클릭해 이제는 막둥이의 둘도 없는 친구가 돼버린 콩순이와 각종 캐릭터들을 보여주기도 한다.(옛날에 이런 거 없을 땐 애들을 어찌 키웠나 하면서~ㅠㅠ)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일은 동화책을 가져와서 내 앞에 앉아 읽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막둥이는 내가 책을 읽으면 그 내용도, 뜻도 모를 텐데 가만히 앉아서 내가 책을 읽는 것을 듣고, 책장을 넘기면 나오는 그림을 눈을 빛내며 바라본다는 것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책을 읽어주면 내가 읽기도 전에 자기가 책장을 넘기려고 해서 곤혹스러웠던 것과는 정말 한 차원 발전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책에서 개구리가 나오면 '깨굴!'하고 개구리 표정?을 짓고 나비가 나오면 '나비야, 나비야~'하며 두 팔을 펄럭거린다. 쬐끄만 게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많이 배웠구나~하며 기특한 생각이 든다.
어제는 날씨도 좋고 해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로 애를 데리고 나갔다. 철쭉이 만발한 나무 밑으로 데려갔더니 '꽃!, 꽃!' 하며 아는 체를 했다. 그래서 철쭉꽃을 쓰다듬으며 '예쁘지?' 했더니 막둥이는 놀랍게도 '앗 뜨!, 앗 뜨!' 하는 게 아닌가? 그 말은 우리가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 있을 때 막둥이가 가까이 오면 뜨겁다는 뜻으로 가르쳐준 말이었다. 막둥이는 자기 입에 좀 뜨거운 음식이 들어왔을 때나,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져 있을 때 '앗 뜨!, 앗 뜨!' 하면서 우리가 가르쳐준 그 말을 써먹곤 했다. 그런데 철쭉이 붉은빛이어서 그랬을까? 그걸 보며 '앗 뜨!'를 연발했다.(그걸 보니 내가 너무 애를 어디 데리고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만 키워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꽃은 뜨거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꽃을 하나 꺾어서 냄새 맡는 시늉을 하며 '아~향긋해!'하고 말하기도 하고 '예쁘다'하고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그러자 막둥이도 꽃을 만지면서 '예쁘다' 비슷한 말을 하고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향긋해~'하며 내 흉내를 냈다.(휴, 다행이다, 막둥이가 꽃을 계속 뜨거운 걸로 알았으면 어쩔 뻔했나?~)
그리고 놀이터를 둘러보니 지극히? 당연하게도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포메라니안 같았는데 막둥이는 그림책에서 개를 많이 봤는지 -막둥이는 다른 그 맘때 애들과 마찬가지로 개에 관심이 많다, 아니 무한히 많다.- 그 개를 보면서 '멍멍!, 멍멍!'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실제로 개를 만져본 일은 없는 것 같아 슬며시 그 개에게로 다가갔다. 개도 개 주인도 온순해 보였다. 나는 먼저 그 개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개 좀 만져봐도 될까요?"
개 주인은 많아야 이십 대의 여성이었다. 그 또래 여자들이 보통 그렇듯이 그녀도 눈치 빠름과 배려심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자기 개에게로 쏠려있는 우리 애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더니
"네, 그럼요, 얘 이름은 '두치'라고 해요."
하고 웃으며 개를 내 앞으로 오게 했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tv에 나온 '개 박사' 강형욱 씨의 말을 생각하며 손등을 먼저 개에게 내보였다. 개가 내 손등을 냄새 맡고 나자 난 손바닥으로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치 이쁘네, 착하다!~"
하며 개를 쓰다듬으며 막둥이의 손을 잡아당겨 개를 쓰다듬게 했다. 하지만 막둥이는 잔뜩 얼어서 자기 손을 개 쪽으로 뻗지도 못했다. 책에서 보거나 개 인형을 쓰다듬은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살아있는 개를 쓰다듬으려고 하니 겁이 났나 보다. 반들거리는 털에 손가락을 스친 것이 전부였다. 너무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이쯤 해서 마치기로 했다. 막둥이는 그렇게 만져보고 싶어 했던 개였지만 막상 그 앞에 서니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고 다시 개가 가니 아쉬운지 몇 걸음을 뒤따라 걸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의 눈길을 잡아끄는 또 다른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놀이터 한구석에 서 있는 세발자전거였다.
막둥이는 어디선가 누군가 자전거를 타는 것을 봤는지 자기도 타겠다며 그 앞에서 징징대는 것이었다.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큰 언니야가 타는 것이라고 타일러 봤지만 소용없었다. 그 앞에서 주저앉아 생떼를 쓸 것 같았다. 주위에 주인으로 보이는 아이도 없고 해서 슬쩍 막둥이를 들어 자전거 안장에 앉혀보았다. 그랬는데 녀석이 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자기 손이 닿지도 않을 자전거 핸들을 붙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녀석의 몸을 한 손으론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론 자전거 핸들을 잡고 놀이터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면 끝일 줄 알았다. 그리고 막둥이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막둥이는 자전거 바구니 안에 있는 축구공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공을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내가 바구니 안에 있는 공을 끄집어 내서 -주인이 없기에 망정이지~^^;;- 녀석과 잠시 공놀이를 했다. 그리고 공을 바구니에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막둥이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자전거에 태우고 놀이터를 한 바퀴 돌고, 공을 꺼내서 공놀이를 하고 바구니에 집어넣고, 막둥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놀이터를 한 바퀴.... 무한반복....
따스한 4월의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려는 순간, 나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멀리서 자기 자전거를 지켜보고 있던 자전거 주인이 슬며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대여섯 살짜리 남자애와 그 엄마였다. 남자애는 우리 주변으로 오더니 소심한 목소리로 '그 자전거 내껀데...'를 중얼거렸다. 아마도 자기 자전거를 우리가 너무 잘 갖고 놀고 있어서 뭔가 잘못된 것을 느꼈나 보다. 애 엄마와도 눈이 마주쳤다. 난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자, 이 자전거 오빠 꺼네, 오빠한테 줘야지..."
하고 막둥이를 안고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다. 그런데 세상에~ 막둥이는 축구공을 끌어안고 놓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집에도 이런 공 많이 있잖아, 집에 가서 아빠랑 공놀이 하자."
하고 애를 구슬리면서 막둥이에게서 공을 빼앗아 남자애 앞으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바로 막둥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그 모습을 보고 곁에 서 있던 한 할머니가-자기 손자를 데리고 놀러 나온 듯- 혀를 끌끌 차며
"우짜겠노~아가!~"
하는 소리가 들렸다. 4월의 햇살 아래 홍당무가 된 얼굴로 나는 발버둥치며 우는 아이를 간신히 안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를 눌렀다. 오는 어린이날엔 유아용 세발자전거를 선물로 꼭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