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활의학과 외래를 가면 거의 늘 울었다. 병원에 외래를 가서 울지 않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울지 않기 까지 걸린 시간이 내가 내 몸을 인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퇴원을 하고 병원에 외래 진료를 가면 5분 남짓한 진료 시간 내내 입에 맴도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저는 평생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요?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없는 건가요? 횡단 보도만에서라도 잠깐 달릴 수 없나요? 그래서 평생 횡단보도를 두려워해야 하나요?’ 어쩌면 질문에 대한 답을 내 맘 속으로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답을 듣기가 무서워서 묻지 못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무튼, 몇 년 간이나 입을 맴돌던, 혀 끝까지 나왔던 그 질문을,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물었을 때 난 이미 대답을 듣기 전부터 울고 있었다.
그 날 선생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니, 쟨 또 우네, 어이없어하면서도 약간 안쓰럽다는 표정도 난 읽은 것 같다. 선생님은 한숨을 쉬시며,
“너는, 앞으로 좋아진다는 기대를 하면 안 돼.”
“이 몸을 가지고, 최대한 상하지 않게, 어떻게 하면 이 몸을 잘 활용해서 다치지 않게 죽을 때까지 잘 관리할 수 있을지를 생각을 해야 돼.”
“그래서 스트레칭 열심히 하라고 하는 거고, 근력 운동 꾸준히 하라고 하는 거고. 몸 다 굳고, 근육 다 빠지면, 여기서 더 나빠지고, 다시 휠체어 타야 돼. 너처럼 퇴원해서 걸어 다니다가 몸 관리 혼자 못 해서 다시 휠체어 타고 입원하는 환자들 생각보다 많다, 너. 좋아질 생각을 말라고. 유지하는 게, 좋아지는 거라고.”
진료실을 나와서 또 펑펑 울었다. 치료를 꾸준히 받아도 별로 달라지지 않던 내 몸. 컨디션에 따라 어느 날은 좋다가도 또 어느 날은 자꾸만 발목이 접질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다가 결국 넘어져서 피를 보고 창피해하며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솔직히 내 몸이 더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을 전혀 예상 하지 못 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정말 좋아질 몸이었다면 계단식으로라도 조금씩 꾸준히라도좋아지는 상승세를 보였어야겠지. 내 몸은 그렇다기엔 너무 몇 년 째 제자리걸음이었다.
내 인생은 앞으로도 쭉 이래야 하는구나, 몰랐던 것도 아니지만 새삼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무한 기분도 들었다. 내가 여태껏 정했던 수많은 디데이들은 다 뭐였지.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다 나을 것이다, 개강을 하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개강을 하면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앞으로도 쭉 달리지 못하겠구나. 나는 벌써 어떻게 달리는 건지, 그 기분을 잊어버렸는데, 다시는 그 기분을 기억할 수 없게 되겠구나, 그 날은 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수술실에 내 두 발로 걸어 들어가던 것이 내가 자연스럽게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던 마지막 발걸음이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 발걸음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힘들이지 않고 걷는 게 어떤 건지, 어떤 기분인지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한 발짝, 한 발짝이 위태롭다. 늘 조심해야 하고, 아무리 컨디션이 좋다고 해도 언제 넘어질지 모른다. 내 몸을 나도 잘 예측하지 못해서 늘 조심해야 한다. 난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내 근육들이 지쳐가는 것이 느껴진다. 체온 조절도 잘 못 해서 이상한 타이밍에 땀이 줄줄줄 나버리거나 전혀 땀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 느낌이다. 난 거의 늘 지쳐있다. 그래도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뭔가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마저 무너진 기분이었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지쳐있어야 하는구나. 남들보다 더 힘들어야 하는구나. 남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이 지침을 설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구나. 정말 생각만으로 지친다, 그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지, 그런 생각을 했다.
더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듣고 나서도 내 일상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 말을 들은 그 날 하루 엄마와 울면서 그 신경외과 의사는 왜 수술을 그렇게 했대, 그 재활의학과 의사는 왜 말을 그렇게 해야만 했대, 하면서 의사들을 욕했을 뿐이었고, 그 다음 날 부터는 그 전과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었다. 집, 학교, 병원의 반복. 나는 인정하지 못 한 것이었다. 머리로는 내가 여기서 더 회복되지는 않을 것이며, 평생 몸이 불편한 채로 살아야 할 것이라는 정보가 새롭게 입력이 되었으나, 그것을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지는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저 그렇게 ‘못돼게’, ‘기분 나쁘게’ 말해야만 했던 의사를 탓하고 울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논외로 그 의사는 늘 그렇게 뭔가 퉁명스럽게 말을 해서 거의 매 번 진료실을 나올 때면 기분이 상해있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