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역마살 Jun 09. 2020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대학 생활 첫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나의 방학 계획은 단 하나였다. 


2학기가 되기 전까지 이 지긋지긋한 다리를 고쳐놓자.


나는 절박했다. 이미 주변 동기, 선배들에게 다음 학기면 다 나을 거라고 얘기 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디데이를 적어놓고 다이어리에 매일같이 같은 문장을 적었다. 

개강을 하는 날에 완벽하게 걸어서 학교에 간다. 개강을 하는 날에 완벽하게 걸어서 학교에 간다. 

고등학생 시절 한 친구가 다이어리에 간절히 바라는 것을 매일 적으며 바라고 또 바라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더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걸어서 학교에 간다, 완벽하게 걸어서 학교에 간다.... 


그렇게 방학이 가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개강 전 날 밤 까지도 혹시 모를 기적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는데, 혹시나 하고 기대하며 일어난 개강 날 아침에도 역시나 내 다리는 굳어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에 갔다. 방학 내내 모든 동기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친한 몇 명을 제외하고는 두 달 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다. 예상했듯이 그들이 나를 보고 묻는 안부 인사는 ‘잘 지냈어? 다리는 이제 괜찮아?’였다. 자꾸만 쿵, 쿵, 하고 마음이 가라앉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다리 괜찮아졌냐는 질문을 직접 들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괜찮아~’ 하고 얼른 얘기의 방향을 틀었다. 다리를 보이지 않으려고 자꾸만 가리고 숨었고, 더 많은 질문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 날 하루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정신은 온통 내 다리에 가 있었다.  


그렇게 괜찮다는 말로 대충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학교 생활을 함께 하면서 내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절뚝거리는 모양새를 하고 걷는 것 외에도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통 횡단보도의 초록 불이 깜빡이면 걸음걸이를 빨리 해서 건너고 말지만, 나는 걸음걸이를 빨리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친구들과 함께 건너는 도중에 신호가 바뀌면 다들 뛰어서 길을 건너고 나 혼자 뒤처져서 민망한 표정으로 바닥을 보고 빨간 불의 횡단보도를 천천히 걸어서 건너야 했다. 그러면 친구들을 다들 나를 보고 ‘야, 뛰어! 너 아직도 다리 아파?’라고 물었다. 


학교 행사는 점점 더 많아지고, 동기들과의 식사 자리도, 술자리도 점점 더 많아지고, 괜찮아진다던 나의 발목은 여전했다.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깜빡거려 동기들이 ‘야, 빨리 건너자’라고 하면 ‘아 힘들어, 그냥 다음 거 건너자’며 넘기던 내가, 더 이상 차마 그러지 못했고 뒤쳐져서 빨간불로 바뀌고 난 뒤에야 반대편 도로에 도착하는 일들이 자꾸만 일어났다. 지하철, 버스, 횡단보도 등 급히 움직여야 하는 상황들이 자꾸만 발생했다. 나 혼자였다면 눈치 보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겠지만 여럿이어서, 차마 나는 다리가 불편하니 나를 기다려달라고 하지 못했다. 대중교통과 횡단보도, 아니 그냥 타인과 함께 행동하는 모든 시간들이 점점 공포가 되었다.  


이 공포는 축제 기간에 극대화되었다. 아직도 그 날이, 그 장면이, 그때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다. 우리 학교는 2학기에 큰 축제가 있다. 축제 이후 단과대별로 모여서 요란하게 뒤풀이를 하는데, 갑자기 우리 과 동기 하나가 먼저 뒤풀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며 넓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를 따라서 주변의 동기들도 다 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내 주변에 서 있던 동기들 모두 나를 앞질러서 너무나 빠른 속도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디에 숨을 것인지 숨을 곳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혼자 뒤처지기 시작하자 절뚝거리면서 달리기를 시도했다. 잘 걷지도 못 하는데 이런 내가 달리기라니. 얼마나 우스운 모양 새였을지. 이런 내 모습을 본 한 친구가 속도를 늦춰주며 자기가 기다려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괜히 더 당당한 척하면서 ‘나 못 뛴다고. 다리 아프다고!!’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너무 당혹스럽고 슬펐다. 순간적으로 훅 느껴지는 감정에, 툭 떨어지는 마음에, 정말로 숨어서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날 뒤풀이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날 이후로 학교 가는 것이 더 두렵고, 사람 만나는 것도 너무 무서워서 점점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20살의 하반기는 그렇게 내게 그 축제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전 11화 20살, 넘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대학에 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