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매일이 똥과의 전쟁이었다.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처음에 신경외과 병동, 그다음엔 재활의학과 병동. 신경외과 병동엔 각종 디스크 수술로 입원한 어르신들이 주로 입원하셨다. 그분들은 매일같이 똥과의 전쟁을 치르고 계셨다.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했을 때는 수술 직후 일주일로 그땐 내 시력도, 기억도 흐릿하고 함께 입원하신 분들 얼굴 하나 기억나지 않지만, 함께 입원했던 두 분의 이 대화만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기’가 있어? 그럼 싸면 되는 거고, 없으면 관장을 하면 하면 되는 거고.”
“그 ‘기’가 좀 있긴 있어.”
“그럼 가야지.”
“그럼 나 지금 간다.”
“그랴.”
난 8년이 지난 지금도 큰일을 보기 전에 과연 지금 ‘기’가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기’가 느껴지면 좀 덜 마려워도 일단 화장실에 가서 시도를 한다.
재활의학과 병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위가 좋지 않은 사람도 재활병동 다인실에 오래 입원해 있으면 비위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안 그럼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게 다 똥과의 전쟁 때문이다. 재활병동에서 똥과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 걷는 것이 불편한 환자들이 그곳에 입원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걷는 게 힘드면 하루 종일 앉거나 누워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활동량이 줄어 화장실에 가는 것이 어려워진다. 혹은 신경학적으로 마비가 되어 아예 볼일을 스스로의 의지로 보는 것이 불가능한 환자들도 있다. 그런 환자들은 대소변을 관장하는 근육들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소변은 정해진 시간에 요도에 관을 넣어서 배출시키고, 대변 역시 정해진 때에 약을 이용해서 배출시켜야 한다. 재활병동 6인실 그 좁은 곳에 같이 서로 얼굴 마주 보고 살면서 누가 볼일을 어떻게 보고, 뭐가 어려운지, 뭐가 힘든지, 뭐가 잘 안 되는지 모르는 게 더 이상하다. 심지어 급할 때는 한 명은 커튼 쳐 놓고 볼일 보고 다른 다섯 명은 밥시간이라 밥 먹는, 그런 상황도 발생하기도 한다. 잘 씻지도 못 하는 병원에서 이게 내 냄샌지 내 옆 냄샌지 저 커튼 속 냄샌지 그냥 다 포기다. 그거 일일이 신경 쓰다간 거기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매일의 연속에서 내 힘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할 수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활동량이 적어 늘 변비에 시달렸다. 어느 날 아침 회진을 돌던 내 주치의 선생님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내 변생활에 대해 읊는 인턴 선생님의 말을 듣더니 ‘도저히 안 되겠으니 장내 엑스레이 검사를 오늘 내로 찍게 하라’는 처방을 내렸고, 그 날 나는 변비가 심하면 장에 똥이 얼마나 차 있는지를 엑스레이를 통해 검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래서 찍게 된 나의 내장 사진은 나의 가장 수치스러운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검은 엑스레이 결과지에는 하얀색으로 나의 내장의 테두리가 찍혀 있었고, 그 안에는 수많은 희끗희끗한 작은 덩어리들이 가득 찬 채로 찍혀있었다. 설마 했으나 그 덩어리들은 나의 똥이었다. 나는 경악을 금지 못했고, 그런 나의 표정을 본 인턴 선생님은 ‘환자분이 그렇게 심한 케이스가 아니’라며 본인도 하루 종일 병원 안에만 있어서 아마 30개는 족히 차 있을 거라고 나름의 위로를 전했다. 아, 내 장에는 45개 정도의 덩어리가 차 있었다.
아무튼, 그 45개의 조그마한 덩어리들이 크게 뭉쳐져야 몸 밖으로 수월하게 나올 수가 있는 건데 그러질 못 하니까 매일이 답답한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변변치 않은 덩어리 몇 개로 만족해야 했고 그것도 안 되는 때에는 변비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때 처방받아서 먹던 변비약은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아직도 주변에서 변비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약을 추천한다. 일단 밤에 그 약을 먹고 자면 12시간 후에는 그 어떤 심각한 변비에서라도 무조건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약이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도 하나 있었다. 그 변비약을 처음 복용한 다음 날이었다. 그 다음 날 오전에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친 듯이 신호가 왔다. 나는 그 변비약을 먹으면 12시간 후에 해방이 되는지도 몰랐고, 그렇게 신호가 갑자기, 강렬하게 오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던 환자였다고 해도 당시의 나는 18세의 여고생이었으며, 나의 물리치료 담당 선생님은 젊은 20대 남자 선생님이었다. 아무래도 30분이라는 물리치료 시간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슬슬 선생님께 힌트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 제가 오늘 속이 너무 안 좋아요.”
“아, 속이 안 좋으세요?”
“네. 토 할 것 같아요.”
“컨디션 많이 안 좋으세요?”
“네. 토할 것 같아서... 화장실 가야 될 수도 있어요... 가야 되면... 말씀드릴게요.”
차마 변비약 때문에 치료받다가 갑자기 신호 오면 화장실 가야 한다고 얘기하기는 너무 민망해서, 속이 안 좋아서 토할 것 같으니 화장실 가야 되면 말씀드리겠노라고 그런 이상한 소리를 했었다. 선생님은 내가 똥 마려워서 그랬다는 걸 아셨을까?
아 수치스럽고 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