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21)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금세 무성해져 있는 오월의 나뭇잎들처럼 막둥이의 언어가 하루하루 늘기 시작했다.
한두 달 전만 하더라도 막둥이의 말은 아직 형태가 없는 것이었다. 이게 영어인지, 중국말인지, 일본말인지, 알 수 없었다. -하기야 요새 유튜브를 틀어주면 한국 콘텐츠보다 외국 콘텐츠에 더욱 심취? 하는 우리 막둥이이긴 하다.- 하지만 오월에 들어서자 아이의 말은 전형적인 한국어의 특징을 띠기 시작했다.
"우리 막둥이 무슨 신발 신을까? 공주 신발?"
이것은 집사람이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애를 어린이집 데려다주려고 신발을 신기면서 막둥이에게 물은 말이었다.
"응!, 그거 맞아!"
난 살짝 내 귀를 의심했다. 또박또박한 한국어 발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다섯 글자, 이런 단어들은 다 어디서 배웠을까? 난 분명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첫째와 둘째를 키우면서도 느낀 거지만 막둥이를 키우면서 다시 실감하게 된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 능력은 스펀지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그것과 같다고...
좀 고전적이긴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첫째와 둘째가 말을 깨친 것과 마찬가지로 막둥이에게도 아주 클래식한? 방법을 쓰고 있다. 벽에 이런 그림판?을 붙여놓고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동물과 식물들의 이름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마치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이 모든 동물과 식물들의 이름을 붙이듯이 막둥이는 아주 경건한 자세로? 언니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동식물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한다.
"빠놔나(바나나), 솨과(사과)~ 따기(딸기)~ 포됴(포도)~ 규울(귤)~"
몇 가지를 주어 넘기다가 갑자기 막히는 곳에 다다른다. 그러면 언니는 긴가민가 하고 있는 막둥이를 격렬하게 안으면서 그 볼에다 뽀뽀하며 말한다.
"잘했어!, 천재야, 천재~ 우리 막둥이 천재!"
그러면 막둥이의 경건한 표정에서 다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제는 음악과 함께 말을 익힐 차례다.
이제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 언니들이 각종 동요가 나오는 스위치를 누르면 막둥이의 댄쑤 한판?이 시작된다. 얼마 전부터 웬만한 가사와 리듬에는 익숙해져 절로 율동이 나오는 경지?에 이르른 것이다. 그렇게 율동이 겸비된 막둥이의 재롱을 보고 있자면 뻣뻣하게 굳어있던 내 어깨도 어느덧 들썩거리고 있다.
'그래, 바로 이맛이지~!'
하는 탄성이 내 마음 한구석에서 터져 나온다.
이렇게 말을 막 배우는 아기가 있는 집안에는 웃음꽃이 핀다. 아직은 서툰 아기의 발음이 재밌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아니,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그 조그만 입으로 잘 되지 않는 발음을 언니 따라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그 통통한 볼에 입 맞추고 싶어 진다. 앞으로 미운 다섯 살, 미운 일곱 살 등 미운 시리즈가 줄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렇게 걸음마를 막 배우고 말을 막 배우는 두세 살 즈음이 그 아이의 인생에선 가장 귀여운 것 같다.
아기를 키우는 것을 카약을 타고 강을 내려가는 것과 비교를 한다면 지금은 초반, 입구의 급류를 지나 잔잔한 물살이 흐르는 넓은 강으로 접어든 것과도 같다. 앞으로 수없이 많은 폭포와 급류, 바위와 소용돌이를 지나겠지만 지금은 아무 노력이 없어도 카약은 혼자서 평화롭게 강물 위를 떠간다. 카약에 탄 사람에겐 정말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장애물 -각종 미운 시리즈와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졸업, 사춘기, 대입 수능, 군입대, 결혼...- 앞에서 또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시기의 아이의 웃음을 생각하고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앞으로 닥쳐올 막둥이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대비해서 지금은 그 애의 웃음을 좀 더 많이 내 눈 속에 넣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