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운동화를 신고 끝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꿈을 자주 꾸곤 했다. 그런 꿈을 꾸고 나서 눈을 뜨면 꼭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꿈을 꾸지는 않는다. 어느새 달리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제 가볍게 걷는 것이나 가볍게 달리는 것, 그런 것들이 어떤 느낌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우울해지지는 않는다. 대상 없는 원망도, 후회할 것도 없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후회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나는 끝이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더 이상 달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달리는 법을 멈출 줄 알게 되었다. 달리는 법을 멈출 줄 아는 것은, 일단 멈추고 나니 중요하게 느껴진다. 멈추고 나면 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겨나기 때문이다. 멈출 줄 알기 때문에, 나는 더욱 풍부하고 가득찬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행복할 수 있다.
이 병의 후유증은 이제 나를 평생 따라다닐 것이었다. 내가 삶에 함몰되어갈 때 마다 나를 평생 따라다닐 이 병이 한 번 씩 내 삶에 쉼표를 찍어주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때 찍히는 쉼표는 결코 휴식의 의미는 아닐거다. 분명 괴로울것이다.
나는 이 후로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로 대학원을 가서 또 졸업을 하고, 해외에서 취직을 했다.
그 동안 한 번씩 내가 아프다는 것을 문득 강하게 인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은 결코 기쁘거나 아름다운 깨달음의 순간들이 아니었다.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로 속상함의 감정에 휩싸여서 ‘왜 하필 나야?’라는 오래된 질문을 몇 번이고 다시 가슴 속으로 던지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하루고, 이틀이고, 일주일이고, 기다려야했다. 그래도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종종 정작 내 인생을 만드는 것은 고군분투해서 내린 한 가지 중요한 결정이 아니라 무심코 내린 모든 선택들과 그 위로 사소하게 실처럼 겹처진 우연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겪게 된 그 모든 순간들이라는 생각을 때때로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의 삶이 참을 수 없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내 삶에 대한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나라는 작은 사람위로 수없이 많이 겹쳐지고 뻗어지고 쌓여나가는 실금들이라니. 어쩌면 내가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도 나는 본질적으로 지금과 꼭 같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마저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