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로 살아간다는 것(23)
보름전쯤에, 막둥이가 어린이집에서 소방서와 경찰서를 견학했다고 한다.-이런 경우엔 견학이라 해야 하나, 현장체험학습이라 해야 하나?- 그러면서 소방차와 경찰차도 타 보고 소방관과 경찰관 아저씨도 만나본 모양이다. 요즘 내가 바쁜 엄마를 대신해 비번날엔 어린이집에 막둥이를 데리러 가는데, 가면 차를 타고 오는 내내 그 얘기를 며칠간 무한 반복하고 있다.
"삐뽀삐뽀~"
"응 막둥이 소방차 탔어?"
"웅, 이이잉~"
"그리고 경찰차도 탔어?"
"웅, 아저씨!"
"그리고 소방관 아저씨하고 경찰관 아저씨도 만났어?"
"웅, 삐뽀삐뽀!"
"불났어요, 불났어요, 삐뽀삐뽀!, 내가 먼저 가야 해요 삐뽀삐뽀!"
이렇게 우리 부녀는 소방차와 구급차 동요를 부르면서 신나게 길을 내려온다. 아파트 주차장에 다다르면 벌써 다 왔나 싶을 정도로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게 집에 오면 신이 나서 그런지 막둥이는 집에 들어와서도 나랑 손도 잘 씻고 옷도 갈아입고 얌전히 늦게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린다. 그리고 엄마가 오면 밥을 먹고 좀 놀다가 잠이 드는 사이클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동안 그렇게 해서 일까? 그날은 내가 소방서에서 근무하는 날이었는데 집사람에게서 영상통화가 왔다. 좀처럼 영상 통화를 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일까 생각하면서 전화를 받았는데 영상에 나온 얼굴은 집사람이 아니라 울고 있는 막둥이었다. 아빠가 자길 데리러 오지 않는다며 어린이집에서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어린이집 문 앞에서 부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 집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한 거였다.
"아빠 여기 있지? 빨간 옷 입고!, 오늘 아빠 소방서 가는 날이지?, 그래서 막둥이 못 데리러 오지?"
집사람은 내가 소방서에 있는 것을 확인시키고 아이를 달래기로 한 모양이었다. 난 핸드폰으로 소방서 차고에 있는 소방차를 비춰주며 막둥이와 통화를 이어갔다.
"아빠는 오늘 삐뽀삐뽀 소방차 타고 출동해야 해서 막둥이 못 데리러 가요, 엄마하고 조심해서 오세요~"
"삐뽀삐뽀?"
삐뽀삐뽀란 말에 막둥이는 벌써 울음을 뚝 그치고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빨간 옷을 입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눈에는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소방관의 딸답게 벌써 아빠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 아빠가 내일 막둥이 데리러 갈게요, 오늘 엄마랑 코코 냇내 잘하세요.~"
"아빠가 내일 막둥이 데리러 온단다, 아빠~ 내일 꼭 데리러 오세요~ 하자"
집사람의 설득에 막둥이가 마지못해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는 게 보였다. 나는 막둥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얼른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나중에 집사람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렇게 하고 나서는 얌전히 카시트에 앉아 집까지 데리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막둥이가 벌써 소방차와 경찰차를 타 보고 소방관과 경찰관 아저씨를 만나보았다니 이제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를 약간이나마 알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이 나면 소방관 아저씨가 소방차를 타고 불을 끄러 가고, 나쁜 사람 잡으려고 경찰관 아저씨가 경찰차를 타고 간다는, 아주 유아틱하지만 사회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을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여러 사람이 자기 맡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 때문에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아빠가 소방관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유튜브를 틀어주면 여러 직업에 대해 노래하는 이 영상을 자주 보기 시작했다.
우리 막둥이가 그런 사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언젠가 자라서 그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되어 자기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해 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아빠로서 그런 막둥이에게 훌륭한 롤모델이 되어 막둥이가 가는 길을 환히 비추어 줄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