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 Oct 17. 2020

나의 마음을 지키는 법

누군들  그렇겠냐마는,  역시도 대학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것들은 내가 아프기 이전에는 막연하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기가 되었고, 아프고   3으로 복학한 후에는 내가 매일 아침 등교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사람 습관이 생기는 데에는 2주면 충분하다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눈을 뜨고 불편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고등학교로 가는 것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때  가방에 지니고 다녔던 스터디 플래너에는 공부 계획뿐만 아니라 내가 공부를  순간 열심히 해야만 하는 이유들에 대해 적혀 있었다.
지금 딴생각하면  . 지금  열심히 해야 해.  대학에 가야 하니까.  대학에 가서  나아서 건강하게 동아리를 들어서 무대에 서야 하니까. 연애도 하느라 수업도 빠져 보고 수업 시간에 몰래 간식 먹다가 걸려도 보고. 그런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해.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해. 그리고 재수도   없어.’라고 쓰고  썼다.

 대학에서 우선 동아리에 많이 들고 싶었다. 악기나   무대에 서는 공연 동아리에 들어가서 공연하고 싶었다. 동아리 선배에서 하나하나 배우면서 사랑도 생기고 우정도 생기고 정도 들어버리는 그런 것들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이 있었다. 게다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지만 알고 보면 약간의 관종기가 있는 내적 관종으로서, 어려서부터 돗자리 까는 것만 못했지, 막상 누가 깔고 등 떠밀어 주기만 하면  위에서는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엄청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일단 공연 동아리를   정도 하고 싶었다.

, 학교 홍보대사를 하고 싶었다. 고등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그들이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다.  번은 동기가 지나가는 말로 ‘ 홍보대사 지원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그는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은 것이었겠지만  그와의  대화를 기억한다.  그에게 
  해”라고 상당히 단호하게 말했고, 그는 그런 내게 
. 그냥 지원해 봐”라고 말했다.  그런 대답을 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에게 나는 
 . 왜냐면  뒤로 걷는   해서  돼”라고 했다. 그렇다. 멋진 홍보대사 교우들의   하나는 걸어 다니면서 캠퍼스 소개를 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런 일을 해야 하는 포지션에 내가 지원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동기는 뒤로 걷는  못한다는 나의 말에 무심하게도 
뒤로   걸어 ㅋㅋㅋ 장애야?”라고 말했고, 나는 그만  말을 잃어 그와의 인연을 접어야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연애도 물론 하고 싶었다. 사실 미팅이나 소개팅도 20 초반에는   나갔었다. 러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도 호감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건강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리 저는 여자 친구도 괜찮아요?’라고  물어볼 수가 없었다. 소개팅 첫날에는 보통 앉아서  먹고 커피 마시니까 상관없었는데,  다음 데이트  조금 걷거나하면 반드시 이런 대화가 오갔다.
혹시 다리 다치셨어요?”
?”
... 아까부터 다리를 조금 저시길래... 혹시 다리 아프신가 해서요.”
... 괜찮아요. 살짝 삐었어요.”
그러면 나는  순간부터 말문이 막혀서 하루 종일 불안하고 기분이 다운됐다.  사람에게 솔직하게 수술 얘기를 꺼내야 하나, 아니면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나, 그걸 고민하다가 사람을 다 놓쳤다. 그러다가 어차피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이따위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미팅, 소개팅에 나가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싶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자리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대학에 가고 나니까 동아리를 못하는  정도는, 학교 홍보대사를 못하는  정도는 그러려니   있었다. 연애도 하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그보다  하고 싶었던 것은 학기 중에 있던 수많은 친목 행사들, 술자리와 엠티들에 재지 않고 오직 ‘가고 싶다 생각 하나 만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나의 마음이 얼마나 갑작스러운 충격에 쉽게 흔들리고 쉽게 무너져버리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를 사귈 기회를 잃더라도, 있던 친구와 소원해질 것을 알더라도,   마음을 지켜야 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매일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나의 욕망을 접고서라도 평범하고 무탈한 하루를 겪는 . 그게  마음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재미없고   없으나, 다행히도 무탈한 나의 대학 생활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전 14화 결국 평생 달리지 못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